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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

[그공사] Checkmate

by 뀽' 2019. 9. 25.

- 노아와 시아트리히 형제의 과거사 기반 망상

- 해시랩 계곡 전투 즈음의 이야기 (노아 18세, 시아트리히 25세 시점)

- 주관적 캐해석과 날조로 가득함






"요즘 흥미로운 소문이 들리더라고."


지루한 기색이 한껏 묻어나는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으나, 서로를 삿대질하던 손가락과 천장까지 울리던 고성이 잠시 잦아드는 데엔 충분했다. 


목소리의 주인이 앉아 있는 테이블의 가장 끝, 상석을 시작으로 못마땅한 정적이 반대편 끝까지 느리게 퍼졌다. 상황 파악 못하고 소리를 내지르던 문가 자리의 남작이 홀로 울려퍼진 자신의 목소리에 민망한 헛기침 몇 번 내뱉은 것을 끝으로 회의장은 조용해졌다. 


"왕세자 전하, 지금은 해시랩 계곡 파견부대 지휘관을 정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적막을 깨고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블레이크 공작이었다. 맞은편의 윈나이트 공작이 먼저 입을 열지 않아 제가 이런 말을 나서서 해야 한다는 것이 언짢은 모양새였다. 


애런 블레이크는 왕세자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간언을 올렸으나, 시아트리히는 그가 정확히 어디를 향해 고개를 숙인 것인지 빤히 알았다. 묘하게 저를 빗겨나가 제 뒤를 향하는 블레이크 공작의 시선이 우스워, 시아트리히는 예의 그 가벼운 말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긴박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하시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 긴박한 사안에 대해 말하려는 건데 말이지. 자네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어깨를 으쓱해보인 시아트리히는 살짝 몸을 틀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가 앉아있는 곳보다도 한 단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왕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왕세자가 무엇을 입에 올리려는지 깨달은 좌중의 낯빛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러나 누가 나서 말리기도 전에 시아트리히는 제 오른편에 앉아있는 이를 돌아보며 웃었다.


"노아, 너도 소문을 들었지?"


무어라도 말해보려 입을 열었던 귀족들은 금붕어마냥 입만 뻐끔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창백하게 질린 그 낯짝들과는 다르게, 이제 막 성인이 된 제2왕자는 지금껏 고요히 앉아있던 얼굴 그대로 입을 열었다.


"예. 들었습니다."


지나치게 차분한 조카의 대답에 윈나이트 공작은 눈을 감았다. 윈나이트 공작가 출신의 전 왕비이자, 제2왕자 노아 벌스테어 체이머스의 어머니가 죽은 지 반 년. 그리고, 


그녀가 하루가 멀다하고 침실에 다른 남자들을 들이곤 했다는 소문이 퍼진 지 일주일. 


"출처도 알 수 없는 헛소문입니다!"


희끄무레한 수염이 자라기 시작한 게일 백작의 노성이 벼락 같이 뻗어 나왔다. 왕국에서 가장 고귀한 귀족 가문의 명예가 더럽혀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는 듯 그는 화를 내고 있었다. 


이를 시작으로 또다시 회의장은 삿대질과 고성이 오가는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입을 열지 않는 귀족은 오로지 윈나이트 공작, 그리고 그 윈나이트 공작이 추락하도록 내버려두는 쪽이 제게 나을지 아닐지 계산하느라 바쁜 블레이크 공작 뿐이었다. 


"전하께서 없는 소문을 지어내신 것도 아니잖소."

"그러니까 그 해괴한 소문의 출처부터 밝히는 게-!"

"왕자님의 눈을 보면 모르겠나? 그런 소문은 그냥 무시해도 될 만한-"

"이건 그렇게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왕실의 핏줄에 혹여 불순한 것이 섞였다면-"

"그 입 닥치시오! 감히 왕자님께-"

"그만."


