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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BL

감상/ 프라우스 피아

by 뀽' 2021. 3. 14.

프라우스 피아  /  이젠

★★★★☆

화려하고 매혹적인 애증 서사

 

결국엔 너로 인해서

모든 걸 다 망쳐버릴 것 같다는 그런 예감.

※주의: 스포일러라고 느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된 글입니다.

 

모 영화의 명대사,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말이 이렇게 잘 들어맞는 소설이 또 있을까.

 

사건물 BL 추천글에는 반드시 언급되는 유명작. 제목부터 이미 ‘기만’이라는 글자가 떡하니 있어서 초장부터 날 선 의심의 눈초리로 주인공을 노려보던 저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1권을 펼친 순간부터 밤새 뒤통수 맞고 목놓아 울며 완결까지 읽게 만드는 미친 전개와 텐션ㅋㅋ 분명 여섯권에 걸친 꽉 찬 분량인데도 짧게 느껴짐, 더 주세요 엉엉ㅠㅠ

 

어떤 작품이든 한눈에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있던 희대의 천재 미술감정가 아버지를 둔 서정(주인수). 각막염을 앓던 그는 아버지 사후 각막을 이식받으며 아버지의 천부적인 감식안까지 물려받게 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런 눈을 가지고도 예술계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 아버지가 남긴 어마어마한 유산을 쓸 생각도 하지 않고, 재능을 보인 소믈리에 일도 접고는 무던한 샐러리맨 생활을 하고 있는 서정. 그런 정의 인생에 도무지 평범한 구석이라곤 없는 남자, 이안 라우(주인공)가 끼어드는데..?!

 

194cm라는 문짝만한 키에 어딜 가나 시선이 쏠리는 대단한 미남, 홍콩 마피아와 손 잡고 있는 젊은 대부호, 영국 귀족의 혼혈 사생아라는 소문, 거기다 예술계의 큰손인 진샤오펑의 예비사위이기까지. 과하게 화려한 수식어들이 뒤섞여 오히려 본질이 무엇인지 알기 힘든 이 수상한 남자가 자꾸만 서정과 우연히 마주치며 호감을 드러낸다. 이쯤되면 다들 감이 오시죠^^ 우연일 리가 없지..ㅋ 이 새끼다! 이 새끼 분명 기만자다!!! 그렇게 ‘네놈이 기만자란 걸 다 알고 있으니 어디 한번 날 속여봐’ 하고 있었는데 그때부터였죠, 제가 끊임없이 뒤통수를 맞기 시작한게……. 알면서 맞으니까 더 아픔

 

알고보니 진범이 따로 있고 뭐 이런 류의 반전 소설은 아님. 외려 작가님이 과거와 현재의 교차를 통해 독자들에게 계속 힌트를 던져주신다. 그 힌트들을 받아먹으며 어렴풋이 예상한 것들─이안의 정체, 그가 서정에게 접근한 이유 등─이 하나하나 맞아들어가는 희열이 굉장한데, 전개를 예상하며 안심하려는 타이밍마다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폭탄이 터짐. 어?하는 사이에 총구가 정이 앞에 있고, 또 어?하는 사이에 사람이 죽고, 거기다 완결권 가서나 나올 줄 알았던 진상이 3권에 밝혀지는데 미친 전개 속도 이안의 정체에 대해서만 고민하던 제가 바보였죠 정아 나는… 나는 네가…… (말잇못

 

서정을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곤 가지고 노는 듯 했던 이 기만자의 증오와 집착, 그리고 살인 행각까지도 모두 정당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정이도 무너지고 나도 무너졌다…. 글 대부분이 서정 시점에서 서술되어 있는데, 후반부 가서는 언뜻 담담해 보이는 문장들임에도 서술자인 정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게 보여서 소름이 끼칠 정도.

 

정이(와 독자)가 배신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게 만드는 이안 라우라는 캐릭터는 정말 역대급 지략캐였다. 사실 이런 기만자 캐릭터의 다음 수가 훤히 들여다보이면 캐릭성 우스워지는 거 한순간인데 얘는 진짴ㅋㅋ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속내를 알기 힘든 데다, 판 짜서 남들 조종하는 데 도가 튼 놈임. 말 한마디로 사람들의 행동을 유도하는데 이게 막 의미심장한 어조로 말한 것도, 특별한 연출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너무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이루어지니까, 독자조차도 모두 당하고 난 뒤에야 알아차릴 수 있음ㅋㅋㅋㅋ 아니 왜 활자인간 주제에 내 머리 위에 있는뎈ㅋㅋㅋ

 

공이 마지막까지 갑의 위치에 있는 듯한 느낌이라 호불호 갈릴 순 있겠지만(개인적으로도 약간 아쉬웠음), 그럼에도 이안이 그렇게 철저하고 집요하게 모두를 기만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8ㅁ8 그리고 그 ‘경건한 기만’을 깨부수는 것이 다름아닌 그가 지키고자 했던 사람이라는 것까지 완벽한 서사. 처음엔 평탄한 서정의 삶에 이안이 침범해 온 것처럼 보였지만, 오히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는 이안이 아니라 서정이었다.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이 미친 계략가의 모든 계획을 망가뜨리는 사랑스런 사람을 어쩌면 좋지…….

 

매력적인 캐릭터, 그들 간의 애증 어린 관계성, 그리고 이 거대한 서사를 완급조절해가며 이끌어가는 전개까지 모두 취향이었다. 거기다 이 모든 것이 밀라노와 호화 크루즈, 중국 대부호의 저택 등 휘황찬란한 공간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데, 정말 볼 거리 많고 스토리도 잘 짜인 스케일 큰 대작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음.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작가님 전작도 구매하러 갑니다♡

 

 

 

+) 외전에선 이안이 ‘덜’ 여유로워 보여서, 그리고 본편에서 이안이 했던 말이 다시 보이기도 해서(사실 그때도 엄청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있었구나 ㅇㅁㅇ!!!) 굉장히 좋았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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