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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me/Storyline

[검은방2] 제3장, 제4장 수혁수연

by 뀽' 2019. 1. 7.

- <밀실탈출 검은방 2> 스크립트 중 강수혁 x 양수연 관련 스크립트 일부만 기록한 게시물입니다.

- 당연히 ※스포주의※







제 3 장 

 단죄 



#

강수혁: …어떻게 이럴 수가..!


뒤로 꺾인 준용씨의 고개를 붙잡고 앞으로 숙였다. 누렇게 뜬 눈이 허공을 향하고 있다. 혜진씨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듣자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벽을 짚으며 잠시 고개를 숙였다. 


강수혁: 수연아!


수혁씨가 팔을 뻗어 젖은 머리를 끌어안았다. 


장혜진: 정말로 우릴 죽일 생각인가봐요… 거짓말이 아니었어. 정말로 죽일 생각이었어..!


혜진씨는 물러설 곳 없는 구석으로 계속 뒷걸음질 쳤다. 숨막히는 공기가 남은 자들을 짓누른다. 생존을 건 게임, 그 진정한 전개가 시작된 것이다.


장혜진: 내보내줘! 뭐든지 할테니… 제발..!


애처로운 비명이 허공에 부서져 갔다. 



#

수혁씨가 준용씨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강수혁: …….


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마치 물건을 다루듯 무심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혜진씨는 얼굴을 더 깊숙히 파묻었다. 


강수혁: 손잡이가 달린 단검이야. 엄청난 힘이군…. 목 뒤 경추를 대각선으로 관통하고, 턱 아래 경동맥 쪽으로 나왔어. 단검은 쓸만해 보이는데. 뽑아서 가져가는 게 좋겠군. 


순간 속이 울렁거리며 현기증이 느껴졌다. 


양수연: ……아뇨. 그대로… 놓아두세요. 부탁해요.


수혁씨는 잠깐 굳은 표정을 지었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강수혁: 알겠어. …무리하지 말고 저쪽에 가 있어.


나는 고개를 저으며 조심스럽게 준용씨의 얼굴을 살폈다. 


강수혁: 얼굴빛이 검어. …생각해 보면 점점 더 심해졌었지.


그의 말을 들으며, 준용씨의 누렇게 변색된 눈동자를 떠올렸다. 수혁씨가 갑자기 조용하다.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양수연: 뭐라도 발견했어요?

강수혁: 아, 아니…. 더 이상 조사할 게 없군. 이쯤에서 나가는 게 좋겠어.


재촉하는 얼굴에 어두운 빛이 느껴진다. 문쪽에 웅크린 혜진씨를 일으켰다. 수혁씨 쪽을 돌아보니, 의자 옆에 쭈그리고 앉아 바닥을 살피고 있었다. 


강수혁: 의자는 그냥 놓은 게 아니었어…. 마치 바닥에 붙인 것처럼 고정시켰군.


몇 번 흔들었지만 의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수혁: …잠깐, 저게 뭐지?


수혁씨가 엘리베이터 뒤쪽으로 들어갔다. 안쪽 구석의 작은 구멍 안에서 가는 끈이 삐져나와 있었다. 재빨리 다가가 가는 끈을 잡아 올렸다. 


양수연: …앗!


길게 늘어났던 끈이 튕기듯 구멍 안으로 빠져 버렸다. 


양수연: 미, 미안해요.

강수혁: …어쩔 수 없지. 늘어나는 걸 보니 탄성이 있는 끈이었나 보군. 


수혁씨는 다시 근처를 조사했지만 구멍 근처에서 눌린 자국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 강수혁 프로필 입수

 

 지식인   서준용의 시체를 조사하면서 뒷목과 턱을 경추와 경동맥으로 표현했다. 의학이나 해부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

양수연: 잠깐, 준용씨…는요?

강수혁: 시체를 끌고 가기엔 우리 모두 지쳐 있어. 


그는 고개를 저었다.


강수혁: 갑자기 여닫혔던 문을 생각해 봐. 만약 누군가 들어와 준용씨를 살해하고 도망쳤다면, 또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는 일이야. …조금이라도 몸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버리고 가는 편이 좋아. 

장혜진: …….


수혁씨가 문밖으로 나가고, 혜진씨도 창백한 얼굴을 숙이며 뒤를 따랐다. 둘에 이어 마지막으로 뒤따라 나왔다.


강수혁: 위험해!!


엘리베이터가 큰 소리를 내자 수혁씨가 손을 잡아 끌었다. 

 

쾅―!

 

엘리베이터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아래로 떨어져 갔다. 


강수혁: 수연아!! 괜찮아?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수혁: …지탱하는 줄이 끊어진 건가. 아니면…….


혜진씨는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

전진하자 좁은 통로가 나타났다.


양수연: PDA로 현장 사진을 찍어뒀어요. …경찰에 제출하면 도움이 되겠죠. 

강수혁: …….


수혁씨는 한박자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장혜진: 아직도 동작해요? …그 PDA. 여기가 어디쯤인지 나와 있어요?

양수연: 네…. 현재 위치는 3층으로 되어 있어요. 

장혜진: …그렇군요. 


혜진씨는 부옇게 흐린 눈을 비비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젖은 몸을 말리고 그녀가 기운을 차릴 때까지 기다렸다. 


* 양수연 프로필 입수

 

 기록   사체 발견 현장을 비롯한 여러가지를 PDA에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후일 경찰에 제출할 것을 대비하여 작성하고 있다고 했다.



#

혜진씨는 수혁씨의 등 뒤에 숨어 조심스레 방으로 들어섰다.


양수연: …….


거칠게 벗겨진 벽과 바닥의 붉은 자욱이 섬뜩한 분위기를 풍긴다. 


강수혁: …식당으로 쓰던 곳이었군.



#

캐비닛 중앙의 큰 자물쇠를 살펴보았다.


강수혁: 다른 곳을 찾아봐도 마땅한 게 없으니… 자물쇠를 어떻게 해봐야겠어. 


수혁씨는 펜치 집게를 가져와 고리 부분을 잡고 세차게 흔들었다. 펜치의 녹슨 손잡이와 함께 자물쇠가 부서져나갔다. 열린 문을 젖히고 캐비닛 안을 들여다 보았다. 


양수연: 열쇠예요!

강수혁: 잠깐. 뭔가 이상해.


열쇠는 반투명한 고체에 굳혀진 채 캐비닛 바닥에 붙어 있었다. 수혁씨가 바로 떼어내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 듯 했다. 


강수혁: 안 떨어지는군..!

장혜진: 뭘 굳혀 놓은 걸까요?

강수혁: 잘은 모르겠지만, 저걸 처리하기 전까지 열쇠를 얻지 못한다는 건 확실해. 


나무 망치를 꺼내 들었다.


양수연: 이걸로 저 고체를 깨 보죠.


몇 번 두들기자 가늘게 실금이 갔다. 


강수혁: 내가 하지. 


수혁씨가 망치를 빼앗아 들었다. 몇 차례 내리쳤지만 고체는 조금씩 금이 갈 뿐 완전히 깨어지지는 않았다. 그의 망치질에도 조금씩 짜증이 섞여갔다. 


강수혁: 이렇게 허비할 시간이 없다고!!

장혜진: …….

양수연: 수혁씨….


수혁씨는 망치가 부러질 때까지 고체를 두들겨 결국 깨어내는 데 성공했다. 


* 강수혁 프로필 입수

 

 스트레스   잘 되지 않는 도구를 신경질적으로 휘둘러 부숴버렸다. 점점 더 심해지는 스트레스가 그를 한계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강수혁: …들어올 때부터 여기가 신경쓰였어.


수혁씨가 장치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장혜진: 이건… 와인 저장고예요.


아무렇게나 병 하나를 빼 살펴보았다. 


강수혁: …라벨은 지워져 있지만, 그냥 봐도 꽤 오래된 것들이군. 