손을 들며 단호한 목소리로 제지하는 왕세자에 소란은 다시 멎었다.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거친 숨소리로 가득한 회의장에서, 시아트리히는 미간을 찌푸린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소리들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해시랩 계곡 파견부대에 대해 회의하고 있던 것 아니었나?"


순간, 숨 고르는 소리마저 일시에 그쳤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아연한 얼굴들이 왕세자를 쳐다보고 있었다. 


"전황이 좋지 않다고 들었다. 병사들의 사기도 진작 떨어졌고."

"그럼, 그, 소문이라 하심은 무슨-"

"오 베넷. 백작가가 그렇게 소문에 어두워서야 쓰겠나. 당연히 이렇게 왕국이 힘든 시기에 왕족이 직접 전장에 나서면 좋을 거란 민심이 담긴 소문이지."


베넷 백작이 이를 가는 소리가 언뜻 들렸으나 그에 신경 쓸 사람은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고 있는 왕세자의 진의를 모두가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내내 게일 백작과 함께 전 왕비의 무고함을 주장하던 샤말 후작이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을 꺼냈다.


"하, 하지만 그렇게까지-"

"왕실과 체이머스의 명예를 높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야.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전하께서도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셔서 민심이 흉흉하잖나? 거기다 왕세자라고 하는 놈은 이렇게 볼품 없는 절름발이고 말이지."


악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을 한 채 지팡이로 제 저는 다리를 툭툭 건드리는 시아트리히에 더 이상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만족스럽게 좌중을 둘러본 시아트리히는 지팡이를 오른편에 탁-! 소리나게 내리치더니 그쪽으로 고개를 내밀며 다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제 막 성인이 된 훌륭한 왕자가 있지 않나."


18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린 소년 같던 아름다운 왕자는 이제 젖살이 빠진 완연한 청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성인식까지 치른 왕자는 더 이상 아이라는 변명으로 저를 보호할 수 없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귀족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 왕비의 추문이 사실인지 여부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지(死地)나 다름 없는 전장으로 파견할 부대의 지휘관을 정하는 자리. 그 자리에서 왕세자의 입을 통해 나온 '소문'이라는 말. 지레짐작으로 전 왕비의 일을 회의장에서 꺼낸 귀족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지휘관'을 정하는 주제로 돌아온 왕세자. 이 모든 것이 왕세자가 짜놓은 판인 이상, 전 왕비의 추문은 제2왕자의 명예에 공식적인 흠집을 낸 것으로 이미 역할을 다한 것이었다. 


"반대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조금 전부터 시아트리히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질 않고 있었다. 물밑에 떠돌던 소문을 끌어내, 명예 운운하며 이복동생을 전장으로 몰아넣는 그 지독한 웃음에 인상을 찌푸릴지언정 반론을 제기할 귀족은 남아있지 않았다. 어쩌면 외척이 너무 강한 왕자보단 적당히 시비를 걸 수 있는 절름발이 왕세자가 귀족들의 입맛에 맞는 왕이 될 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내린 것일지도 모른다. 


"갈 거지, 노아?"


사방을 막아둔 채 저를 몰아세우며 웃고 있는 형에게, 노아도 마주 웃어주었다.





Checkmate

체크메이트; 빠져나갈 길이 없는 완벽한 외통수





"꼭 거길 가야겠어?"

"형님답지 않게 다 끝난 얘기를 꺼내시는군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짚은 채 잔뜩 인상을 찌푸린 시아트리히에게, 노아는 심드렁히 답했다. '귀염성이라곤 왕실 찻잔에 내려앉은 먼지만큼도 없는 놈…' 불만어린 목소리가 중얼거리는 게 들렸지만 언제나 그랬듯 못 들은 척 넘겼다. 


"이 여린 형님을 그렇게 몰인정한 사람으로 만드니 좋으냐?"

"……."

"소문의 근원이 내가 아니라 네놈인 걸 다들 알아야 할 텐데."

