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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메리지 B

by 뀽' 2018. 9. 8.

 

메리지 B  /  과앤

★★★★★

어떤 경우의 수에서도 결국 종착지는 하나


보다 확실한 파멸을 고르기로 했다.

혹시나 하는 희망이 피어올라

다시금 심장을 헤집어놓는 일이 없기 위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미련을 완전히 놓기 위해서.

적어도 절망은 희망만큼 고요를 괴롭히지는 않았으니까.

 

일반적인 회귀물의 주인공이 복수와 행복을 위해 이전 생과는 다른 선택지를 고른다면, 이 작품은 정반대다. 행복할 수 있는 선택지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가장 확실한 파멸'의 길을 택하는 주인공, 고요 루비엣. 첫사랑 테리오와의 불행한 결혼 생활 끝에 자살했던 이전과 달리, 이번 생에선 자신의 가문을 멸문시킬 남자, 안시 베텔기우스의 청혼을 받아들인 것. 최악을 예상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 다정한 남편인 안시 덕에 죽기 전에 잠깐의 행복은 누리게 해주는건가 싶으면서도, 고요는 자꾸만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드는데..!


언뜻 굉장히 무겁고 어두운 스토리일 것 같은데, 의외로 가벼운 로코 향기가 가득합니다ㅋㅋ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은 깊고 진중하지만, 분위기가 너무 쳐지지 않게끔 만드는 재치 있는 캐릭터들의 티키타카가 굉장함..! 나긋나긋하게 팩폭을 때리는 고요나, 뻔뻔하지만 순진한 안시, 그리고 가히 재앙의 주둥아리를 가진 보좌관 콜라베까지. 이 셋이 등장하기만 하면 정말 사랑스럽고도 웃긴 장면 투성이다. 특히 무자각 사랑꾼 안시에게 매번 일침 날리다가 보너스 빼앗기고 오열하는 콜라베 보는 재미가 있음<< 안시: 보너스가 짠, 사라졌습니다.  콜라베: 아, 안돼..!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게 가벼운 소설이냐 하면 그건 아님. 독한 아집과 쉬운 배신, 지친 체념과 값싼 동정, 그리고 오랜 세월을 기다려온 복수, 그 뒤에 숨어 있던 이름표조차 쉬이 붙일 수 없는 어떤 감정까지. 


이전 생에서 안시는 왜 루비엣을 멸문시켰는가. 고요의 어머니는 왜 자살했을까. 테리오는 왜 멜리시를 사랑하면서도 고요와 결혼했는가. 왜 시간은 되돌아갔고, 어째서 고요만이 없어진 미래를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1년 후에 분명 고요를 죽일 예정인 남편은 왜 다정하다 못해, 고요가 죽음을 입에 담으면 발밑이 꺼지는 것만 같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소설에서 중반부 이전에 비교적 빨리 밝혀지지만, 여기에서 파생되는 독하고 짙은 감정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보다 더 심화되는 동시에, 생각지도 못했던 소름끼치는 반전에 독자가 고요와 함께 어쩔 줄 몰라하며 그저 울 수밖에 없게 만든다. 


모든 것의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그야말로 계획적으로 잘 쓰인 소설. 조금이라도 위화감이 들었던 부분은 모두 기억해두는 편이 좋다. 돌이켜 보니 모든 장면이 떡밥이고 복선이었더라....(버엉 ㅇㅁㅇ.... 플롯 구성만 훌륭한 게 아니라, 등장하는 캐릭터 하나하나가 모두 입체적이다. 평면적이거나 억지스러운 인물이 없음. 고요를 배신한 테리오도, 테리오의 연인이었던 여동생 멜리시도, 아버지 루비엣 공작도, 새어머니인 카젤 부인도, 그리고 황제, 마첼, 엘리쟈 등 안시의 과거와 관련된 인물들도 모두 생동감 넘쳐서 더 안쓰럽고, 역겨운 사람들. 이들에 대한 '복수'의 방식도, 단순히 잔인한 앙갚음에서 벗어나 각자에게 맞는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처리하는게 좋았음.


하지만 그 진한 독주(毒酒)와도 같은 감정들의 끝에 기다리는 운명은 그렇게 슬프지 않습니다!!!(결말 스포ㅋㅋㅋ 냉정하게 인간의 밑바닥을 만천하에 드러내면서도 결국은 따뜻한 시선으로 주인공들을 보듬는, 그럼 작품이라 제가 매우, 매우 좋아함ㅋㅋㅋ 그리고 본편 끝나고 외전 3부 가장 마지막까지 꼭 읽어야 한다. 그 모든 선택의 갈림길과 경우의 수에서, 안시는 결국 똑같이 고요를 사랑했겠구나, 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오열할 수밖에 없음 크허엏어ㅠㅠㅠㅠㅠㅠ 


이 작품의 가장 결정적인 대형 스포일러를 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 리뷰였다ㅋㅋ 사실 그게 정말 이 작품 감정선의 결정타인데 이걸 뭐라 설명할 수가 없네... 그저 대단한 작품이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다. 작가님의 쩌는 필력으로 시리어스 멜로와 재기 발랄한 로코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이 기승전결 완벽한 띵작을 다들 봐주세요 8ㅁ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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