병을 다시 집어넣었다.


양수연: 잠깐, 저것 좀 봐요. 왼쪽 끝의 병이 유난히 튀어나와 있어요.

강수혁: 내가 꺼내보지.


수혁씨가 와인병을 잡아 꺼냈다. 병을 빼낸 수혁씨의 표정이 변했다. 와인병의 몸통에 종이가 말려 있었다. 급히 종이를 풀어 보았다. 하지만 종이는 텅 비어 있었다. 


장혜진: …빈 종이?

강수혁: …….


모두 망연자실한 얼굴이 되었다. 

수혁씨가 빈 종이를 불빛에 비춰보았다. 


양수연: 뭐가 보여요?

강수혁: …아무 것도.

양수연: 역시… 그냥 빈 종이일까요?

강수혁: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대로라면 그렇다고 할 수밖에. 

장혜진: 여기서 시큼한 냄새가 나요.


얼굴을 가까이 댄 혜진씨가 말했다.


강수혁: 시큼한 냄새? 와인향이 아닐까?

장혜진: …아니, 와인향하고는 분명히 달라요. 

양수연: 빈 종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떤 처리를 해 놓은 게 아닐까요?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았다.


장혜진: 그럴지도….

강수혁: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정체를 밝힐 수 있을까가 문제로군.

장혜진: 열이나 압력을 가한다던지..? 아니면 현상액처럼 용액에 담근다거나.


나름대로 방법을 궁리해 보았다. 빈종이를 가지고 싱크대로 향했다. 싱크대에 고여 있는 액체에서 시큼한 기운이 느껴졌다.


양수연: 이 액체… 물이 아니에요.

장혜진: 거기에 종이를 담그려고?

양수연: 시도해 볼 가치는 있지 않을까요?


잠시 생각하던 수혁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빈 종이를 잘 펴서 액체 위에 띄웠다. 종이가 서서히 젖어들었다. 


양수연: …이걸 보세요!


붉게 물든 종이 위에 글자가 나타났다. 


장혜진: 말도 안돼….

강수혁: 3, 4… 뭘 의미하는 거지?

양수연: 글쎄요…. 


각자 초조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장고에서 와인 한 병을 꺼냈다.


강수혁: 와인은 왜?

양수연: 3, 4라는 숫자의 뜻… 혹시 이 와인 진열장에 대한 건 아닐까요?

장혜진: 무슨 뜻이죠?

양수연: 구획이 나누어진 진열장을 바둑판처럼 보고, 왼쪽에서부터 3, 위에서부터 4… 이런 식으로요.


그러나 꺼내어 본 병은 보통의 와인병일 뿐이었다. 


장혜진: …그럴 듯한 느낌이었는데. 


병을 다시 집어 넣었다. 


강수혁: …잠깐. 방금 병을 밀어넣을 때 난 소리. 다른 병을 넣을 때와는 달랐어. 


혜진씨가 다시 병을 꺼내 살펴보았다. 


장혜진: 겉보기엔 전혀 다른 점이 없는데요.

강수혁: 아니. 거기가 아닙니다. 진열장 끝에 병이 닿을 때가 문제였어요. 진열장을 살펴야 합니다. 


그는 진열장 안쪽에 손을 집어 넣었다. 한참을 뒤적거리던 그가 손을 빼냈다. 


강수혁: 봐..! 안에 이런 게 있었어!


작은 버튼이 달린 리모콘이 있었다. 


양수연: 어디에 쓰는 걸까요?

강수혁: 글쎄, 이제부터 찾아야겠지. 


혜진씨가 리모콘을 눈 앞에 가져가 자세히 살폈다. 


장혜진: 글자가 거의 지워져 있지만, 송풍이란 글자가 남아 있어요. 



#

회색 리모콘을 들어 에어컨으로 향했다. 버튼을 누르자 낡은 에어컨이 서서히 동작했다. 에어컨의 송풍구가 열리며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강수혁: 뭐지? 방금 무슨 소리가….


웅크리고 앉아 바닥을 더듬는 혜진씨 옆에서 수혁씨가 자세를 낮췄다. 


강수혁: …이게 떨어지는 소리였군. 


그가 집어든 것은 작은 열쇠였다. 


장혜진: …….


혜진씨는 바로 옆에 있는 열쇠를 보지 못한 것이다. 


양수연: 혜진씨, 혹시 눈이 잘 보이지 않는 건-


그녀가 손을 뻗어 내 말을 저지했다. 


장혜진: 피곤해서 그래요!



#

열쇠를 가지고 와인 저장고로 돌아왔다.


장혜진: …….


혜진씨가 테이블로 향했다.


장혜진: 저… 한 잔 마셔도 괜찮을까요?

양수연: …와인을요?

장혜진: …네. 춥고, 목도 마르고…. 이걸 마시면 열이 좀 날까 해서요. 

강수혁: 생각해보면 우리, 지금껏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질 못했어. 


수혁씨가 말라붙은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강수혁: 그럼, 조금 마시고 이동하도록 할까요.


수혁씨가 벽에 걸린 글라스 잔 하나를 꺼내 깨끗이 닦았다.


강수혁: 혹시 모르니 잔은 이것 하나만 사용하죠.


나는 와인 키퍼로 봉해진 뚜껑을 열었다. 


양수연: 키퍼로 봉해 놓았다는 건… 누군가 마신 적이 있는 걸까요?

강수혁: 그렇겠지. 병의 상태를 보면 꽤 오래 전인 듯 해.


혜진씨가 첫번째로 와인을 따라 마셨다. 


장혜진: 시큼하지도 않고… 먹을만 하네요. ……정말 죽은 거였죠? 준용이….

강수혁: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준용씨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죽었어요. 

장혜진: 어째서, 이런 일을 하는 걸까요? 사람을 가두고, 눈앞에서 죽이고..!


그녀는 약하게 떨리는 두 손을 맞잡았다. 내 차례가 되어 와인을 따랐다. 와인을 넘기자 몸에 따뜻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강수혁: …2층 이후로는 에게서 연락이 없군. 

양수연: 준비한 덫에 아직 걸리지 않았다는 반증일 지도 몰라요. 


그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장혜진: 우리들… 여기서 나갈 순 있는 걸까요?

강수혁: 물론입니다. 


잔을 든 수혁씨는 연거푸 석 잔을 마셨다. 


강수혁: 준용씨를 잃었지만 아직 우린 세 명…. 살아남아 여기서 나갈 겁니다. 


말을 마친 수혁씨가 잔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강수혁: 무슨 수를 써서라도…….


키퍼 뚜껑을 닫았다. 


장혜진: 잠시… 한 잔만 더요.


닫힌 병을 혜진씨에게 건넸다. 그녀는 뚜껑을 열고 한 잔을 더 따랐다. 


장혜진: 마음이 조금은 안정되는 것 같아….


혜진씨는 뚜껑을 덮고 병을 내려놓았다. 


강수혁: 너무 많이 마시진 말아요.


병을 흔들어 소리를 내보였다. 


양수연: 아직 많이 남았어요. 

강수혁: 그렇군…. 자, 이제 열쇠로 문을 열 수 있는지 알아보죠.



#

세 자리 암호를 숫자 키로 입력하는 디지털 도어락이다. 


양수연: 정답에 대한 힌트가 전혀 없어요. …어떻게 하죠?

강수혁: 글쎄….


누구도 뾰족한 수를 떠올리지 못했다.


강수혁: …일단 아무거나 눌러봐야겠어.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조합해 보았지만 도어락은 해제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강수혁: 제기랄… 이 방법으론 끝이 없겠어!


혜진씨는 눈 사이를 손으로 짚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양수연: …침착하게 생각해 보죠. 가지고 있는 것을 확인해 보고… 서로 작용하는 게 있는지 생각해 보고. 사용할 만한 곳이 있는지 탐색해 보는 거예요. 