"제안을 한 건 저이지만 퍼뜨린 건 형님이십니다. 공범이면서 이렇게 나오시면 곤란한데요."


냉정한 대답에 시아트리히는 이제 아예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곤 매정한 놈, 불쌍한 절름발이 형에게 꼭 그런 소리를 해야겠냐며 우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노아는 한숨을 내뱉었다. 회의장에서 내내 웃고 있는 걸 보곤 형의 기분이 안 좋다는 건 눈치챘지만 이렇게 귀찮게 굴 줄이야. 


맞은편 의자에 앉아 무심한 표정으로 사태를 관망하던 나오미 오브라이언 영애가 노아에게 말했다. 


"그쪽에 가시면 왕자님의 사람이 될 믿음직한 인재 하나쯤 찾아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래! 키이스는 너무 골골하니까."


나오미의 말에 갑자기 고개를 홱 든 시아트리히는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는 얼굴로 동조의 말을 덧붙였다. 노아의 뒷편에 가만히 서 있던 키이스가 난데 없는 공격에 '고, 골골… 골골하다니……' 신음했지만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확실히, 전선에 직접 나서니까 인재를 찾긴 쉽겠군요."

"그렇다고 머리 빈 놈 데려오면 안 되고."

"글쎄요, 입 무거운 총알받이면 될 것 같은데."

"보통 머리 가벼운 놈이 입도 가벼워. 너도 알잖아?"


'그러니까 나처럼 이렇게 머리도 무겁고 입도 무거운 유능한 인재를 곁에 두어야 한다는 말이지-' 시아트리히가 어깨를 으쓱하며 나오미를 가리켰다. 큰 감흥 없는 표정으로 제 형의 자랑 아닌 자랑을 들어주던 노아는 문득 생각난 사실에 나오미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오브라이언 백작이 오늘 회의에 불참했던데."

"예. 상태가 계속 악화되어서요, 오늘내일하십니다."

"그것 참-"


축하할 일이군, 저도 모르게 말하려던 노아는 답지 않게 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멈추었다. 제아무리 자식 앞길에 해악만 끼치는 아비라 해도 죽음을 반기는 건 저나 제 형같은 이가 아닌 이상 쉽사리 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망설이는 기색의 노아를 보고 시아트리히가 웃었다.


"유언까지 조작해놓은 마당에 뭘 새삼스레. 축하해, 나오미."


나오미는 어쩐지 자신이 이 패륜아 집단의 일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닌지라 반박하지 않았다. 꾸벅, 목례를 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는 나오미에 시아트리히는 만족스럽게 웃곤 노아를 돌아보았다.


"네가 돌아올 때쯤이면 나오미도 오브라이언 영애가 아니라 오브라이언 백작으로 자리를 잡고 있겠지. 저스틴 샤말도 큰일이 없는 이상 근위대 단장이 될 거다. 적당히 세력 정리하고 왕위 계승까지 완벽하게 해놓을 테니까…"


거기까지 말한 시아트리히가 다음 말을 고르는 듯 멈추었다. 그러나 한 번 끊긴 말은 어쩐지 쉬이 이어지지 못했다. 지팡이를 짚고 있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을, 노아는 보았다. 형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하는 미안함과 걱정이 너무나 선명히 읽혀서, 그는 결국 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겐 오히려 이곳이 사지라는 걸 아시잖습니까."


말이 없는 자신의 형을, 그 형의 다리를 보며 노아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돌려 말했다. 

걱정할 필요 같은 건 정말 없었다. 오히려 그는 지금, 도망치는 거였으니까.





-


가끔 부질없는 가정을 해보곤 했다.


그 날이 햇살이 내리쬐는 화창한 날이 아니었다면.

소나기가 내려 티파티를 열 수 없었다면.

조심성 없는 시종이 찻잔을 깨뜨렸다면.

어머니의 초대를 형이 거절했다면.

