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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BL

감상/ 인간관찰일지

by 뀽' 2020. 11. 22.

인간관찰일지  /  세람

★★

인외의 사랑이 너무 무섭다

 

좋아할 줄 알았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저 순수한 호의였다.

 

※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여기저기서 다친 마음을 힐링하기 위한 귀염뽀작물을 찾던 내 시야에, 세람님의 신작이 들어왔으니. 표지부터 귀여운데다, 전작에서 공포썰의 탈을 쓴 힐링물을 선사해주셨기에 바로 구매했는데요. 이것은 상상도 못한 애증피폐물이엇따 ㄴ(ㅇㅁㅇ)ㄱ !!! 캬 외계인공이라니 막 초능력 쓰는 우주 스케일 존잘과의 러브스토리를 볼 수 있는 것인가, 하며 흐흐 웃고 있던 제 대가리 속 꽃밭을 작가님은 사뿐히 즈려밟다못해 아주 불태워버리셨습니다. 동화적이고 낭만적인 사랑? 이종족 간에는 그런 거 있을 수 없어!

 

제목 그대로, 외계인공이 애완용 인간을 하나 들이게 되면서 매일매일 쓰는 관찰일지 형식으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애완 인간’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같은 인격체라는 느낌이 전혀 안 들어요. 물론 주인공은 인간을 밀렵해서 자기들 유희거리로 삼는 나쁜 외계인들과 달리 상식과 선의가 있는 녀석이지만, 손가락 하나로 개미 죽이듯 인간을 죽일 수 있는 거대한 존재의 시혜적인 선의가 인간에게 얼마나 와닿을 수 있을까. 외계인 시점의 관찰일지를 읽으며, 반려동물에게 잘해주고 싶지만 트러블을 겪는 주인의 마음에 이입해 공감하다가도 그 대상이 반려동물이 아닌 나 같은 인간이라는 걸 상기할 때마다 불쑥 불쑥 소름이 끼친다.

 

그렇다고 이게 막 괴기스럽고 공포스러운 소설이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ㅋㅋ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계인의 뻘짓이 공포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만큼 귀엽고 웃기기도 함. 그의 기준에선 인간이 너무나 작기 때문에 나이 가늠을 못해서 어린이용 도서를 사준다거나, 인간은 성별에 따라 입는 옷이 다르다는 걸 몰라서(이 부분은 외계인들의 인식이 앞서가네요..) 남성체인 인간에게 새하얀 원피스를 선물한다거나. 그리고 표지에도 나온 저놈의 토익책! 토익책을 어디다 써먹으라고 선물하는 건뎈ㅋㅋ 근데 이게 쓰이더라구요 X발 개소름

 

길러지는 인간 쪽이 호락호락하지 않고 성깔 있는 것도 좋았다. 예쁜 얼굴에 그렇지 못한 말투(X발, 개X끼, X랄 등)를 갖고 있는 이 인간은 외계인이 준 선물을 모두 호수(그래봤자 케이지 속 호수이지만..ㅠㅠ)에 내다버리고, 외계인에게 대적하고자 날카로운 창을 깎아 만들기도 함. 점차 인간을 이해하게 된 외계인이 갈수록 훌륭한 환경을 조성해주어도 거기에 안주하지 않는다. 넘어설 수 없는 공포 앞에 주저앉아, 남들보다 좋은 주인님 만났으면 된 거지- 하며 순응할 수도 있을 텐데, 얘는 자신이 누군가의 ‘애완용’ 존재임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음.

 

사실 외계인도 인간을 키우게 된 나름의 사정이 있고, 극초반에 살벌한 생각을 몇 번 하기는 했지만 늘 인간에게 좋은 주인이 되고자 했고, 결국 그걸 넘어 애정을 품게 되었지만…… 사실 이런 관계는 시작부터 이미 비틀린 것이나 다름 없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있는 힘껏 발버둥쳤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마음이 죽어버린 인간과, 그런 인간을 죽게 놔둘 수 없어 기만을 시작한 외계인, 그리고 그간의 관계와 행복이 모두 거짓이었음이 밝혀져 파탄에 이르기까지, 정말 말그대로 애증임…….  

 

분명 달달하고 귀여운 순간들도 많았는데, 문제는 그 모든 게 한 발 내딛을 때마다 금이 가는 유리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거다..ㅋ 웃는 게 웃는 게 아님 그리고 이런 불안한 행복은 늘 최악의 타이밍에 가장 잔인한 형태로 깨지기 마련이죠^^ 이미 부서져버린 신뢰와 애정을 다시 주워 붙이는 과정도, 그리고 그 결과물도……. 엔딩이.. 일견 완전한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내 관점으론 메리배드였다. 그 모든 일을 겪은 인간이, 계속 인간으로 머물 수 있을까(육체가 아닌 정신적인 문제)에 관해서 부정적이기 때문에..ㅠㅠ

 

결국 이건 인외 존재를 사랑하기 위해 인간적 가치관(생명의 무게나 인간의 존엄성 등)을 조금 덜어낸 인간과, 인간을 사랑해서 인간들의 사고방식 속에 자신을 우겨넣고자 한 외계인의 러브 스토리라고 볼 수 있음. 이종족 간의 가치관 충돌이 거의 전쟁과도 같이 그려져서, 사실상 PTSD 앓는 인간의 이야기예욬ㅋ 끔찍한 전쟁 끝에 서로 한발씩 양보해서 비로소 중립지대를 찾았고,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수록 이 전쟁은 휴전을 넘어 종전에 다다르겠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끔찍한 기억이 모두 사라지진 않을 테니까. 

 

힐링물 기대하고 읽었다가 번지수 잘못 찾아서 불닭맛 피폐 맛보고 돌아왔는데요..(어질) 아 작가님 <죽앤멜>은 공포인 척하는 힐링물이더니 이번에야말로 “진짜 공포”를 쓰셨넼ㅋㅋ 그래도 <인관일> 역시 일지 형식 전개를 십분 살리는 작가님의 필력으로 단숨에 읽었다. 재미있어요! 피폐해서 그렇지.. 그리고 결말도 내가 메리배드로 해석한 것일 뿐, 일단은 꽉 닫힌 해피해피 엔딩이니까. 아무튼, 그냥 짱 쎄고 돈 많은 외계인 남친 만들기☆ 아니고 종족과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애정조차 폭력으로 느껴지는 상황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글이었다. 빠개진 멘탈 치유를 위해 이 다음으론 단 거 먹으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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