강수혁: …응.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조급한 마음에….


괜찮다는 손짓을 하며 다시 방 안을 둘러보았다.



#

갑자기 혜진씨가 손바닥을 짝 마주쳤다. 


강수혁: 무슨 일이죠?

장혜진: 갑자기 생각났어요. 전에 케이블에서 본 적이 있는 장면인데, 


그녀는 연필을 깎고 남은 가루를 우리에게 보였다. 


장혜진: 도어락의 숫자 버튼 부분에 이 흑연 가루를 입으로 불어내는 거예요!

양수연: 그럼..?

강수혁: 지문이 많은 버튼에 흔적이 남겠군요!


혜진씨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수혁: 좋아요. 당장 시도해 봅시다!


흑연 가루를 불어 도어락에 뿌렸다. 가루가 숫자 버튼에 붙어 흔적을 남겼다. 



#

두터운 철문이 갈라지듯 열렸다. 문의 저쪽 너머는 온통 어둠에 싸여 있다.


장혜진: …괜찮을까요?

강수혁: 여차하면 PDA 불빛을 손전등처럼 쓸 수 있을 겁니다. 


혜진씨는 불안한 눈빛으로 수혁씨의 뒤를 따랐다. 


강수혁: 수연아, 뭐하고 있어? 가자!


그의 부름에 문 앞으로 달려갔다. 


양수연: 미안해요. 혹시 다른 쓸만한 게 없나 찾아봤어요.


수혁씨는 잠시 긴장이 풀린 얼굴을 했다. 


강수혁: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항상 같이 다니는 게 안전해. 


그가 팔로 어깨를 감쌌다. 


 온기가 느껴진다. 

 그 따뜻함이 기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저려왔다. 


긴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장혜진: …느낌이 좋지 않아.


혜진씨가 중얼거렸다. 그 순간, 

달칵. 등 뒤의 문이 닫혀 버렸다. 


장혜진: 안돼!!!


들어오던 불빛까지 차단되어 방 안은 완전히 어둠에 싸여버렸다. 


강수혁: …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수혁씨가 낮게 중얼거렸다. 잠시 제 자리를 지켰다. 새까만 침묵 속에 모두의 거친 숨소리가 울린다.


장혜진: …바, 반대쪽…. 위층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요..!


혜진씨가 숨죽인 소리로 외쳤다. 


강수혁: …모두 뒤로 숨어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나와 혜진씨를 뒤로 보내고 그는 조심스레 앞으로 향했다. 


발소리다.

누군가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긴장감이 복도를 가득히 채운다.


강수혁: …….


수혁씨는 자리에 멈춰 잠시 숨을 삼켰다. 

그리고는 정면을 향해 내달렸다..!




제 4 장 

 암흑 

― 양수연 시점 ―



#

???: 젠장 쳤다 이거지!!


악에 받힌 고함이 방 안을 울렸다. 


장혜진: 어, 어쩌죠!?

강수혁: 포위당한 상태지만 어둠 속이라 승산은 있어..! 수연이와 혜진씨는 어디로든 피해 있어!


둔탁한 충격음과 거칠고 메마른 숨소리가 방 안을 할퀴어갔다. 


???: 불빛을 내면 위험해!!


주위를 더듬으며 외곽으로 도망치는데 누군가 앞으로 쓰러졌다. 


양수연: 꺅!!!

강수혁: …수연아!!!


반대편 끝에서 수혁씨가 외쳤지만 대답할 수는 없었다. 비명을 삼킨 채 계속해서 움직였다. 더듬거리는 손 끝에 통로가 만져졌다. 재빨리 안으로 숨어들었다. 손끝에 타일로 된 바닥이 느껴졌다. 잠시 숨을 죽이고 있다가 PDA의 불빛을 비춰보았다. 


양수연: …….


…화장실이다. 여러 개의 칸으로 나누어져 있다. 발소리를 죽이며 열린 칸으로 들어갔다. 고리를 걸어 문을 잠갔다. 등을 붙이자 억눌린 숨이 터져나왔다. 


양수연: 헉… 헉…….


입을 틀어막아 가쁜 숨소리를 죽였다. 문틈에 얼굴을 대고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고함과 함께 무언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밖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가슴이 뛰고 머리가 어질어질하다. 


그때,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비명을 속으로 삼켰다.

……누굴까?

수혁씨? 혜진씨?

아니면 다른 누구…?


퍼뜩 정신을 차리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나간 걸지도 모른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을 문틈에 바짝 붙이고 조심스레 밖을 살폈다. 


양수연: !!!


 문틈으로 바라보는 눈과 마주쳤다..!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문이 흔들린다. 잠긴 문을 열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풀려가는 문고리를 붙잡으려 했지만 너무 늦어버렸다. 문이 퉁겨지듯 열리며 거구의 남자가 칸 안에 몸을 들이밀었다. 몸부림치는 내 입을 커다란 손이 틀어막았다. 


???: …귀 아프니 조용히 좀 하자고. 난리통 피하는 기척을 느껴 와본 것뿐이니까. 


입이 막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손을 떼며 물러섰다.


???: 두개골을 흔드는 좋은 비명 잘 들었어. 헌데 번지수가 틀렸어. 난 나쁜 사람이 아니라 정의의 사자 쪽에 가깝다고. 


밖의 소란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태도다. 그는 떨어진 PDA를 주워 불을 비추었다. 


???: 자, 일어나. 언제까지 앉아 있을 거야?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 …이제 나가서 상황을 정리해 보자고. 


무어라 할 새도 없이 그의 손에 끌려 밖으로 나갔다. 


???: 자! 정지!! …경찰이다. 고만들 쳐 싸워!


남자가 불빛을 이리저리 비추며 소리쳤다. 시끄럽던 실내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복도 안쪽에서 낯선 남자가 뛰어나왔다. 


???: 무열 선배!!?



#

3층으로 다시 돌아가려 했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제자리에 모여 그간의 일을 이야기했다. 


하무열: 요약하면, 두 팀이 미묘한 시간차를 두고 같은 장소를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중에 두 사람의 희생자가 나왔다… 맞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무열: 그놈이 다시 한 번 장난질을 칠 거라고 예상 못했던 건 아니었지만..!


하무열이라는 형사는 미간을 손으로 짚은 채 몸을 벽에 기댔다.


류태현: …희생을 막지 못해 면목 없습니다. 

하무열: 자책은 집어치워. 저쪽 팀도 송장 치운 건 마찬가지 아닌가. 아직 두명째라는 사실에 만족하자고. 그보다는 앞으로의 사건을 막는 데 주력하지.

류태현: …네. 

강수혁: …하무열씨. 당신도 저 순경… 류태현씨처럼 범인에게 원한을 산 사람입니까?


수혁씨가 경계심이 담긴 시선을 보냈다. 


하무열: 나같이 질긴 형사는 모든 범인에게 원한을 사는 법이라네. 한번 물을 먹인 놈들에게는 더욱 그렇지. 


그의 발언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 형사는 다시 태현이라는 순경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무열: 그나저나, 혹시 총소리를 듣거나 총을 발견한 사람은 없나?

김재하: 총소리?

하무열: 그래. 사실은 내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총이 없어졌거든. 


총이 사라졌다는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류태현: 무열 선배는 현장에 나가지 않으시잖아요. 총을 휴대할 수 없을 텐데..?

하무열: …그래서 말했잖나. 개인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거라고.

김재하: 현직 형사가 내근직인데도 불구하고 총기를 휴대하고 다녔다? …재미있군.

하무열: 범인이 그 총으로 댁의 머리를 날려버려도 재미가 좋으실까?

김재하: …뭐, 뭐야?


형사의 빈정거림에 기자는 툴툴거리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무열: 좌우당간, 그 총을 찾으려고 증거를 모으다 습격을 당했어. 정신을 차리니 암흑천지에 갇혀있더군. 뭐 어째저째 나오긴 했다만……. 


