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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BL

감상/ 과대망상 플랜 B

by 뀽' 2021. 7. 15.

과대망상 플랜 B  /  완동십오

★★★

트롤리 딜레마 (해피엔딩 시트콤 ver.)

 

까짓 수만 명 죽거나 말거나!

나랑 이 녀석만 잘 먹고 잘 살면 돼!

 

※주의: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할리킹! 재벌! 돈지랄!을 주로 봐왔더니 갑자기 평범한 시민이 보고 싶은 날도 오는군요. 그런데 마침 평범한 경찰공(물론 외모는 평범하지 않다)에 SF설정을 곁들인 작품이 보여서 질렀다ㅋㅋ 2020년 서울시 중랑구 연립주택 꼭대기 층에 사는 까칠한 형사 이동경이 5일째 밤샘 근무를 끝내고 퇴근하던 어느 화창한 아침, 집 앞 상추 텃밭(특: 2층 할아버지 소유)에서 구역질을 하고 있는 나체 청년을 목격. 누가 봐도 취객이라 본인도 경찰이지만 경찰에게 신고하고 튀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집이 어디냐 묻자 돌아온 답이 그야말로 아스트랄했으니. “지금…, 몇 년도…, 입니까…?”

 

이거 또라이 아니야? 하는 이동경에게 이입되는 마음과, 쟤가 또라이가 아니라 진짜 미래인이라는 걸 아는 전지적인 독자로서의 마음 사이에서 기가 막히게 밸런스를 잘 잡고 있는 작품ㅋㅋ 왜냐하면 이동경 씨는 얘를 곧장 경찰서로 끌고 가서 신원조회부터 시킬 정도로 합리적인 인간인 동시에, 앞뒤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이 미래인의 말을 무작정 무시하지도 않는다! 거기다 귀찮다고 툴툴대면서도 애 입히고 먹이는 거에 은근 지극정성인 데에서 한국인의 정을 느껴버렸습니다ㅋㅋㅋ 읽다 보면 이동경과 함께 이 예쁘장하고 무해한 미래인에게 스며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음.

 

하지만 ‘주예찬’이라는,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이 미래인은 연애하려고 과거로 온 것이 아니구요ㅠㅠ.. 자그마치 대한민국을 구해야 한다는 막대한 사명을 띠고 있던 것이다. 때는 2090년, 대한민국을 파멸로 몰고 갈 엄청난 악당이 있었으니 그 이름 박한결. 그리고 주예찬은 이 악당 박한결을 아예 태어나지도 못하게 만들라는 임무를 가지고 2020년으로 파견된 것이었다! 신체 나이 이제 겨우 스물넷인 아이가 국가를 위해 제가 희생당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게 정말 오싹함. 

 

복제 인간, 계급사회 등 현재와 근미래에 대두된/될 윤리적 문제들과 함께 전체주의와 공리주의에 관한 담론들이 전체 플롯에 은은하게 스며들어 있다. 그중에서도 메인 서사상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지는 것은 다름 아닌 트롤리 딜레마 즉, 다수의 행복을 위한 소수의 희생이 정당한가의 문제. 여기서 다수는 미래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되겠고, 소수 쪽에는 주예찬을 포함한 복제인간 몇 명, 그리고 죄를 짓기 전의 박한결과 그의 부모 등이 있겠지.. 근데 이런 문제들이 나온다고 해서 골이 빠개지냐? 아님. 왜냐하면 이 작품은 철저하게 ‘선한 개그물’ 스탠스를 취하고 있으니까!ㅋㅋ

 

기저에 깔려 있는 담론들이 제아무리 무거운 것들이라 해도, 일단 표면 상 진행되는 이야기는 ‘까칠한 미남 경찰 아저씨가 귀여운 미래인 청년 주워서 먹이고 입히고 재우다 서서히 감기는’ 내용이다. 그리고 한줄 걸러 한줄마다 나오는 작가님 특유의 덤덤하고 잔잔한 개그가 너무 웃곀ㅋㅋ 작정하고 웃기려는 게 아니라 무심하게 툭툭 던지듯 서술되는데, 그래서 더 웃김ㅋㅋㅋ 거기다 온갖 동식물들은 이미 멸종됐고, 비도 내리지 않고, 하늘도 쳐다볼 수 없던 삭막한 미래사회에서 온 예찬이가 2020년의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에 기뻐하며 신기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나 힐링이다 8ㅁ8 

 

또 결론적으로 이 작품이 복잡하지 않고 마음 편한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은, 작가님이 다소 편법을 쓰셨기 때문ㅋㅋ 광차(트롤리)가 5명이 있는 선로를 지나든 1명이 있는 선로를 지나든 심리적 저항은 거셀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 무고한 사람 말고 확실한 ‘악당’ 한 명이 서 있는 제3의 선로를 만드는 거다. 그리고 이조차도 절대로 주인공수가 트리거를 당기게 만들지 않았음. 선한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죄책감을 질 필요 없는, 그야말로 동화 같은 이야기.

 

그러나 본편이 이렇게 하하호호 끝났던 것에 비해 외전은 이보다 조금 더 무겁고 절박하고 피폐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트롤리 딜레마와 ‘소수의 희생’의 잔인성이 훨씬 더 강렬하게 부각됨. 본편만 읽었을 땐 상상도 못했던 수위의 잔인성이라 외전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걸로 아는데 난 확실히 외전 쪽이 더 취향이었음ㅋㅋ 트롤리 딜레마를 순화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제대로 마주해서 그런지, 본편보다도 비장미 넘치는 상황과 감정선 덕에 과몰입해서 울었네요ㅠㅠ

 

심각한 주제를 심각하지 않게 다루는 작가님의 능력이 돋보인 작품. 어딘가 아련한 구석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랑스러운 힐링 시트콤 분위기이기 때문에 몽글몽글하게 치유받고 싶은 독자들에게 딱일 거 같다. 다만 힐링이 주 목적이라면 외전은 조금 미루는 것..이...?ㅋㅋㅋ 물론 외전도 엔딩은 예쁘고 귀엽지만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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