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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BL

감상/ 오컬트 로맨틱 코미디!

by 뀽' 2022. 4. 17.

오컬트 로맨틱 코미디!  /  두당

★★★★

뭐지 이 허술한데 치밀한 콤비는

 

정정당당하게 오컬트로 덤비라고….

 

※주의: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눈부신 금발의 인싸미남 능글공과 차분한 흑발의 단정미남수라니, 조합이 벌써 맛있죠? 근데 작가님의 글빨은 더 맛있음. 물 흐르듯 유려한 문장 속 넘치는 위트가 진짜 사람 숨도 못 쉬고 웃게 만든다ㅋㅋ 제목에 있는 세 가지─오컬트, 로맨틱, 코미디─ 중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수작.

 

티모시 오웰리는 변방의 가난한 작은 오컬트 블로그 <논 오컬텀>, 약칭 ‘노노’의 기자다. (참고로 직원은 사장과 기자 단 두 명이다.) 오컬트 블로그라면서 발행하는 기사는 죄다 오컬트의 오류를 밝히는 글들인 데다 어그로성 주제는 아예 다루지도 않으니 수익이 날 리가 있나. 그와중에도 15주년 기념 컨텐츠를 위해 티모시는 사장 등쌀에 밀려 도시괴담의 주인공인 영화배우 조나단 맥스타즈를 취재하게 되는데. 천사 같이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줄창 B급 슬래셔 무비만 찍어대는 이 미친놈에게 뭐가 있긴 할까 싶었던 순간 그가 말한다. “저 노노 팬인데.”

 

그렇게 ‘오컬트에 시비 거는 오컬트 블로그 기자’와 ‘연쇄살인마 역할만 맡는 수상한 신인배우’가 짝꿍이 되어 도시괴담의 배후를 캐내는 내용 되시겠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다운타운 클럽, 멘탈리스트의 마술쇼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조나단이 반짝거리는 얼굴로 던지는 배배 꼬인 플러팅과 티모시가 차분한 얼굴로 내뱉는 담백한 조크까지 완벽하게 ‘미국적’이라, 읽는 내내 한편의 잘 짜인 헐리우드 버디물을 보는 기분이 들었음. 다만 이것은 BL이니 거기에 러브라인이 첨가되어 있겠죠? 크으 이것이 바로 진미.

 

조나단과 티모시는 그야말로 능글공과 단정수의 정석이라는 느낌. 시종일관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사람 약올리지만 어딘가 쎄한 조나단과, 지극히 상식적이고 차분하지만 은근히 욱하며 연애눈치는 젬병인 티모시의 조합이 맛깔나다. 후반부 갈수록 조나단이 애새끼고 티모시 쪽이 어른스러워서, 결과적으로 수가 공을 둥개둥개 어르는 감정선이 된 게 취향에서 빗나가긴 했지만… 그래도 조나단이 지독한 순정파 짝사랑공이라 흐뭇했습니다^^ㅋㅋ 무엇보다 머리 팽팽 잘 돌아가는 두 사람의 허술한듯 치밀한 우당탕탕 코믹 콤비플레이가 재밌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오컬트물인 만큼 현실적 개연성을 갖춘 트릭 대신 악마! 예언! 최면! 같은 비과학의 총체가 주인공 콤비와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이 작품에서 특히 좋았던 건 이 으스스하지만 사람에 따라선 어이없고 우스꽝스러울 수 있는 오컬트 요소를 굳이 세련되게 포장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메인 서술자로 티모시(특: 오컬트 부끄러워 하는 오컬트 기자)를 내세워서 괴현상 볼 때마다 음 잘못 봤나?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예언이랍시고 누가 장엄하게 떠들면 동태눈깔로 아 집에 가고 싶다 중얼거리는 이러한 (오타쿠의 자기혐오적) 애티튜드 덕에 오히려 B급 감성인 척 하는 A급이 되어버림.

 

아무튼 오컬트는 오컬트라, 분명 도시를 오가는 거대한 스케일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아기자기한 분위기다. 무거운 신념의 충돌? 국가적 규모의 음모? 타락한 경찰과 정부? 그런 거 없습니다. 왜냐하면 조나단과 티모시가 맞서 싸우는 상대는 그냥 정신 나간 오타쿠 집단이기 때문에!(눈물) 하지만 빌런의 정체가 우습다고 해서 끔찍하지 않은 것은 아니며, 무섭지 않다고 해서 재미가 없는 게 아니다. 특히 중반부 클라이막스에 나오는 악마 빙의 에피소드는 섬찟하면서도 절절해서 정말 네… Wow… 최고예요. 너무 맛있어서 저는 그 부분 읽으며 반찬 없이 밥 세 공기 뚝딱할 수 있어요. 최고의 밥도둑 캬.

 

무엇보다, 처음에는 오컬트를 부끄럽게만 여기는 것 같았던 티모시의 서술이 자기비하적 개그에서 끝나지 않고 실은 그가 누구보다 오컬트에 진심이라는 것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 또 그런 티모시이기에 조나단이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는 서사로 이어지는 흐름까지 정말 따뜻하고 귀여운 러브 스토리가 아닐 수 없다.

 

술술 읽히는 문장과 매번 정확한 스윙으로 타점을 올리는 개그코드, 앞뒤 구성 꽉꽉 잘 짜인 글을 읽는 것이 얼마나 짜릿하게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해준 책. 로코로코한 사건물을 찾고 있다면, 그리고 오컬트에 거부감이 없다면 꼭 한 번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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