잠시 적막이 흘렀다. 


류태현: 무열 선배..?

하무열: …!


순간 멍해졌던 그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하무열: 젠장! 클로르포름 때문에 이 모양이야!

장혜진: …클로르포름?

김재하: 그건 마취약 아니야?

하무열: 그래… 날 기절시킨 약이지. 심하게 당하면 단기 기억 상실이나 몸을 가누지 못하는 중독 현상이 일어나게 돼. 

양수연: 그렇다면… 지금 형사님 상태는..?

하무열: 형사님이라니 간지럽군. 그냥 무열씨라고 불러. 그게 별로면 무열 오빠라던지. 

강수혁: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시죠. 지금 당신 상태가 어떻다는 겁니까?

하무열: 까칠하긴….


무열씨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하무열: …실은 몸도 제대로 가누기 힘들어. 게다가 기억도 온전하지 못해. 이것만은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 

허대수: 쳇… 기껏 경찰이 더 늘어나나 했더니 이 모양이라니. 

하무열: 그래도 자네보다는 쓸만할 거야. 자네가 50명 정도는 모여야 겨우 '이 모양'의 머리가 되겠지. 


말을 마친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무열: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게 허강민의 두 번째 불꽃놀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 되었군. 모두 자기 를 이야기해주지 않으니 이것 참 재미있… 아니, 어렵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얌전히 죽어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거기 아가씨.

양수연: 네? 저요?


무열씨가 갑자기 나를 가리켰다. 


하무열: 이제부터 나를 좀 도와줘야겠어. 

양수연: 제, 제가… 형사님, 아니… 무열씨를요?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태현씨가 다가왔다. 


류태현: 무, 무열 선배. 저는..?

하무열: 이제 자네는 경찰 아닌가. 다른 사람들을 잘 챙겨 달라고. 내 스타일대로만 가다간 또 싸그리 죽을지도 모르잖나. 물론 자기 몸도 알아서 챙겨야겠지? 믿어보겠네. 


뒷머리를 긁적이는 태현씨를 놓아둔 채, 그는 내게로 손을 뻗었다. 


하무열: 자, 그럼 첫 번째 임무야. 날 좀 일으켜 달라고..!


수혁씨가 불만에 가득 찬 눈으로 노려보았지만 무열씨는 모른 척 몸을 일으켰다. 


하무열: 해결해야 할 수수께끼가 많아. 몸이 온전했다면 상황이 더 나았겠지만… 일단은 이대로 만족해야겠군. …그런데 자네의 애인이라는 저 강수혁이란 친구 말이야. 

양수연: …네?

하무열: 나와 류태현 순경에게 쓸데없는 적개심을 품고 있군. 경험상 그런 자는 두 부류로 나누어지네. 하나는 지나치게 도덕적이라 물렁한 공권력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도덕시민. 다른 하나는 큰 죄를 저질러 경찰만 보면 오금이 저리는 중범죄자. …자네 생각은 어떤가?


엉겁결에 눈을 피했다. 


양수연: 그… 글쎄요. 전 잘….

하무열: 그렇군. 나중에라도 내게 할 말이 생각난다면 언제라도 환영하지. 여기 오게 된 이유인 에 대한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야. 


앞서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무열: 따라와! 조명이 없으니 태현이와 자네의 PDA 불빛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양수연: 아… 네!!


황급히 그의 뒤를 쫓았다. 


* 양수연 프로필 입수

 

 조수   4층 화장실에서 만난 하무열 형사는 다짜고짜 그녀를 조수로 삼았다. 예전의 류태현 순경과 같은 느낌을 받았던 걸까?





#

(4층 화장실 안쪽에서 잠긴 문 여는 미션)

자석을 문 바깥쪽 끝에 대고 살짝 움직였다. 문 안쪽에서 걸쇠가 쩔꺽이는 소리가 들렸다.


양수연: 통하는 거 같아요..!


하지만 걸쇠를 일정 이상 움직이지는 못했다.


강수혁: 일단 방법은 알았으니 됐어. 수고했어 수연아. 

하무열: 다정한 인사는 그쯤 하시고… 전문가를 초빙해야 할 순서야. 최고의 범죄형 얼굴에게 이 중임을 맡겨야겠어. 본격 범죄형 언론인 김재하 선생님께 자석 놀이를 부탁해보자고.

김재하: …형사님 말본새 덕에 영 의욕이 사라지는데. 


재하씨는 투덜대면서도 자석을 잡고 자세를 낮췄다. 그는 자석을 문 바깥쪽 끝, 걸쇠의 반대쪽에 대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문 안쪽에서 걸쇠가 쩔꺽이는 소리가 들렸다. 몇 번 움직여보던 재하씨가 일어섰다. 


김재하: …됐어. 이제 열릴 거야. 


수혁씨가 다가가 문을 움직여보았다. 열린 칸 안에서 납작한 철판을 발견했다.



#

[심문:  양수연 ]


하무열: 수연양에게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방 안을 둘러보던 무열씨가 지나가듯 말했다. 


양수연: …예? 어떤 것을….

하무열: 가만보니 몇몇이 심하게 골골거리고 있더군. 수연양은 어떤가?


무열씨는 건강에 대해 물었다. 


양수연: 저… 저는 약간 피곤한 것 말고는 괜찮아요.

하무열: 그거 다행이군.


그는 싱긋 웃었다.


하무열: 평소에도 어디가 아프다던가 하진 않았단 말이지?

양수연: …네. 


무열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먼 곳을 바라보았다. 


하무열: 함께 잡혀들어온 강수혁에 대한 건데….

양수연: 수혁씨가 왜요?

하무열: 별 거 아냐. 그냥 어떤 관계인지 알고 싶어서 그래. 

양수연: 저희는 사귀는 사이예요. 이제 막 1년이 됐어요. 


무열씨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하무열: 그런 거야 대충 봐도 아는 거고. …그래. 첫 만남이 어땠는지 알려주게. 


…왜 이런 걸 묻는 걸까?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양수연: 1년 전 쯤 독감이 유행했었죠. 그때 심하게 앓다가 입원했었어요. 거기서 우연히 수혁씨를 봤고… 제가 먼저 고백해서 사귀게 됐죠. 

하무열: 병원이라… 강수혁은 의사인가?

양수연: 아뇨. 수혁씨는 행정실에서 근무해요.

하무열: 호… 그럼 자재나 기기를 관리하는 경비 아저씨?

양수연: 낮은 직위에서는 그런 일을 하지만… 수혁씨는 행정실장이었어요. 

하무열: 행정실장? 저 나이에?

양수연: 저…… 실은 수혁씨는 그 병원 원장님의…

하무열: 뭐 아들이나 이런 거겠지. …수연양이 먼저 고백할 만도 했구만. 

양수연: 네…. 수혁씨는 원장님의 아들이었어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 


하무열: 생각보다 배경이 빵빵한 자였군. 경찰 우습게 볼 만도 했어. 


무열씨는 혼자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무열: 여기 오게 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양수연: …네?

하무열: 허강민은 취향이 변태라, 자기 기준에서 죄라는 것을 지은 자를 데려온다네. 아마 수연양이 여기 온 것도 무관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네만. 


그는 내 표정을 힐끗 쳐다보았다. 


하무열: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네. 하지만 우린 파트너야. 서로 신뢰를 쌓는 게 좋지 않겠나. 자, 대강 감 잡히는 거라도 말해보게.


잠시 고민했다. …말을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결심하고 입을 열었다. 


양수연: 저… 사실은 짐작가는 게 하나 있어요. 

하무열: …뭐지?

양수연: 저는…… 약혼자를 죽게 한 적이 있어요. 


 말을 꺼내자 그의 모습이 다시 보이는 듯 했다. 


하무열: 약혼자라면… 지금의 남자친구와는 다른 사람이겠군. 