아니, 그냥 처음부터


형이 평범하게 나를 싫어하기만 했다면,

아무 일도 없었을 것을.


그러나 그 날은 유난히도 화창했고, 소나기는 내리지 않았으며, 왕성의 시종이 실수하는 일은 없었다. 미련한 형님은 이복동생을 미워하는 그 편한 길 하나 차마 가지 못해 바보처럼 어머니의 초대에 응했고,


'이제 됐어 노아. 이제 걱정할 건 아무 것도 없단다.'


쨍그랑- 

그 날 정원에 만개한 봄꽃보다도 화사하게 웃던 어머니. 그 뒤로, 피비린내가 났다. 


형이 죽지 않고 절름발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해야 하는 이곳이 전쟁터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때이른 성인식을 홀로 감내하고 훌쩍 커야 했던 어린 아이는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숨을 돌리고 싶었다. 왕좌로부터 멀어질수록 숨통이 트였다.


멀리멀리 도망갈 기회가 드디어 왔다. 






-


'썩은 동아줄 잡을 일 있어? 그리고 짬밥을 먹어도 내가 더 먹었는데, 신입인 지가 꿇어야지.'


바로 옆, 사령관의 막사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이제 막 보고를 시작하던 부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노아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쯧, 혀를 찼다. 험담하는 건 상관 없지만 이렇게 큰 소리로 옆 막사에까지 들리게 할 필요는 없는데.


"저, 저, 그-"

"상관 말고 마저 보고해."

"…예, 예! 정찰병의 소식도 끊긴 것으로 보아 매복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내일 생존자 구출 작전을 수행할 계곡 쪽의 길이 상당히 좁고 산세도 험해서-"

 

'그, 그래도 왕자님이신데 괜찮을까요? 인원을 더 편성하는게…'

'여기까지 쫓겨내려온 거 보고도 상황 파악이 안 돼? 왕위계승 싸움판에서 완전히 밀려난 거라고.'


타이밍 좋게 또 사령관의 말이 끼어들었다. 차렷 자세를 한 채로도 바들바들 떠는 게 눈에 보이는 부관을 보곤, 노아는 조금 답답해졌다. 이렇게 간이 작아서야. 계속 보고하라는 듯 가만히 쳐다보자 부관은 겨우 겨우 말을 이어나갔다. 


"사, 산세도 험한 편이라 17명 전원에게 지도를 배급해 길을 숙지시키고-"

 

'그래도 2왕자님을 따르는 세력이 여전히 있습니다. 밉보였다간-'

'그래봤자 전쟁 한 번 안 겪어본 애송이지. 수도에선 검술 선생들이 오냐오냐해서 기고만장해졌을지 몰라도 실전은 달라.'

 

"…매복 가능,성이 큰 곳은 피해갈 수 있도록 겨, 경로를 정했습니다."

"이쪽 길, 오른쪽에 꺾어진 표시는 암벽지대인가?"

"어어, 그, 아닙니다, 그쪽은 경사가 매우 가파른 숲이라-"

 

'그 얼굴만 곱상한 왕자님께서 전술이고 뭐고 아는 게 있겠어? 데려간 병력 몰살당하고 울면서 달려와 내 바짓가랑이나 붙잡겠지.'


딸꾹. 담이 작은 부관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하고 딸꾹질까지 하기 시작했다. 계속 두고 보자니 울면서 바짓가랑이 붙잡을 건 제가 아니라 저 부관일 듯 싶어서 노아는 결국 빠르게 제 할 말을 하기로 했다. 


"경사가 가팔라도 숲이면 매복 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힘들다. 지나치게 돌아가는 길이라 오히려 위험부담도 크니 이쪽, 뒷편 지름길로 계곡에 접근하는 것으로 경로 변경해."

"그, 그렇지만 산세가 험해서-"

"산악전 경험 전무한 자들을 빼면 몇 명 남지?"

