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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BL

감상/ 스푸너

by 뀽' 2021. 6. 18.

스푸너  /  장바누

★★★

추리물의 탈을 쓴 따뜻한 성장힐링물

 

마음에 잔뜩 금이 간 것처럼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부스러기 같은 용기를 그러모아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사건물 찾아 어슬렁거리던 내 눈에 들어온 독특한 설정의 추리물이 있었으니. 다정으른공으로 유명한 작품이라 들었는데 작품소개 들어가보니까 아니 시체요? 공이 시체인데?ㅋㅋ 물론 그워어억하고 우는 보기 흉한 좀비 그런 거 아님. 톨앤 핸썸, 거기다 눈치 빠르고 다정하기까지 한데 단지 심장이 안 뛰고 숨을 안 쉴 뿐. 그리고 이 잘생긴 시체를, 술 취한 수가 주워오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뭐하는 동네길래 뒷골목에 시체가 있느냐 묻는다면, 안 그래도 얼마 전 발생한 살인사건으로 흉흉한 동네다. 전국 여기저기서 토막난 시체들이 발견되는 와중 이 작품 주인수인 송재의네 동네에서도 다리 한쪽이 발견된 것. 그러나 구남친에게 폭언을 듣고 차인 송재의는 병나발을 불었고, 필름 나간 상태로 새벽에 뒷골목을 헤매다 웬 미남이 길바닥에 드러누워있길래 집에 데려왔는데. 아침에 정신차려보니 집은 섬뜩한 핏자국으로 가득하고, 간밤에 주워온 남자는 아무리 봐도 시체다. 신고해야 하나 패닉에 빠져 있는 그때, 그 잘생긴 시체가 번쩍 눈을 뜨는데..!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되는 벤츠(시체)공과의 알콩달콩 동거 이야기☆ㅋㅋㅋㅋ

 

당연히 로코는 아님. 일단 동네에선 토막 시체가 나와서 경찰들이 들락날락 하고 있구요.. 단골 닭발집 배달부가 갑자기 바뀐 것도 쎄하고, 재의와 평소 인사하고 지내던 옆집 민재 학생도 행동거지가 이상하다. 물론 가장 이상한 건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다정한 미남 시체다. 그야말로 수상하고 뒤숭숭한 것들 투성이라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데도 이야기가 따뜻하면서도 설레는 건 바로 우리의 시체공, 사사진씨가 특유의 다정한 으른미로 재의를 지켜주기 때문. 그리고 여기엔 (비록 공의 설정이 워낙 충격적이라 덜 부각되긴 하지만) 송재의의 설정도 한몫한다.

 

송재의는 얼굴이 꽤 알려진 인기 게임방송 스트리머, 동시에 정신과 처방약을 복용 중인 심각한 대인기피증 환자다.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게 어려워 인터넷이 아닌 공간에선 늘 혼자이던 재의의 삶에, 처음으로 다른 시체사람이 들어오게 된 것.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 커 트라우마가 된 이 겁 많은 고양이 같은 사람이, 조금씩 다시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성장힐링물 서사가 꽤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짐. 

 

물론 이게 성장힐링물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해서 추리·수사물로서의 긴장감이나 속도감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ㅋㅋ 진범의 정체가 1권 초중반에 독자들에게 시원하게 까발려지는데, 다정한데다 똑똑하고 심지어 인외 능력까지 갖춘 사사진씨는 결코 헛발을 짚지 않고 차근차근 잘 추리해나가기 때문에 그걸 지켜보는 쾌감이 있음. 섬뜩한 살인사건의 추리 과정과 재의의 성장 스토리, 그리고 시체(?)인 사사진씨의 비밀 설정까지, 다루고 있는 소재가 많은데 그걸 작가님이 서로 긴밀히 잘 엮어서 이야기를 풀어내신 느낌ㅋㅋ

 

다만 사사진이 시원시원한 만큼 송재의가 답답한 측면은 확실히 있다. 재의가 점차 성장하기 때문에 후반부 갈수록 해결되는 문제긴 하지만, 그에게 ‘조심성 많은 일반인’의 수준을 요구하면 안 됨. 그는 쉽게 불안해 하고 패닉에 빠져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그의 대인기피증이나 상황적 맥락 등에 의해 어느 정도 이해 범위 내에 있는데, 이 작품의 진짜 빌런은 (진범 제외하면) 무능한 검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음…. 사사진씨에게 인외 능력이 없었다면 재의는 경찰들이 보호한다고 둘러싼 한가운데서 죽었을 거예요…….

 

경찰이 일한다고는 하는데 정작 사람 한 명 제대로 못 지키는 거나 검찰 내부에 있는 빨대 외에도, 얼굴이 알려진 유명인에게 쏟아지는 악플, 사생활 침해, 이웃 간의 층간소음 문제, 그리고 아웃팅과 성소수자 혐오까지 꽤 현실적인 피폐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서 그런 부분에서 멘탈 털리기도 했음ㅋㅋ 그리고 개인적으론, 연결점이 없는 두 개의 별개의 사건으로 이루어진 전체 구성도 좀 아쉬웠다. 뭔가 두 사건을 연결시키는 거대한 서사(그리고 찐 배후) 이런 걸 기대했는데, 그런 건 없었습니다ㅋㅋㅋ

 

사소하게 아쉬운 점들이 있기도 했고, 생각지 못한 현실 피폐에 마음이 힘들기도 했지만 상처 받은 병약수가 다정한 어른공의 손을 잡고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뭉클해서 좋았음. 무엇보다 사건 전개도 전혀 늘어지지 않고 긴박한 데다, 주인공수 외에도 박검, 강만진, 김진욱 형사, 진혁이랑 강호 등 조연들의 캐릭성도 확실해서 이야기가 생동감이 있다. 예상치 못했던 힐링물이라 그렇지, 인외 판타지 요소 섞인 추리물로도 정말 재미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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