고개를 끄덕였다. 


하무열: 뭐… 산 사람은 살아야지. 새 사람을 만나는 게 지난 사람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하지 않나.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무열: …그렇지만, 그 죽게 했다는 부분이 궁금하군. 알려줄 수 있겠나?

양수연: 3년 전의 일이에요. …그를 옆에 태우고 가던 중에 사고가 일어났어요. 

하무열: 태우고 갔다…? 자네가 운전했나?

양수연: …네.

하무열: 혹시 다른 차와 관련해서 일어난 사고였나?

양수연: 아뇨. 빈 도로였어요. 순전히 제 과실로….


…어느새 눈가가 젖어들었다.


양수연: 커브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보니…….

하무열: ……강수혁은 이 이야기를 알고 있나?


고개를 저었다. 


양수연: …아뇨. ……실은 이번 여행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무열: 그렇군. 여행이 이 모양이 되었으니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야겠구만. 

양수연: ……네. 


고개를 끄덕인 무열씨가 빙글 뒤로 돌아 외쳤다. 


하무열: 어이! 면허 있는 사람 손 들어봐!


깜짝 놀라 그에게 매달렸다. 


양수연: 무, 무열씨..!?

류태현: 제가 있습니다!

하무열: …거기 말고. 다른 사람은?

김재하: 난 없어. 사람은 걷는 게 제일이지. 

장혜진: 없어요. 

허대수: 아직 안 땄는데. 

하무열: 어이! 강수혁씨. 자네는 어떤가?

강수혁: 없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탈 것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버스 같은 건 몰라도 승용차는 못 탑니다. 

하무열: 그렇군! 모두 협조에 감사하네.


말을 마친 무열씨가 다시 이쪽을 바라보았다. 


양수연: 무열씨? 무엇을..?

하무열: 진정한 신뢰 관계 구축을 위한 거랄까. …아무튼 긴 대화에 응해주어 고맙네. 그나저나 마이카 시대에 역행하는 무면허 인종들이 왜 이렇게 많이 잡혀왔어..? 말을 많이 했더니 머리가 아프구만. 아참, 수연양이 PDA에 남긴 정보들 말야. 정말 우수하더군! 신중하고 정확하게 기록했어. 

양수연: 아… 칭찬이신가요? 고맙습니다.

하무열: 때로는 개인 의견을 너무 억제하고 사실 위주로만 쓴 경향이 있었지만 말이야. 마음에 쏙 든다네.


그는 앞으로도 기대한다며 어깨를 두드렸다. 잠시 후, 이 방의 카드키를 찾았다는 말을 듣고 다시 방 탐색에 나섰다. 


* 양수연 프로필 입수

 

 심문결과   강수혁과는 1년 전 병원에서 처음 만나 먼저 고백하여 사귀게 되었다. 전 약혼자를 본인 과실의 교통사고로 죽음에 이르게 한 죄가 있다.



#

벽난로 주변을 살폈다. 안쪽을 들여다보던 태현씨가 손짓했다. 


류태현: …정면에 뭔가가 있습니다. 

강수혁: 연통과 연결된 뚜껑인가?

류태현: 끝에 뭔가가 삐져나와 있는데요? 빼내보겠습니다. 


태현씨가 팔을 뻗어 뚜껑 부분을 들어올렸다. 


류태현: …엇!


그가 뚜껑을 놓치자 튕기듯 닫혀버렸다. 


장혜진: 어떻게 된 거예요!!


재하씨가 뚜껑을 다시 열어보았다. 


김재하: 뚜껑에 용수철 같은 게 달렸어. 놓치면 바로 닫힐 법도 하군. 뚜껑 안쪽의 고리에 고정했어야 되는데.

허대수: 안에 끼어있다던 건 어디 갔어?

김재하: …닫히는 뚜껑에 부딪혀 안쪽으로 들어가버린 것 같군. 


수혁씨가 태현씨의 멱살을 붙잡았다. 


강수혁: …이제 어쩔 겁니까!

장혜진: 중요한 물건이었을지도 모르는데..!


무열씨가 손을 들어 둘을 제지했다.


하무열: 진정들 해. 이 방과 맞닿은 벽난로를 살펴보자고. 마주보는 방은 연통도 연결되어 있을지 모르잖나. 

류태현: 제가 가보겠습니다..!


태현씨가 옷을 털며 나섰다. 


양수연: …저도 가볼게요. 

하무열: 그래. 사이좋게 다녀오라고. 


수혁씨가 말리는 눈빛을 보냈지만, 못 본 척 반대편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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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현: 안쪽을 살펴보겠습니다.


정면의 연통 뚜껑을 열자 반대편에서 환한 빛이 보였다. 


류태현: 반대쪽 사람들이 비추는 불빛인가….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었군요. 


잠시 살펴보던 태현씨가 말했다. 


류태현: 저쪽엣 날아온 것은… 카드였군요. 다행히 이쪽으로 넘어 와 있었습니다. 


태현씨가 카드를 집어들었다. 


류태현: 저 때문에 많이 놀라셨죠?


갑자기 그가 말을 걸었다. 


양수연: …네? 아, 아뇨.

류태현: 남자친구분과 함께 오셨다고 했었죠. …이런 일을 당하게 되어서 정말 유감입니다. 

양수연: 태현씨야말로… 두번째라고 들었는데요. 

류태현: 아… 네. 악연입니다… 정말로. 그때는 저도 여자친구와 함께였었죠. 

양수연: 아… 그런 이야긴 처음 들었어요. 

류태현: 네. …힘들 때일수록 수혁씨와 서로를 의지하면서 이겨내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카드키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말을 이었다. 


류태현: 어떤 죄를 지었다고 해도,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혹시라도 마음 약해지지 마세요. 저나 무열 선배… 그리고 수혁씨까지. 수연씨가 무사히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그의 말투가 묘하게 다정해서 갑작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류태현: 미, 미안합니다. 

양수연: 아뇨… 그냥…….

하무열: 어이! 일 다 봤으면 냉큼 돌아와!


연통 너머에서 무열씨가 소리쳤다. 


류태현: …네!


좌2 객실로 돌아와 카드키를 건네고 합류했다. 


하무열: 위험하니 볼일 봤으면 빨리빨리 돌아오라고.

강수혁: 수연아, 별 일 없었어?

양수연: …아무 일도.


수혁씨의 눈은 경계심에 차 있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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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혁: 이걸 사용해보죠.


잠긴 벽장에 벽장 태그가 붙은 열쇠를 꽂았다.


하무열: 벽장에 벽장 열쇠라! 친절하게 태그까지 붙여주니 고마워서 절이라도 해야겠군.

강수혁: …….


수혁씨는 무열씨의 말을 무시하고 서랍을 열었다. 


허대수: 저거… 엉뚱한 게 들어있는 거 아냐?


벽장 안에는 전기 플러그가 달린 얇은 액자가 들어 있었다. 


하무열: 모니터야? 액자야?

장혜진: …디지털 액자예요.


어리둥절한 무열씨 옆에서 혜진씨가 대답했다. 


장혜진: 전선을 연결하면 저장된 이미지를 볼 수 있는 방식이죠.

김재하: 그런 게 있었군. …처음 봤어. 

하무열: 세대 차이나서 못 어울리겠군. 디지털 액자도 모르면 어떡하나?

김재하: 뭐!? 당신도 몰랐잖아!

하무열: 난 알면서 물음을 던진 것뿐이라네. 모니터야? 액자야? …하고.

김재하: …관두지.


인상을 쓰고 돌아서는 재하씨를 무시하고 무열씨가 외쳤다. 


하무열: 자! 그럼 200V 콘센트를 찾아 액자 안의 이미지를 확인해 보자고.


수혁씨가 액자를 꺼내는 순간, 서랍 안쪽에서 덜컥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수혁: 무슨 소리지?


서랍 안쪽에 R1이라고 새겨진 작은 버튼이 있었다. 


