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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BL

감상/ 단밤술래

by 뀽' 2021. 10. 24.

단밤술래  /  채팔이

★★★★★

잡히기 위해 시작한, 긴긴 술래잡기

 

백 년을 잠들어 있으면 그대를 다시 만날까.

내가 무얼 그리 잘못했기에

이리도 오랫동안 내게서 떠나있는 것인가.

 

※주의: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단밤술래 외전 마지막장을 덮고 생각했습니다. 아. 채팔이랑 결혼해야겠다. 갓채팔 당신은 내게서 도망칠 수 없어…. 집착광공됨 작가님의 전작들이 캔버스를 덮는 화려하고 선명한 유화 그림이었다면 단밤술래는 얇은 화선지에 스미어 번져나가는 묵직한 먹을 보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먹이 기어이 가슴 속에 멍울을 만드네요…….

 

먼 옛날, 어두운 동굴 속. 어린 도깨비에게 사부는 술래잡기를 제안한다. 백까지 세고 자신을 찾아내면 방망이를 돌려주겠다고 사부는 약속했지만, 사부가 떠나고 나서야 도깨비는 자신이 숫자를 열까지밖에 셀 수 없음을 깨닫고. 혼나기 싫어서 도깨비는 열까지, 다시 열까지, 아주 오랜 시간동안 수도 없이 열을 센다. 슬슬 느낌이 오죠…? 네, 사부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완전한 사내로 성장한 도깨비가 붉은 눈을 빛내며 동굴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 섬뜩한 모습과 함께, 천년의 세월동안 이어지는 집착공x도망수의 서막이 오르는데!

 

집착공과 도망수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독자가 으레 기대하는 것들을 200% 충족시키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내용이 소름끼치는 반전과 함께 계속 이어진다는 점에서 말그대로 갓-작. 일단 저 무서운 도깨비가 현대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무서운 급식 갬성의 고3 이도한(20세, 1년 꿇음)이 되어 있다ㅋㅋ 사람에게나 귀신에게나 공평하게 X발 안 꺼져?!하는 무적의 불주둥아리 고3 정말… 든든합니다……. 귀신보다 무서운 이도한 성질머리ㄷㄷ 그리고 이 무서운 성인 고3 고삐를 틀어쥔 게 순하고 침착한 과외 선생 윤담(24세, 휴학생)이라니 벌써 맛있다 크으.

 

둘 다 과거 기억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각자의 현재를 괴롭게 만드는 요인(귀신이 보이는 푸른 눈 / 간헐적 기억상실증)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의 퍼즐 조각을 함께 맞추어 나가는데. 애절하면서 섬뜩한 과거와, 로코스러운 현재의 두 사람 이야기가 대비되며 기막힌 밸런스를 이룬다. 사부님 관심받겠다고 바위에 머리 찧는 도깨비와, 선생님한테 과외받겠다고 수학문제 일부러 틀리는 이도한… 정도의 대비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닼ㅋㅋ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 이 방년 20세, 24세 녀석들이 썸타는 게 간지럽고 설레고… 그리고 불안함. 왜냐하면 과거가 밝혀지고 기억이 돌아올수록 이건… 예정된 파국이잖아요?! (입가리고 웃는 고양이짤)

 

사실 집착이 꽤 쎌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는데 도깨비는 인외라서 그런가 제 예상 범위를 아득히 뛰어넘으시네요 와 정말 무서웠다, 사부가 왜 도망쳤는지 이해가 간다 이놈아…. 하지만 모든 것이 비극으로 흘러간 데에 도깨비의 잘못만 있는 건 아니라서ㅠ 여우와 서융, 연조 등 주변 인물들의 평범하고도 작은 욕심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빠져나갈 틈 없는 견고한 비극을 직조해버렸다. 누구 하나 악역이라고 손가락질하며 팰 수 있는 구조가 아님. 하지만 도깨비는 이미 상처 받았고, 그 분노를 사부는 고스란히 받고 있고 엉엉 작가님 얘네 이 애증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해요 울고 있는데 그때 갑자기 또 뒤통수를 맞는 것임. 사부는 정말로 도깨비가 무서워서 도망을 갔던 것일까? (비명) (오열)

 

왜 도깨비 방망이가 사부에게 있었는지. 사부는 왜 그걸 가지고 도망 갔는지. 그리고 도깨비는 왜 그토록 맹목적으로 사부를 사랑했는지. 키워드에 딸린 클리셰로 넘어갈 거라 생각했던 설정과 감정선의 뒤에는 천년이라는 세월만큼이나 감당하기 벅차고 무서운 진실이 숨겨져 있다. 그래요 사실 술래잡기라는 건, 잡히기 위해 시작하는 놀이지……. 오로지 지기 위해 내기를 시작한 스승님과, 스승을 위해 스스로를 끊어내는 가여운 제자를 보고 짐승처럼 울었다……. 

 

서사에 관여하는 등장인물이 좀 많은 편이고, 이야기의 스케일이 거대한 것에 비해 떡밥과 복선이 굉장히 세밀하게 짜여져 있어서 연재로 달리면 헷갈릴 여지는 있는데(이것 때문에 어렵다는 감상이 간혹 보이는 듯?), 한 자리에서 각잡고 읽으니 정말 작은 것 하나까지 딱딱 맞아들어가서 사건물 처돌이는 보는 내내 쾌감이 쩔었네요ㅋㅋ 순한 윤담 캐릭터는 갈수록 단단하고 강하고, 섬짓하던 이도한 캐릭터는 갈수록 아련해서… 모든 진실을 안 뒤에 재독하면 처음 읽을 때는 생각도 못했던 부분들이 오열버튼으로 변해있음……. 또 한참 울었단 얘기. 채팔이 당신 정말 지독하다…….

 

연상공 취향인 내게 연하공 먹이시고 전연령 좋아하는 내가 19금을 짜릿하게 감상하게 만든 작가님 정말로 존경합니다ㅋㅋ 매력적인 캐릭터 빌딩, 압도적인 메인 서사, 섬세하게 잔가지를 뻗는 조연들의 이야기, 이 모든 것들을 이끌어 나가는 박진감 넘치는 연출과 전개-는 채팔이님의 전매특허인데 이번 작에서는 서정적인 묘사들까지 마음에 와서 콱 박힌다. 사랑한다는 말밖엔 할 수가 없네요ㅋㅋㅋ 차기작 기다리며 작가님의 전작들 하나하나 정복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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