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전령새 왕녀님

 

전령새 왕녀님  /  한류이

★★★★★

망국의 왕녀와 총사령관이라니 재미없을 수가 없잖아...

“

전하. 제게 위험한 상황을 두려워하라고 하셨습니까.

허나 저는 전장이 겁이 나지 않습니다.

저를 죽이려는 자들의 살의 따위에 겁 먹어본 적 없습니다.

저를 두렵게 하는 것은 당신입니다.

나를 죽이려는 의도 없이도 죽일 수 있는.

당신.

”

 

죽지 않기 위해 숨 죽이고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야 했던 8번째 왕녀와, 망하기 일보직전인 나라를 살리기 위해 마지막까지 싸우고 있는 총사령관의, 전쟁 속에서 피어나는 애절한 로맨스..인데 왕녀가 전령새에 빙의했다. 그렇습니다, 여주인공에 빙의하고 악녀에 빙의하고 엑스트라 조연에 빙의하다 못해 결국 동물에게까지 빙의하게 된 로판!ㅋㅋㅋㅋㅋㅋ 하지만 단언컨대 빙의물 중에 이만큼 구성이 탄탄한 빙의물 결코 흔치 않다. 여주인공이 ‘전령새’가 되었다고 작품 초반에 비웃었을 당신, 분명 작품 후반부에서 그 전령새 때문에 오열하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망국의 왕녀와 총사령관의 로맨스라는 주제부터 절대 배신안하는 클래식인데, 전체적인 구도와 캐릭 설정이 매우 잘 짜여져있는데다(무려 1화 서막부터 대형 복선 투척됨), 개그 코드와 애절 코드, 비장 코드 모두가 제 역할 200퍼센트 해내도록 만드는 뛰어난 필력이 뒷받침 되니, 이런 띵작이 탄생했습니다. 

작품 초반부는 그야말로 개그물이다. 적국에 잡혀서 이제 난 망했다 곧 죽겠구나 했는데, 기절했다 정신차리니까 전령새가 되어잉네 ㅇㅁㅇ..??!! 괘액! 괘애애액!!!ㅋㅋㅋㅋ 새가 된 거니까 당연하지만 인간 말을 못하고 저렇게 괘액 괘액 우는 게 너무 웃기고 귀엽다ㅋㅋ 처음엔 멘붕이었지만 전령새가 되고 보니 일단 날 수 있고(!), 시력이 엄청나게 좋아진다는 장점(...)이 있습니다ㅋㅋ 그러나 먹이는 죽은 쥐

총사령관 발하일과 전령새 왕녀 제르이네 사이에 전우애가 싹트는 과정이 정말 최고다. 처음에는 이 무슨 미친 새인가?! → 왜 저 새가 인간 말을 알아듣는 거 같지? → 어느새 새와 대화하고 있는 자기자신에게 자괴감을 느끼는 발하일 → 그러나 몇 번의 고비를 함께 헤쳐나가며 생기는 서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 나중에는 수컷 전령새(일명 서브남‘조’)가 제르이네에게 치대니까 발하일이 저 새 치우라면서 빽 소리를 지른다(“짝짓기 시켜야하는데요?” “새는 거부권도 없나?!”<<), 아니 이 무슨 인간 한 명과 새 두 마리의 삼각관계!!!ㅋㅋ 심지어 이때는 제르이네가 인간인 줄 전혀 몰랐던 시기잖아!!!ㅋㅋㅋㅋㅋㅋ

당연히 제르이네는 인간 몸으로 돌아오구요, 전우애가 사랑으로 변하는 건 시간문제구요, 여기서 또 반전은 발하일 총사령관 이놈이 사실은 예전부터 제르 왕녀님을... 읍읍!ㅋㅋㅋ 아무튼 새가 왕녀님인 줄 모르고 함부로 대했던 과거의 자신 때문에 자책하는 발하일ㅋㅋㅋㅋ

로맨스도 로맨스인데, 전쟁씬과 왕위계승권을 둘러싼 대립 구도도 매우 좋았다. 성을 빼앗겼다가 다시 되찾고, 그때마다 전략을 다시 세우고, 살아남은 왕족을 수색하고, 다시 왕위 계승권과 관련해 1왕녀, 2왕녀, 그리고 4왕자와의 갈등이 생기고, 그 사이에서 이번 전쟁의 배후와 내막이 밝혀지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가 정말 숨막히게 재밌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 속에 선역이건 악역이건 서사 풍부한 매력적인 여캐들이 넘쳐난다는 게 이 작품의 굉장한 장점인 듯. 

특히나 여주인공 제르이네는, 영명하고 똑똑하지만 8왕녀라는 위치 상 눈에 띄면 죽임을 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그간 죽은 듯이 숨어지내야 했던 캐릭터. 그랬던 그녀가 인간의 몸을 벗고 전령새가 된 후 자신의 나라와, 그 나라에 속한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적진을 우회해 안전한 길로 돌아오라 했던 발하일의 명령을 어기고, 도리어 화살이 빗발치는 적진 위를 통과하며 그들의 위치를 정확히 외워 돌아오던 장면은 너무나 아름답고, 비장하고, 눈물겹다. 방구석에서 읽고 있는 독자까지 전우애가 샘솟던 명장면. 

피비린내나는 전장 속 끈질기게 살아남아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 두 사람의 대서사시를 유쾌하고도 감동적인 전개로 잘 엮어낸 작품입니다, 모두들 <전령새 왕녀님> 제발 읽으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