류태현: 액자에 눌려 있다가 제 자리를 찾은 모양입니다. 

하무열: …어딘가 변화가 있을 지도 모르겠군. 찾아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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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1문 카드 리더기 전원 켜짐)

허대수: 디지털 액자를 꺼내면서 눌렀던 R1 버튼 말이야, 우1 문을 나타낸 게 아니었을까?

강수혁: 그럴지도 모르죠. 어쨌든 들어갈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우1 라벨이 붙은 카드키를 리더기에 댔다. 조용히 문이 열렸다. 


[심문:  강수혁 ]


하무열: 강수혁씨. 

강수혁: 무슨 일입니까. 

하무열: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서 묻고 싶은데. 

강수혁: …딱히 할 말 없습니다.


수혁씨는 차갑게 거절했다.


하무열: …일단 지금 물어보는 걸 대답해주면, 이후로는 또 묻지 않겠네. 

강수혁: ……좋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어나 보죠.


무열씨는 '이후로는'과 '또 묻지 않겠네' 사이에 작게 '같은 질문은'이라고 말했지만 수혁씨는 듣지 못한 듯 했다. 


하무열: 가만 보니 몸상태 나쁜 사람이 많더군. 강수혁씨는 어떤가?


무열씨는 건강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강수혁: …피곤하군요. 

하무열: 그 외엔 괜찮은가? 소화불량이나 복부팽만감, 변비나 코막힘 등등…. 

강수혁: …다행히 그런 건 없군요. 그건 그렇고, 왜 수연이를 시종처럼 부리며 다니는 겁니까?


수혁씨는 무열씨에게 적의가 담긴 눈빛을 보냈다. 


양수연: 저… 난 그런게…

강수혁: 수연이는 가만 있어봐! 난 지금 하무열씨에게 이야기하는 거니까.

하무열: 커플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가만 있어봐!…가 뭔가? 그녀기 원하지 않는다면 이대로 조수 계약 해지하지. 어떤가?


두 남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양수연: 저… 무열씨가 억지로 날 끌고 다니는 건 아녜요. 

하무열: 그것 보라고. 억울하면 미덥지 못한 자신의 태도와 처신을 생각하게.

강수혁: 당신이 뭔데 내게 이래라 저래라입니까?

하무열: 나? 일행의 유일한 형사.


수혁씨는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하무열: 허강민의 속죄 버라이어티에 끌려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강수혁: 무슨 뜻이죠?

하무열: 혹시 짚이는 게 없냐는 이야기야. 남에게 크게 원한을 할 만한 일.


그는 나를 힐끗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강수혁: 모릅니다. 애당초 정신병자에게 붙잡힌 내게 죄를 묻는다는 게 우습군요. …만약 내게 어떤 죄가 있다고 해도, 여기에 와서 단죄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수혁씨가 강한 어조로 소리쳤다. 


하무열: ……수연양이 방해된다면 잠시 자리를 피하게 해줄까?

강수혁: 그런 식으로 말한 적 없습니다!

하무열: 좁은 데서 왜 이렇게 소리를 치시나. 


강경한 그의 태도에 무열씨도 더 이상 같은 질문을 하진 않았다. 


하무열: 이게 참 궁금한 건데 말이야… 왜 자네들만 세트로 들어왔을까?

강수혁: 모르죠. 정신병자의 행패에 이유가 있겠습니까?


수혁씨는 불쾌하다는 어조로 대꾸했다. 


양수연: …함께 이동 중이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무열: 1주년 기념 여행이었다지? 드라이브라도 다녀올 생각이었나?

양수연: 아뇨. 배낭여행을 가려고 했었어요. 

강수혁: 수연아. 저 형사가 묻는 것 이상의 말은 해 줄 필요 없어. 


수혁씨가 말을 끊었다. 


하무열: 매정한 친구구만…. 여자친구는 저렇게 다정다감한데.


무열씨는 뒷목을 긁적였다. 


하무열: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나머지 사람들이 한명씩 잡혀온 건 솔로라서 그렇단 말인가!? …그건 좀 슬프구만.


그는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 


하무열: 여기까지 하세. 불친절한 답변 고맙네.

강수혁: 당신… 정말 기분 나쁜 사람이군요.

하무열: 자네도 꽤나 뒤 구린 젊은이로군.


노려보던 수혁씨가 돌아서 나가버렸다. 


* 강수혁 프로필 입수

 

 심문결과   피곤함 외의 상태는 양호하다. 여기 오게 된 이유는 짐작가는 것이 없다고 일관했다. 양수연과 같이 끌려온 점에 대해서도 모호한 정보만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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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끝, 3층으로 내려가는 문이 열려 가느다란 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하무열: 4층은 이제 충분히 조사해 봤어. 


무열씨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하무열: 마침 내려가는 문도 열렸고. 3F 열쇠의 용도 조사와 110V 젠더를 구하기 위해 3층에 가봐야겠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강수혁: 이래서는… 마치 놈이 짜 놓은 동선대로 움직이는 게 아닙니까!

하무열: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네. 자네라면 동선을 어기고도 길을 찾을 수 있겠나?


…누구도 딱히 대답할 말은 없었다. 


하무열: 여러 말 해봤자 입만 아파. 어서 3층으로 이동하지. …어떤 곳인지 궁금하구만.

장혜진: 저, 저기요.


혜진씨가 앞으로 나섰다. 


장혜진: 다들 지친 상태인데… 여기서 잠깐만 쉬고 가면 안돼요? …한두시간 만이라도. 

허대수: …동감이야. 계속되는 심문에, 탐색에…. 더 이상은 못해먹겠다고. 

강수혁: …….


수혁씨는 피로한 기색으로 분위기를 살피는 눈치였다. 


양수연: 어떻게 하죠?


무열씨는 한숨을 쉬며 턱을 긁었다. 


하무열: …이봐, 이중에서 가장 쉬고 싶은 건 환자인 이 몸이라고!


그러나 한번 소란스러워진 분위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제 4 장 

 암흑 

― 류태현 시점 ―



#

강수혁: 수연아, 넌 어때? 계속 움직일 수 있겠어?

양수연: 쉬기로 결정된다면… 조금 숨을 돌리고 싶긴 해요.


수혁씨는 고개를 끄덕이고 무열 선배를 바라보았다. 


강수혁: 물에 빠지고, 격투를 벌이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잠깐만 휴식하죠.


무열 선배는 난감한 빛을 띄웠다.


하무열: 난 바로 조사해 봐야 한다는 생각일세. 정 그렇다면 휴식조와 정찰조를 나누도록 하지. 


사람들은 무열 선배의 팀 분할 제안을 받아들였다. 


류태: 휴식조는 한 방에 모이도록 할까요?

장혜진: 아뇨. 따로 들어가게 해주세요. 어차피 방은 남고, 카드키로 잠글 수 있잖아요?


무열 선배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무열: 그럼 각 방의 카드키를 나눠줄 테니 문을 잠그고 쉬도록 하게. 단, 3층에 내려갔던 사람들이 돌아올 때까지만이야. 


대수씨도 양 팔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허대수: …나도 쉬겠어. 내내 도끼질을 하느라 지쳤다고.

강수혁: 저도 빠지겠습니다. 


수연씨도 살짝 앞으로 나왔다. 


양수연: 저도….

하무열: 뭐야. 조수 사직인가?

양수연: …죄송해요.


그녀는 민망한 듯 작게 웃었다. 결국 대부분이 휴식조로 빠져 나가고 무열선배와 나, 재하씨만 정찰조로 남았다. 


하무열: 이거야… 남은 사람은 경찰 둘에 기자 하나인가. 

김재하: …사회고발 프로같군. 

류태: 저희 셋이면 전문성과 전투 능력이 있으니, 정찰에는 최적의 조건일 겁니다. 

하무열: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우울해서 어쩌겠나. 

