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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Fantasy

감상/ 필드의 고인물

by 뀽' 2020. 11. 30.

필드의 고인물  /  이블라인

★★★☆

브라질 국대를 응원하는 날이 올 줄이야

 

축구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주의: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표지의 주인공이 브라질 국대 옷을 입고 있어서 당황하셨나요? 그렇다, 이것은 1화부터 주인공이 월드컵 우승을 위해 대한민국을 버리고 브라질로 귀화하는 이야기. 배신감 든다고? 그런데 이미 대한민국 국적으로 7번이나 시도를 했다면? 그 7번의 삶에서 모두 실패했다면?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따지 못하는 이상 이 끔찍한 무한회귀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8번째 삶에선 귀화 좀 할 수도 있지 않냐!!! (울먹 

 

8번째 삶을 사는 중인 주인공 이용두는 현재 나이 128살(특: 중학생). 벌써 100년 넘게 축구만 한 이 축구 고인물인지 망령인지는 이제 안 뛰어본 포지션이 없고, 안 당해본 반칙이 없으며, 온갖 부상에 시달려 보았고, 온갖 클럽을 거쳐갔다. 다시 말해 모든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으며, 심판 몰래 하는 반칙에 통달했고, 어떡해야 부상을 안 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웬만한 클럽과 선수, 감독들 성향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단 얘기ㅋㅋ 이런 고인물인데도 축구는 팀스포츠라 멱살캐리로는 월드컵 결승전 무대도 밟을 수 없어서ㅠㅠ.. 용두는 결국 귀화를 택한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월드클라스 인재가 브라질로 귀화해 한국 여론의 뭇매를 맞을 것이 걱정된다면, 그런 고구마는 거의 없다. 한국에서 주목 못 받고 브라질에서 사업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른 나이에 유학을 갔다가 자연스레 귀화한 것으로 처리를 해서, 오히려 인재 못 알아보고 유출시킨 축협이 더 얻어터짐ㅋㅋ 그렇게 128살 먹은 이 먼치킨 중학생의 원맨쇼 사이다 일대기는 용두가 브라질로 건너가 친구들을 사귀고, 유소년 팀에 들어가고, 브라질 국내 리그에 데뷔했다가 유럽 빅클럽으로 이적, 그리고 월드컵까지 점점 확장되는 무대를 하나하나 정복해나가는 시원시원한 전개를 따라간다.

 

그렇다고 이게 회귀빨로 파워업 한 주인공이 무쌍 찍는 이야기만은 아니고. 아무 것도 없는 중학생 몸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운동하고 근육을 키우며 감각을 되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성장물(8배속 ver.) 느낌도 든다. 거기다 브라질 국대 수준을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에 이리저리 수를 쓰고 판을 짠다는 점에서 경영물 느낌도 마고, 주변인들과의 유쾌한 대화나 일상 에피, 그리고 커뮤 반응을 보면 훌륭한 일상개그물. 이러한 다양한 요소가 적절한 분량으로 곳곳에 포진되어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술술 잘 읽힘ㅋㅋ

 

무엇보다 주변인들의 캐릭성이 엄청나게 개성적이다. 각각 다른 팀을 응원하며 투닥대지만 늘 서로를 생각하는 애틋한 가족들도 훈훈하고, 몇 골을 먹든 닥치고 공격하라는 전술의 감독님이나, 밉지 않게 돈자랑하는 구단주, 그리고 무엇보다 같은 브라질 국대로 뛰는 동료들이 너무 웃김ㅋㅋㅋ 눈치 빠른 불여시 헤일리송과 츤데레 하파엘, 마피아 같은 덩치의 착한 마리우와 틈만 나면 공 달라고 소리 지르는 작은 가투, 이들과의 대화는 패스에서만큼이나 티키타카가 환상적이다ㅋㅋ

 

어쨌든 귀화 문제도 스무스하게 해결되었고, 친구들도 잘 사귀었고, 가끔 튀어나오는 인종차별 문제도 주인공이 그때그때 응징해버리기 때문에 욘두는 참지않긔☆ 사실상 극에서 고구마 요소를 거의 찾기 힘든데, 이런 먼치킨물을 읽는 주 독자층이 고구마를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인 듯 싶다. 원래 고구마 없는 사이다 일변도의 먼치킨물은 가볍게 방방뜨기 쉬운데, 이 작품은 시의적절하게 주인공의 ‘지난 회차’ 이야기를 삽입하여 적당한 무게감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취향이었음. 아닌게 아니라 용두의 지난 삶이 (다른 작품의 회귀자들만큼이나) 정말 피폐해요. 

 

두 자리, 세 자리, 심지어 네 자리수로 회귀하는 지옥의 회귀자들에 비하면 용두는 이번이 8번째 삶이라 처음엔 에이 고작? 할 수도 있는데, 이 작품 읽고 깨달았습니다. 회귀를 한번이라도 겪으면 마음이 고장날 수밖에 없다는 걸. 회귀를 함으로써 사라지는 것에는 시간뿐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쌓았던 인연, 그리고 그 인연들 사이에서 태어났던 새로운 생명도 포함된다. 그리고 당연한 사실이지만, 되돌아간 시간 속에서 같은 사람끼리 운명처럼 다시 만나 결혼한다고 해도 같은 아이는 태어나지 않는다. 이 간단한 명제로 인해 용두의 마음은 지옥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이번 생의 사람들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용두와 함께 결승전까지 내리 달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8ㅁ8 마침내 월드컵에서 우승한 용두가 어떤 마음일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늘 상상하며 읽었는데도 그 장면에선 그냥 눈물이 나더라.. 용두가 회귀 저주에 걸린 원인 등 판타지 세계관 설명은 사실상 없다시피해서 아쉬웠지만, 축알못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친절한 스포츠물인데다 코믹과 진중함 사이에서 밸런스를 잘 잡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좋았다. 스트레스 해소용 사이다 먼치킨물이 땡기지만 너무 가볍기만 한 건 싫다면 딱 좋은 작품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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