"예? 예, 그게…"


전투 경험 자체가 처음인 신입만 해도 7명이라며 절망적인 얼굴로 중얼거리는 부관에게, 두세명만 있어도 좋으니 베테랑만 남기라 명령을 내리곤 내보냈다. 적은 인원에 겁이 날 만도 한데 영 쓸데 없는 이유로 떨고 있어서인지 그저 알겠다는 말만 반복한 부관은 비틀비틀 막사를 나갔다.


'그러다 왕자님이 정말 잘못 되시기라도 하면 어쩝니까?'

'어쩌긴 뭘 어째. 대충, '험한 산 속 생존자를 구하다가 전사한 왕자!'라고 해주면 충분히 명예로운 죽음이 되지 않겠어?'


홀로 남은 조용한 막사 안, 전보다 선명한 목소리들을 들으며 노아는 편안히 기대어 앉았다. 바들바들 떨던 그 부관을 일찍 내보낸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지금 흘러들어오는 말들까지 들었다간 정말 기절했을 것 같으니. 하지만 제 눈치를 보며 영혼이 빠져나간 듯 했던 그 부관에겐 미안하게도 노아는 지금 들려오는 이 대화가,


'체스에서도 말이야, 체크메이트 상황이 되면 패배한 쪽의 왕이 자살하는 게 관례라고.'


퍽 마음에 들었다. 


체스판 위에 하나의 킹만을 남겨두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왔던가. 고매하신 귀족파의 흠결 없는 새하얀 왕 자리를 지켜온 것은 이 날을 위해서였다. 도망치고 또 도망쳐서 도달한 곳은 이제 벗어날 길 하나 보이지 않는 사지(死地). 완벽하게 포위된 상태에서, 귀족들의 왕은 그렇게 완벽하게 죽으리라. 체스판 밖으로 내동댕이쳐진 하얀 킹이, 실은 새까만 기사라는 사실을 누구도 알지 못하도록.


태어난 순간부터 그는 윈나이트였고, 

그의 왕에게 승리를 바치는 기사였다.


'이미 결판은 났어.'


어둠이 내려앉은 막사에 홀로 앉은 신임 지휘관은 소리 없이 웃었다.

실로 완벽한,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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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훗날 레리아나가 등장해 노아의 체스판의 의미 꿰뚫어봄. 그렇게 공작님의 첫사랑은 시작되고ㅋㅋㅋㅋ



※ 참고한 에피소드 및 설정


- 노아의 서재에 있는 체스판에는 킹이 하나 밖에 서있지 않으며, 다른 말들도 숫자가 맞지 않는다. 체스판은 곧 체이머스 왕국의 정세를 나타내는 것. (6화)

- 어린 시절, 노아의 어머니가 시아트리히를 독살 시도했던 에피소드. (49화)

- 노아가 일부러 자신의 혈통을 의심하게 만드는 소문을 퍼트려 시아트리히와의 경쟁 구도에서 벗어난 정황. (3화, 77화)

- 노아가 18살 되던 해, 왕위 경쟁에서 도망치기 위해 신참 지휘관으로 참전. 애송이 왕자에게 겁을 주고 싶었던 사령관의 적의로 '해시랩 계곡 생존자 구출'이란 첫 임무를 맡았던 것. (외전 8화)



이 오몰입 과타쿠는 왕국 이름이 '체이머스'인 것부터 작가님이 노리신 거라 생각해서ㅋㅋ 대놓고 '체스판'이 '체이머스 왕국의 정세'의 축소판이라 나오잖아요!ㅋㅋㅋㅋ


게다가 체이머스의 차기 왕이 시아트리히로 확정된 후, 노아가 체이머스의 성을 버리고 '윈나이트(Knight)'가 되는 것도 상당히 묘하다고!! 그냥 지으신 이름일 리가 업따..


혼자 이상한데 취해서 개노잼 망상 너무 길게 써버렸..ㅠㅠ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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