강수혁: 그럼, 쉬는 사람들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등 뒤에서 수혁씨가 말했다. 


허대수: 쉰다고 생각하니 더 피곤해지네. …난 여기로.


대수씨는 어깨를 두드리며 우3 객실로 사라졌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수연씨도 발걸음을 옮겼다. 


양수연: 그럼 전 이쪽에서 쉴게요. 

강수혁: 같이 있어줄까?

양수연: …미안해요. 피곤하다보니….

강수혁: 괜찮아. 난 옆방에 있을게. 


수연씨는 우2, 수혁씨는 우1 객실로 들어갔다. 


하무열: 커플은 이렇게 사라지고… 남은 솔로는 어디서 쉬시나?


혜진씨는 대답하지 않은 채 좌3 객실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렸다. 


김재하: 댁은 긴장감이라는 감각이 없는 건가? 아니면 클로르 뭐시기에 뇌까지 녹은 건가?

하무열: 김재하 기자님도 객실에서 휴식이나 취하시는 게 좋겠구만. 

김재하: …됐어! 가기나 하자고. 


실랑이를 벌이며 계단 앞까지 왔다. 


양수연: 잠깐만요!


조용히 외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수연씨가 달려왔다. 


류태: …수연씨? 무슨 일이죠?

양수연: 생각해보니 저희 일행이 아무도 안 가는 것 같아서요. 저도 따라갈게요.

하무열: 조수 복귀인가? 쉰다고 하길래 그만 두는 줄 알았다네. 

양수연: 죄, 죄송해요.

하무열: 뭐, 잘되었지. 저쪽 팀의 진행 경로나 정보 역시 필요하니까. 

양수연: 네. 생각해 보면 이쪽이 더 안전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김재하: 남자친구 곁보다도 안전하단 말이야?

하무열: 든든해 보이는 타입은 아니잖나. 젊은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번지르르한….

류태: …뭐, 그런 건 각자의 느낌 차이겠죠. 그럼 함께 가요.


무열 선배의 말을 적당히 끊고 대열을 재정비했다. 


하무열: …그럼 모험의 세계로 떠나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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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무열: 우희경이 와인을 마실 때, 잔은 무엇을 썼나?

김재하: 잔은 쓰지 않았어. 병째로 들고 마셨네.


무열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고 수연씨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무열: 수연양, 그 팀이 와인을 마실 때 잔은 하나만 썼나?

양수연: 네…. 하나만 사용하고 테이블 위에 놓아둔 채로 이동했어요. 

김재하: 잔을 꺼낸 사람은 누구였지?

양수연: 그건…….


수연씨가 말을 흐렸다. 


하무열: 강수혁. 맞나?

양수연: …네. 


무열 선배가 식탁 위의 와인병을 살폈다. 


김재하: 어디서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하무열: 와인은 아니군. …희생자의 시신 쪽이야. 아몬드 향이군. 왜, 와인 한 잔 마셔볼텐가?

김재하: 왜, 왜 이래. 저리 치워!

양수연: …….


수연씨는 말없이 희경씨의 시체를 내려다 보고 있다. 


류태현: 괜찮으세요? 힘드시면 잠깐 앉아 계셔도 됩니다. 

양수연: 아… 괜찮아요. 좀 놀라서…. 저희는 무사히 마셨던 와인인데…….


수연씨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돌렸다. 


하무열: 사인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독살이야. 김재하 선생님의 관심을 끈 아몬드 냄새는 청산가리의 향으로 알려져 있네. 류태현 순경. 방치된 와인 따위에 사람들이 손대도록 내버려두다니, 어떻게 된 건가. 

류태현: …면목 없습니다. 

하무열: 희생자를 제외하고 와인에 손 댄 사람은?

김재하: …희경씨 빼고는 아무도 손 대지 않았어. 

하무열: 수연양. 자네 팀에서 어떤 순서대로 와인을 마셨는지 기억나는대로 말해보게. 

양수연: 아… 잠시만요. 


수연씨는 천정을 올려다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양수연: …처음에 혜진씨가 와인을 마셔도 되냐고 물었어요. 우리가 동의하고 수혁씨가 잔을 꺼내왔죠. 와인병은 코르크 마개가 아닌 키퍼로 잠겨 있었기 때문에 오프너 없이도 딸 수 있었어요. 연 다음엔 혜진씨가 직접 따라 한 잔을 마셨고… 저도 그 후에 가 따라서 한 잔을 마셨어요. 그 다음에 수혁씨가 세 잔을 직접 따라 마셨고…. 뚜껑을 닫았다가 혜진씨가 더 달라고 해서 병을 넘겨줬어요. …그 다음엔 다시 뚜껑을 닫아 제자리에 놓았어요. 

김재하: 처음 마신 사람은 장혜진씨, 마지막으로 마신 사람도 장혜진씨로군. 

하무열: 뚜껑은? 열고 있는 동안 키퍼 뚜껑은 어쨌나?

양수연: 제가 들고 있었어요. 

류태현: 그 다음으로는 아무도 와인에 손 대지 않았습니까?

양수연: 아… 마지막으로 수혁씨가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고 해서 제가 양을 확인해 줬어요. 

하무열: 어떻게? 들여다보기라도 했나?

양수연: 아뇨. 흔들어서 소리를 냈죠.

하무열: 생각보다 교양 없게 확인해 줬구만.


그녀는 민망한 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무열: 흠……. 알았네. 그럼 우희경이 마신 당시는 어땠나?

김재하: 류태현 순경이 먼저 문을 열고 나간 뒤에 우리도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희경씨가 달려들어 와인을 마셔버리지 뭔가. 정말 우리도 깜짝 놀랐다고. 그때 했던 말이 뭐였더라…. 당시에는 경황이 없어서 애매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마셔야만 한다고 했던 것 같군. 

하무열: 마셔야만 한다?


무열 선배는 뭔가 생각하는 표정으로 와인병을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

하무열: 그… 엘리베이터와 함께 다이빙을 했다는 서준용이라는 친구 말이야. 

양수연: …네.


수연씨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하무열: 아까 위층에서 이야기도 들었고 수연양의 PDA에 있는 정보도 봤었지만 더 자세히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네. 몇 가지 물어봐도 되겠나?

양수연: 네. 말씀하세요.

류태현: 괜찮겠어요?


수연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무열: 협조 고맙네. 서준용이 매우 상태가 좋지 않아 양쪽에서 부축해 들어갔다고 들었네. 맞나?

양수연: 네. 맞아요.

하무열: 그때 부축한 사람은 누구였나?

양수연: 음… 수혁씨였어요. 


수연씨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하무열: 그럼 장혜진은 뭘 했지?

양수연: …특별한 일을 하진 않았고…… 그냥 뒤를 따라 들어왔어요.

하무열: …그렇군. 


무열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무열: 또 하나. 엘리베이터 안에 의자가 있었다고 했지. 이게 사실 흔한 일은 아니네. 의자는 그냥 세워져 있었나? 아니면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나?

양수연: 고정되어 있었어요.

하무열: 그렇군. 다음으로… 엘리베이터 안쪽에 작은 구멍이 있었다고 들었네. 거기 흘러나왔다는 끈은 혹시 밧줄이었나?


수연씨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기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양수연: …그런 종류는 아니었어요. 탄성이 있는 느낌이었죠.

하무열: 흠… 그렇군. 질문은 이상이네. 


무열 선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김재하: 원래 저렇게 혼자 말하고 혼자 납득하고 하냐?

류태현: …네…. 항상 저런 식이시죠.


재하씨는 이래서야 기껏 온 의미가 없잖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

탕―!


김재하: …이, 이게 무슨 소리지!?


방을 울리는 발포음에 모두 바닥으로 엎드렸다. 


하무열: …낯익은 소리군. 당장 4층으로 돌아가야겠어!!


