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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그녀가 공작저로 가야 했던 사정

by 뀽' 2018. 8. 4.

 

그녀가 공작저로 가야 던 사정  /  밀차

★★★★★

이것은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


결국 당신을 찾았어.

가끔, 나는

행복해서 정신이 나간 것 같아.

 

2016년에 로판으로 웹소설에 입문한 뒤 만 2년 이상 지난 지금까지도 최애 소설로 군림하고 계신 작품.


웃겼다가 설렜다가 아련했다가 마지막에는 감동까지 주는 웰메이드 로맨틱 코미디. 행복한 금수저인 채로 곧 약혼남에게 독살당할 운명인 '레리아나 맥밀런'에 빙의해 살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는 여주와, 그런 여주가 자신의 목숨 연장을 위해 거래 파트너로 택한 공작님 남주의 로맨스 구도는 흔하지만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안다, 그게 끝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무엇보다 똑똑하고 사랑스럽고 능동적인 여주와, 세상얄밉지만 알고 보면 세상다정한 벤츠남주의 조합은 언제나 옳잖아요. 


여주-레리아나 맥밀런-는 은근히 드문 총캐인데 여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굉장하다, 뭣 같은 놈들(?) 탕탕 쏴버릴 때마다 독자 쾌감 쩔구여 ㅋㅑ.. 단지 총만 잘 쏘는 게 아니라 머리 좋고 눈치 빨라서 캐릭터 성격으로 인한 고구마 따위 없다. 이 소설에서의 갈등은 계속해서 몰아닥치는 ‘정해진 운명’과의 싸움이 근본적인 원인이지, 이상한 오해와 삽질 따위 없음, 깔끔한 전개 베리 굳.


그리고 남주캐릭인 노아. 노아. 노아. 부르다 죽을 그 이름 노아 윈나이트... 음흉한데 건전하고, 조신한데 야하고, 얄미운데 다정한 어른남자라니 엥 이거 완전 환상종 아니냐. 매너와 배려까지 몸에 배인 당신은 젠틀섹시계의 끝판왕. [다정한 목소리로 야한 말 하기 vs 야한 목소리로 다정한 말 하기]가 한때 유행이었는데 굳이 따지자면 공작님은 야한 목소리로 다정한 말 하기 쪽이 아닐까. 게다가 저렇게 나른한 고양이상 미남인데 겁나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인 것도 치임. 이 사람 무지 성실합니다, 한가하게 노는 때가 없음ㅋㅋㅋㅋ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이 공작저에서 알콩달콩 계약연애하고 썸타다가 결혼식 딴따단 하는 내용인 건가요<<하겠지만, 그건 한 10퍼센트 정도만 맞는 말. 이 소설 굉장히 유쾌한듯 보이지만 은근 살벌하다. 로맨스 비중이 적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사실 이 작품의 골자는 죽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여주와, 어딜가든 사고에 휘말리는 약혼녀를 죽어라 쫓아다니며 고통받는 공작님임ㅋㅋㅋㅋㅋ 위기 한 번 넘기고 좀 평화롭다 싶으면 사고 터지고, 사고 수습한 뒤 이제 썸탄다 싶으면 더 큰 사고 터지고(눈물..


그러나 그렇게 온갖 스펙타클한 역경을 함께 헤쳐나가는 두 사람의 감정선과 서사를 정신없이 따라가며 작가님이 떨어뜨려주시는 떡밥 부스러기들을 주워먹다보면, 어느새 작가님이 지어놓으신 빅픽쳐 과자성에 도달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대로 납치당해 내 덕질인생 저당잡혔다. 왜 빙의자도 모르는 배후가 있는 걸까, 왜 원작의 여주인공은 갑자기 사라진 것일까, 그럼에도 원작과 자꾸 오버랩되는 현재 장면들은 무엇일까. 유쾌하고 설레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문득 문득 스쳐지나가는 위화감을 기억한다면, 이 소설이 숨기고 있는 반전을 보다 빨리 눈치챌 수 있다.


떡밥 뿌리기/회수 능력도 그렇고, 장면 연출력도 뛰어남. 깜깜한 밤, 불꽃놀이 펼쳐지는 강물 위 배에 마주앉은 두 주인공의 '본래의 운명'과 '현재'가 오버랩되던 씬. 왕성에서 창문을 사이에 두고 입김을 불어 글자를 쓰며 마주 보던 씬. 시계탑 위에 올라가 자정 종소리가 뎅뎅 울리는 가운데 ‘내가 당신을 모를 리가 없잖아’ 고백하던 가슴 벅찬 순간 등, 정말로 눈에 보일 듯 그려지는 아름다운 명장면들이 작품 곳곳에 있다. 특히나 늘 이성적이고 방어적이라서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던 레리아나가, 노아의 거대하고도 순수한 진심을 깨닫고 눈물을 터뜨리던 '수로 씬'은 지금껏 읽은 모든 로판 통틀어서 세 손가락 안에 꼽을 명장면.


그리고 이 모든 처절한 생존기와 그 과정에서 피어나는 로맨스의 끝에 기다리고 있는 건, 결국 ‘운명’을 결정짓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진흙마냥 구질구질했던 자신의 운명을 부정하고 절규하는 ‘그 사람’에게, 마침내 자신이 찾은 답과 함께 총구를 겨누는 ‘그녀’의 모습은 잔인할 정도로 눈부시고 슬프다.


초중반부터 워낙 충실히 복선과 떡밥, 힌트들이 뿌려지는 터라 눈치 빠른 독자라면 반전이 무엇일지 대강은 예상할 수 있지만, 결말에 도달하기까지 두 주인공의 감정선과, 위에서 말한 명장면들이 정말로 빈틈 없이 전개되어 지루할 틈이 없다. 처음엔 가벼운 킬링타임용인 줄 알고 재미있게 읽다가 어느새 결말에 도달해 정신차리고 나면 가슴에 남는 여운 때문에 먹먹해지게 되는 작품입니다 작가님 사랑해요 제발 이 쩌는 구성력과 필력으로 차기작 좀 써주세요 더쿠 말라죽어감 8ㅁ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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