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vel/BL

감상/ 스티그마타

by 뀽' 2021. 6. 10.

스티그마타  /  TP

★★★★

가엾고 맹목적인 기만자

 

그를 경멸할 수 없었다.

그의 모든 과오는 오로지

시에나스를 위해서만 이루어지고 있었으므로.

 

※주의: 스포일러라고 느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글입니다.

 

원래 10권이 넘는 장편은 부담스러워서 손이 잘 안 가는데 1권 무료 이벤트 덕에 손 댔다가 그대로 낚였다. 너무 재밌음ㅋㅋ 본격 서양 판타지 정치물인데, 흥미진진한 사건을 차근히 따라가다보면 장대한 세계관 속 이리저리 얽히는 복잡한 인물관계가 자연스레 이해되는 필력,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애틋한 원앤온리 러브라인 서사까지 정말 내 취향이었다. 11권? 짧네요. 금방 읽어요<<ㅋㅋㅋ

 

윗분들 싸움에 학살당한 작은 마을에서 홀로 기억을 잃고 살아남은 소년 시온. 늘 이방인 같던 그의 삶은 대신관이자 성왕의 검인 파벨을 우연히 구해 함께 수도로 올라오며 완전히 변한다. 벽화에 그려진 ‘심판의 천사’의 모델이 되었을 정도로 아름다운 미남자 파벨에게 시온은 마음을 빼앗겼고, 파벨 또한 자신을 특별히 여긴다고 생각했는데. 단꿈은 5년 만에 깨진다. 파벨의 배신, 그리고 성왕 시에나스의 지하감옥에 갇히게 된 시온. 거기서 시온은 파벨이 숨기고 있던 사실을 시에나스의 입으로 처음 듣게 되는데……. 시온의 등에 있는 커다란 상처가 다름아닌 ‘성왕이 될 자’의 성흔이란다.

 

시에나스의 말대로 처음부터 파벨은 시온을 이용하기 위해 수도로 데려온 것이 틀림없었다. 제 등가죽을 벗겨 성흔을 이식받으려는 시에나스에 의해 고문을 당하는 와중에도 파벨의 배신에 슬프고 비참한 시온. 그러나 이식이 이루어지기 전 무슨 일인지 대성전이 무너지기 시작하고, 이럴 거면 다음엔 자격이 있는 고귀한 몸에나 성흔을 내리라고 신을 원망하며 시온도 정신을 잃는데. 눈을 떠보니 5년 전, 성왕 시에나스의 몸에 빙의해 있다?! 

 

죽기 직전까지 내 등가죽 벗기려고 눈 뒤집혔던 놈의 몸으로 살아야 하다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소름끼치는데 전생의 배신자였던 파벨은 성왕의 검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곁을 맴돈다. 거기다 권력을 탐하는 승냥이 떼 같은 귀족들까지 항시 주위에 도사리고 있으니 성왕이면 뭐 하나, 음식 하나 마음 놓고 먹을 수도 없는데ㅠㅠ 고작 밥 먹는 자리 정하는 거 하나에도 온갖 사람들의 정치적 관계와 권력 구조를 고려해야하는 이 숨막히는 수 싸움! 정말 내 취향이었음ㅋㅋ

 

등장인물 수가 많고 인물관계도도 복잡한데다 설상가상(?)으로 이름들이 하나같이 길고 어려워서 초반 진입장벽을 호소하는 독자들이 많은데ㅋㅋ 처음에 이름 안 외워진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작가님이 내용 전개를 정말 친절하게 하시기 때문에! 나같은 돌대가리도 누가 누구 편인지, 방금 비꼰 말은 무슨 의미였는지 다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본편만 8권에 달하는 이 대장정에서 중후반부에 터지는 반전과 이에 대한 힌트, 그리고 활약하는 주요인물들이 모두 1,2권에서 다 빌드업 된다는 것. 갑툭튀 인물이나 설정? 그런 거 없다. 작가님은 다 계획이 있으셨구나

 

시에나스(시온)가 권력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넘어 진정한 성왕이 되어가는 정치물·성장물로서의 면모도 재미있지만, 사실 또 벨 독자들에게 중요한 건 러브라인이잖아요? 특히 나같은 골수 원앤온리 찬양론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파벨은 시온을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여부인데…ㅋㅋ 하필 이게 환생빙의물이다 보니 파벨이 ‘현재의’ 시에나스(=시온)를 사랑한다고 해도 찝찝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니요, 그런 걱정 따위 할 필요 없었다. 진실이 밝혀지던 5권에서 펑펑 울었음. 거짓과 기만, 배신으로 점철된 파벨의 모든 말과 행동들을 되짚고 그 진의를 깨달은 순간 울 수밖에 없었어…….

 

파벨이 좋은 사람인가 묻는다면 글쎄요-지만 누구도 그의 사랑만큼은 감히 의심할 수 없겠지. 정말 사랑에 미친 새끼.. 그의 모든 행동원리는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위하여’라는 명제 단 하나다. 그 단순하고 순수한 목표 하나를 위해 무슨 짓이든 망설임 없이 저지르는 파벨의 소름끼치도록 잔인한 면모가 저는 정말 좋았네요 이 새끼 초반부에 남의 눈알 파낼 때부터 알아봤다^^ㅋㅋ 거기다 이런 파벨의 순수함과 잔인성이 더 소름끼치는 건, 그가 평소 입만 열면 섹드립이나 치는 가벼운 남자로 이미지메이킹 되어 있기 때문. 그늘을 숨기기 위한 이 ‘가장된 가벼움’을 저는 늘 사랑합니다ㅋㅋ

 

신에게 제멋대로 선택‘당한’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또 운명에 맞서 싸우는 웅장한 서사. 하지만 톡톡 튀는 주조연의 캐릭터성과 쾌활한 티키타카 덕분에 이야기가 정말 스무스하게 읽힌다. 무거운 감정과 복잡한 플롯이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지만 그만큼 부담을 덜어주는 코믹하고 귀여운 부분들도 많으니까요ㅋㅋ 정치물과 원앤온리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필독.

 

 

 

 

'Novel > BL'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상/ 언더독 커넥션  (0) 2021.07.13
감상/ 누구란 질문에 답은 없다  (0) 2021.07.12
감상/ 스푸너  (0) 2021.06.18
감상/ 프라우스 피아  (0) 2021.03.14
감상/ 하베스트  (0) 2021.01.10
감상/ 인간관찰일지  (0) 2020.11.22
감상/ 죽은 애인에게서 메일이 온다  (0) 2020.10.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