즉시 4층으로 달려갔다. 황급히 계단을 뛰어올라 4층 중앙복도로 나왔다.


강수혁: !!


복도에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수혁씨를 만났다. 


류태현: 수혁씨!! 총소리는 어딥니까!


그러나 수혁씨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강수혁: …총소리? 전 듣지 못했는데요.


순간적으로 맥이 풀렸다. 


류태현: 그럴리가…. 방금 아래층에서 큰 소리를 듣고 왔는데..!?


재하씨가 뒤따라 달려왔다. 


김재하: 어디였나?

류태현: …수혁씨는 총소리를 못 들었다는데요?


좌3 객실의 문이 열리며 혜진씨가 나왔다. 


장혜진: 무슨 소란이죠?


뒤에서 무열 선배와 수연씨도 올라왔다. 재빨리 모두의 얼굴을 확인한 무열 선배가 소리쳤다. 


하무열: 허대수!! 허대수는 어디 있나!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류태현: …대수씨의 방은 어딥니까!


대수씨의 방 앞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류태현: 대수씨! 문 열어요!


…아무 반응도 없다. 


김재하: 설마…….


달려온 수연씨가 고개를 저었다. 


양수연: 탐색조의 방을 모두 찾아봤지만 없어요. 분명 자신의 방 안에 있을 거예요!

하무열: 답 없군. 문 부숴!


모든 남자들이 힘을 합쳐 문에 달려들었다. 


류태현: 아직입니다..! 한 번 더!


수차례의 시도 끝에 잠긴 문이 떨어져 나갔다.



길게 누운 대수씨의 미간에서 검붉은 액체가 흘러나오고 있다. 

정면을 향해 부릅뜬 눈은 마치 누군가를 원망하는 듯 했다.



#

대수씨의 시체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류태현: 총소리를 듣고 4층까지 올라오는데 걸린 시간은 3분 정도입니다. 

김재하: 강수혁씨! 불빛도 없는 복도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류태현: …거기에 총소리를 듣지 못했다니. 아래층에서도 들릴 정도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겁니까!

강수혁: 저, 정말 총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들었다면 당연히 들었다고 말했을 겁니다..!

김재하: 끝까지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무열: 진정들 해. 


무열 선배가 팔을 뻗어 모두를 자제시켰다. 


하무열: 하나씩 알아보지. 복도에는 얼마나 머물러 있었나?

강수혁: …막 나온 참이었습니다. 

하무열: 그래? 무얼 하려고 나왔지?

강수혁: 그건… 방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중이었습니다. 

김재하: 돌아가?

하무열: 점점 흥미로워지는군. 어디서 돌아가려고 하는 중이었나?

강수혁: …….


수혁씨는 수연씨를 바라보며 입을 우물거렸다. 


하무열: 말 않는다면 내가 맞춰볼까? 자네는 아마…

장혜진: …제 방에서 돌아가는 중이었어요.

하무열: 내 순서를 채어가는구만…. 


탄식하는 무열 선배와 별도로, 모두 깜짝 놀라 둘을 바라보았다. 


김재하: 그게 무슨 소리야? 둘이 함께 있었다고?

강수혁: …그래요. 여러분들이 내려간 동안 잠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양수연: …….


수연씨도 놀란 표정으로 수혁씨를 바라보았다. 그는 수연씨의 눈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강수혁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밝히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 이 죽음과 무관하고, 총소리도 듣지 못했다는 겁니다.


납득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는 의혹만 부추길 뿐이다..!


장혜진: 그럼, 우리를 체포할 건가요?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수혁: 나오지 말라는 말을 어기고 의심 살 만한 일을 한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과는 무관합니다!

장혜진: 계속 의심되면 우릴 몸수색하고 방도 뒤져보세요. 아무 것도 찾지 못하겠지만!

하무열: 됐어. 뻔뻔한 군상들 같으니. 너무 의심스러운 점이 많아서 의심하고 싶지 않을 정도야. 

양수연: …….


수연씨는 기운이 빠진 듯 저쪽의 소파에 주저앉았다. 


하무열: …사정을 확실히 말할 순 없지만 믿어 달라는 말이지?

강수혁: ……그렇습니다.

하무열: 지금 당장 결박하거나 추궁하진 않겠어. 하지만 숨기는 게 많으면 파국을 불러올 뿐이네. 그 점은 분명히 기억해 두게.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지. 방에서 나왔을 때 복도에서 수상한 것을 본 적은 없나? 사람이나 물건, 어느 것이라도 좋아. 

강수혁: …없습니다. 

하무열: 그래. 거기까지. 이제부터는 사체를 조사해보도록 하지. 


무열 선배는 대수씨의 시신을 훑어 보았다. 


하무열: 사인은 두부 손상. 완벽한 조준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치명적인 위치에 맞았네.

류태현: 네…. 손 쓸 틈도 없이 즉사한 듯 합니다. 


나는 손을 뻗어 대수씨의 눈을 감겨 주었다.


하무열: …헌데 아무리 봐도 희생자의 표정이 인상 깊군. 

김재하: 표정?

하무열: 눈을 감긴 사체의 얼굴을 보게. 경악한 표정이라기보다는… 평소 얼굴에 가깝지 않나?


무열 선배의 말을 듣고 보니 그의 표정은 무심해 보일 정도로 평온해 보였다. 


하무열: 누가 눈앞에 총을 겨누고 있다고 생각해 보게. 이런 멀쩡한 얼굴로 맞아줄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걸. 아무리 만사 귀찮은 허대수라 해도 말이지.

장혜진: 자살이란 말인가요..?


무열 선배는 뒤통수를 긁었다. 


하무열: 다 떠먹여 줘도 상을 엎는군…. 부지불식간, 즉 생각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이다, 이 말이 하고 싶었다네. 


거기까지 말한 무열 선배는 입을 다물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강수혁 프로필 입수

 

 의혹   허대수가 살해될 동안 장혜진의 방에 있었다고 밝혔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했지만 그 내용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해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또한 허대수가 맞은 총격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다고 밝혀 그 역시 큰 쟁점이 되었다.


방문을 나설 때, 무열 선배가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하무열: 류태현 순경, 자네 생각은 어떤가?

류태현: …예?

하무열: 지금까지 얻은 정보로 나름대로의 결론이 나왔을 것 아닌가. 이번에도 범인은 내부인 중에 있다고 보나?


무열 선배는 대답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류태현: 불행해도… 범인은 우리 일행 중에 있는 것 같습니다.


잠겨 있던 방 안에서 사건이 벌어졌다. 대수씨가 안에서 문을 열어주지 않고서는 그의 안면에 총격을 가할 방법이 없다. 거기에 사망한 대수씨의 긴장감 없는 표정 역시 면식 있는 자… 즉, 내부인의 소행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혜진씨와 수혁씨의 서로만 입증할 수 있는 증언도 의심스러운 요소다. 무열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무열: …거기까지만 이야기하면 됐네.


무열 선배는 발걸음을 돌려 대수씨에게로 다가갔다. 


하무열: 어디보자… 구경꾼들이 없는 지금이 찬스군. 


대수씨의 상의를 슬쩍 올려 옆구리 쪽을 드러냈다. 


류태현: 꿰맨 자국이..!

하무열: 흥미로운 흔적이야. 


무열 선배는 다시 문쪽으로 나가다 멈추어 섰다.


하무열: 중요한 것 두 가지가 있네. 하나는 앞으로 몸 조심할 일이 더 많이 일어날 것 같다는 거야. 다른 하나는… 너무 앞서가다간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세. 더 이상의 이야기를 나눌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야. 자네도 조심하게.


무열 선배는 턱수염을 긁적이며 밖으로 나갔다. 


하무열: 어이, 수연양! 이제 3층에서 가져온 물건들이 쓸만한지 알아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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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을 알고 다시 보는 이 장면은 

숨막힐 정도로 안타깝다 아이고 수혁아.. 수혁아...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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