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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BL

감상/ 비밀파수꾼

by 뀽' 2021. 7. 21.

비밀파수꾼  /  바크베

★★★★

판도라의 상자,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다

 

그 안의 것들을 보고도

당신이 나를 택할 리가 없으니까.

 

※주의: 스포일러라고 느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이런 작품을 만날 때마다 감상글에 무슨 말을 써야 할 지 난감하다. 핵심 내용이 스포일러 그 자체라 이렇게 공개된 공간에 쓸 수가 없음. 그니까 이게 좋은데… 참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 하며 뭔 정력제 광고처럼 괜히 의미심장한 말만 더듬거리게 되는 걸 이해해주세요…….

 

주인공 무운은 미국 명문가에 입양된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이 뒤로 하는 구린─하지만 중요한─ 일들을 맡아 수행하는 민간군사업체의 대표이다. 이번엔 미국 내 중국의 첩보 행위 증거를 잡기 위해 저우 회장의 침실 금고를 터는 임무를 맡아 무사히 잠입하는 데까지 성공했는데 어라, 웬 남자 한 명이 방 안에 서 있다. 그것도 금고가 아닌 그 옆에 걸린 한 그림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예상 못한 방해꾼에 잠에서 깬 회장까지, 혼돈의 카오스 상황에서 무운은 빠르게 결정하고 명령을 내린다. 금고가 아닌, 정체모를 방해꾼 남자와 그가 보고 있던 그림을 가져오라고. 결과는? 잭팟. 

 

한마디로 그 그림 쪽이 ‘진짜’ 금고였던 거다. 문제가 있다면 비밀번호와 회장의 지문이 모두 있어야만 열 수 있는 이 금고를 잘못 건드렸다간 안에 든 내용물이 모두 소실된다는 것. 게다가 저우 회장과 금고에 관해 뭔가 알고 있는 예쁘장한 방해꾼 윤휘서는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도통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중요한 퍼즐 조각임이 틀림없는 휘서를 쉽사리 죽일 수도 없는 무운은, 금고를 망가뜨리려 혈안이 되어 있는 이 까칠한 고양이와 거래를 하게 되는데.

 

그렇게 이 작품은 비밀을 지키려는 사람과 비밀을 파헤치려는 사람, 두 사람이 서로 밀었다 당겼다 줄다리기를 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처음부터 절대적 강자가 정해져 있는, 팽팽하지 못한 이 줄다리기가 전혀 다른 측면으로 흥미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윤휘서는 대체 왜 이 승산도 없는 게임에 이토록 처절하게 악을 쓰며 매달리는가?

 

윤휘서는 바보가 아니다. 모든 것이 무운의 얄팍한 호의와 동정에 기대고 있으며, 그의 변덕 한번에 전부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주제에 자신이 떼를 쓰고 있다는 것도 안다. 제 목숨이 걸린 일이라 그런가 하면 그것도 애매하다. 비밀이 오픈되면 자신은 죽는다고 매달리면서, 살려주겠다는 제안에는 고개를 저으며 비밀이 묻히기만 하면 저를 죽여도 좋다고 한다. 애초에 미중 관계가 걸린 중요한 증거품에, 누군지도 모를 혈혈단신 한국인 한명이 달려들어 이 난리를 치는 것부터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모든 의문점에 대한 답은 당연하게도 그놈의 ‘비밀’에 있고, 작품을 읽게 만드는 동력의 상당 부분이 이 비밀에 대한 호기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기대감이 커지는 만큼 불안감도 커짐ㅋㅋㅋ 별 거 아니면 어쩌지? 만약 진실이 허무하다면? 납득이 안 가면? 설마 맥거핀은 아니겠지? 그리고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 저는 울었습니다……. 휘서야 너 대체 어떻게 살았니… 이 모든 걸 그 어깨에 홀로 짊어지고 어떻게 살아왔어……. <비밀파수꾼>이라는 제목에서 중요한 건 비밀보단 ‘파수꾼’ 쪽이었구나 싶다. 휘서는 ‘지키는 자’이다. 오로지 그것을 위해서 그는 저 한 명에게 가해지는 모든 모멸과 수모, 폭력을 견디어 왔다. 

 

사실 양념을 뿌린 대사들이나 자극적인 설정들이 상당히 취향을 탈 작품이지만, 비밀에 대한 호기심으로 흥미진진하게 달리는 전반부와,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는 비밀이 밝혀진 후 전개되는 스케일 크고 스피디한 후반부라는 구성이 사람 정신 쏙 빼놓는다ㅋㅋ 후반부 갈수록 더 재밌었음. 주인‘공’인 무운에 대해서는 감상을 거의 못 썼는데, 휘서 굴리다가 후회공→발닦개라는 전형적이지만 설레는 루트를 타는 캐니까요. 무엇보다 다정하고 유능해서 좋았다. 후반에 무운이 못 믿고 긴장했던 것이 미안(?)해질 정도더라, 믿씁니다 무-멘. 

 

여는 순간 온 세상에 죄악과 고통이 가득해진다는 점에서 정말 말 그대로 판도라의 상자다. 그토록 숨기려 애쓴 상자가 기어이 열리고야 만 순간 지킬 것을 잃은 외로운 파수꾼. 하지만 늘 지키기만 바빴던 파수꾼에게, 이번엔 반대로 그 파수꾼을 지켜주는 사람이 생겼으니까. 재앙으로 가득찼던 그 상자 가장 밑바닥에는 희망이 남아있었다는 전승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 같은, 의외의 힐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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