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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BL

감상/ 죽은 애인에게서 메일이 온다

by 뀽' 2020. 10. 21.

죽은 애인에게서 메일이 온다  /  세람

★★★☆

남의 (공포)연애썰 보는 재미가 있네

 

사실 나 장례식에서 별로 슬프지도 않았어.

그냥 좀 이상했어 그뿐이야.

걔 죽고도 나름 잘 살았어.

근데 1년이 지나도 걔가 없다는 게 익숙해지지가 않아.

걔가 내 곁에 계속 있는 것 같아.

이상하잖아.

 

참고: 이 작품은 플랫폼 별로 편집 차이가 크다고 합니다. 리디북스에서 구매해야 각종 게시판과 댓글창, 카톡 등을 생생하게 구현해낸 화면을 즐길 수 있다고 하니 참고 바람.

 

아무리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지칠 때가 있는 법. 집중도와 몰입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라 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거 없나 묵은지를 뒤적거리던 차에 빛과 소금 같은 이 작품을 발견했다. 구매 전 유의사항에도 적혀 있듯 이 책은 대부분의 내용이 ‘채팅, 인터넷 게시판, SNS 형식’을 취하고 있음. 한마디로 커뮤 게시판과 트위터 눈팅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이 말입니다! 16부작 드라마를 정주행할 기운은 없지만 유튜브에서 5분순삭 예능영상 보며 낄낄거리고 싶은, 딱 그 정도 체력일 때 읽기 최적. 심지어 재밌어서 읽다 보면 집중도가 자연스레 올라간다. 작가님 썰 잘 푸시네요

 

내용은 제목처럼, 죽은 애인이 어느 날 보내온 메일로 시작된다. 주변인의 장난이라기엔 둘 사이에 있었던 사소한 일들도 알고 있는 소름 끼치는 내용. 사랑한다고, 답장해 달라고, 찾아가겠다고, 점점 상황이 심각해지자 결국 메일의 수신자(주인수)는 ‘후추’라는 닉네임으로 커뮤 공포게시판에 글을 올려 상담을 받는다. 그리고 랜덤채팅에서 만난 ‘백설’이라는 닉네임의 남자(주인공)에게 상황을 좀 더 상세히 털어놓으며 친분을 쌓고 도움을 받게 되는데..!

 

공포물이라는 것만 알고 시작한 작품인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미스터리/오컬트 키워드가 붙어있더라구요? 즉 이건 귀신의 소행으로 둔갑하려 한, 귀신보다 나쁜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귀신 이야기임. 추리물로 착각한 초반엔 ‘귀신인 척 하는 범인이 누구일까?’하는 방식으로 접근했는데, 이게 정말 귀신(들)이 일으킨 현상임을 혼자 뒤늦게 깨닫고서도 김이 빠지긴커녕 그 귀신과 얽힌 과거사가 궁금해지는 전개가 굉장히 좋았다. 범인이 귀신이라니 허무하지 않냐구요? 아니요, 생각보다 사건 플롯이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후추에게 메일을 보내는 죽은 애인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이제와 생전 사랑했던 이를 저주하며 괴롭히는 건지, 애초에 왜 죽었던 건지 등을 추리해나가는 과정이 오싹하면서도 재미있음.

 

이 모든 내용이 극히 일부분(씬 포함)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인공수와 주변인들의 카톡 내역, 제3자의 목격담, 주인공 백설이 기록한 사건 메모 등의 활자 기록을 통해 전개되는게 꽤 놀랍다. 사실 이러한 독특한 전개방식은 초반에 독자 흥미를 돋게 할 순 있어도 복잡하고 긴 내용을 이끌어가는 데엔 한계가 있기 마련인데, 오히려 여기서는 필요한 순간마다 시점을 바꾸어 독자에게 전달되는 정보량을 조절함으로써 재미를 더하는 작가님의 노련함이 느껴졌다. 다른 소설들처럼 특정 인물 시점으로 전개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활자로 남은 증거들을 살피며 각 인물의 속내와 사건의 그림을 추리해야 하는 형사가 된 기분이기도 했음ㅋㅋ 

 

단, 사건을 제3자 시점으로 보도록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주인공수 감정선에 절절히 이입하는 건 힘들다. 애초에 섬세한 감정선에 몰입해서 함께 애닳고, 화나고, 설렐 수 있도록 쓰인 일반적인 형식부터가 아니라서.. 대신 커뮤에서 남의 연애썰 소비하며 느끼는 재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음. 썸타는 애들 카톡이나 커플 목격담 보면서 이거 딱 봐도 A가 B 좋아하는듯? 하고 참견하며 대리설렘 느끼는 그런 거 있잖아요? 목격담에서 주인공수 외모 찬양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서술은 불호였으나, 그외에는 와 얘 이때부터 마음 생겼네? 아 얘 지금 질투하는 건갘ㅋ 등등 어느새 광대 아프게 웃고 있는 나를 발견... 왜 갑자기 슬프지

 

거기다 게시판과 카톡창, 쪽지와 쪽지에 남겨진 낙서 등등 화면 연출이 굉장히 섬세해서 몰입도를 수직상승시킨다. 출판사는 편집자님들 월급 필히 올려주세요… 진짜 엄청난 퀄리티임. 주인공인 백설이가 쪽지에 썼다가 취소선 긋고 지운 글씨나, 작게 메모해놓은 사소한 정보와 아무말 등을 볼 수 있는데, 진짜 남의 쪽지 주워서 본 거 같아서 너무, 너무, 너무 좋았음ㅋㅋㅋ 심지어 백설이네 집에 있는 메모지와 후추네 집에 있는 메모지 종류도 다르다! 

 

다만 주인공인 백설 캐릭터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벤츠공이라……. 물론 로맨스물이라는게 다 판타지고 로맨스/BL 남주들 하나같이 현실성 없는 유니콘 같은 존재들이 많긴 한데, 백설은 유독 현실과의 괴리감이 뚜렷이 느껴지긴 했음. 거꾸로 말하면 그만큼 흠 잡을 데 없는 훌륭한 남자라는 말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백설도 백설인데 개인적으론 ‘죽은 애인’ 캐릭터가 무섭고 소름끼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너무 강스포라 뭔 말을 할 수가 없는데 아무튼 좋았어요ㅋㅋ

 

공포영화는 절대 못보지만 텍스트 공포에는 강한 편이라 일부러 늦은 밤과 새벽 시간에 읽었는데 굳 초이스였다. 귀신썰 같은 거 절대 못 보고 바들바들 떠는 사람만 아니라면 이 정도는 적당히 오싹하면서도 설렐 수 있지 않을까. 기대 이상으로 사건 선후관계도 잘 짜여져 있어서 마지막까지 재미있었음. 빽빽한 줄글 읽으며 몰입하기에 지쳤다면 이 작품으로 상큼오싹하게 기분전환 해봅시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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