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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김비서가 왜 그럴까

by 뀽' 2018. 9. 24.

 

김비서가 왜 그럴까  /  웹툰 김경미, 원작 정경윤

★★★☆

나르시시즘 뒤에 숨겨져 있던 애틋한 배려

 

나 혼자서 다 짊어져도 괜찮았다. 뭐든지.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대단하고 강한 사람이니까, 나는 괜찮았다.

정말로 괜찮았다.

 

 

제목과 극초반부를 보면 누가 봐도 아 '재벌 2세와 비서가 알콩달콩 투닥거리고 연애하는' 오피스 로코물이라고 써 있지만! 그리고 그게 백퍼 틀린 첫인상은 아니지만! 의외로 이 작품의 메인서사는 오피스 로맨스가 아니다. 여기에 진부한 로코식 4각관계는 없다. 대신 부회장과 김비서 두 주인공의 러브라인을 중심으로 생각보다 본격적이고도 미스테리한 기억 찾기, B급 비유를 들고 있지만 핵심을 찌르고 있는 사랑에 관한 조언들,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 끔찍하고 슬픈 과거사가 있습니다 커헝ㅇㅠ유ㅠㅠ

 

심심하면 자아도취 발언을 내뱉는 나르시시스트에, 다른 사람 무능한 걸 이해 못하는 까탈스런 완벽주의자 이영준 부회장과("어떻게 사람이 무능할 수가 있지?", 그 대단하신 부회장님을 9년이나 곁에서 완벽하게 모신 김미소 비서. 하지만 이제 자신만의 인생을 살고 싶기도 하고, 흐릿한 기억 저편 다정했던 한 '오빠'를 더 늦기 전에 찾고 싶었던 미소는 사표를 씁니다(두둥 그런데 쿨할 줄 알았던 이 자아도취 부회장님이 안 놓아준다..? 퇴직하지 말라고 난데없이 청혼을 하질 않나, 취향을 알아내 그대로 데이트 해주겠다고 전체 설문조사까지 하질 않나 비범하게 미친자. 그러나 여기까진 괜찮다. 진짜 이상한 건 이 부회장님이, '과거의 기억'과 그 기억 속 '오빠'를 찾겠다는 미소를 만류하는 것.

 

여기까지 했으면 독자들은 다 압니다, 아 그 오빠가 역시 혹시..!?ㅋㅋㅋㅋ 그러나 클리셰만 철썩 믿기엔 이후 전개되는 내용이 그리 만만치는 않습니다. 여러 정황들은 그 다정했던 오빠가 이영준 부회장임을 가리키고 있지만, 정작 과거의 사건 당사자와 관련인들은 모두 입을 모아 이영준의 형, '이성연'이 미소가 찾는 그 오빠라고 말을 하는 이상한 상황. 심지어 흐릿한 기억 속에서조차 그 오빠가 자신의 이름이 '이성연'이라 했던 것이 생각나 미소는 이 모든 상황이 혼란스럽다. 거기다 결정적으로 위화감이 드는 건 이영준이든 이성연이든, 그토록 찾던 오빠가 그 오랜 세월동안 이렇게나 가까이에 줄곧 있었다는 것

 

사실 이걸 그저 흔한 로맨스물의 클리셰로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이 위화감을 독자가 아니라 작중 인물인 '김미소'가 느낀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건 그냥 클리셰가 아니라 일종의 복선이다. 이토록 가까이에 있었는데 왜 9년이나 몰랐는가. 정황과 증언은 왜 불일치하는가. 부회장은 왜 미소가 기억을 찾는 것을 만류하는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해나가며 읽어나갔는데도, 중후반부 결국 드러난 진상을 맞닥뜨린 순간 그 참담함에 가슴이 아파서 엉엉 울 수밖에 없었다. 부회장님.... 영준아, 너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 진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영 감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오빠가 부회장님이란 건 쉽게 눈치챌 수 있지만, 그건 이 소설이 숨기고 있던 결정적인 반전이 아니다. 가장 큰 반전은 그 오빠의 정체가 이영준이라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서사를 가능케 하는 이영준의 캐릭터성에 있다. 모든 것을 깨달은 후 '안 어울린다, 이러면 안 된다, 이런 건 반칙이다'라며 서럽게 울던 미소가 아마 모든 독자들의 심정을 대변할 듯.. 

 

아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웹툰이 원작 소설보다 뛰어나다<<ㅋㅋㅋㅋ 재치 있는 대사들과 이 숨막히게 슬프고 애틋한 과거사는 모두 원작 그대로지만, 개연성이 부족했던 부분을 적절히 보충하고 다소 오글거리고 불필요했던 대사들은 삭제되었다. 거기다 소설에선 초반부에 등장했던 이영준의 과거 회상 장면을 웹툰에선 뒷부분 클라이막스로 옮겼는데, 그 덕분에 서사가 이백배 더 눈물나는 레전드급 연출이 되었음ㄷㄷ 여기에 수려한 작화까지 기본으로 깔리니 이건 내 기준 정말 원작 초월 웹툰. 볼거면 웹툰으로 봅시다 괜히 500만 조회수 찍은 게 아님

 

과거사가 드러나고 이와 관련된 갈등이 모두 해결된 이후에 '외전 격' 이야기가 후반부 전개를 이끄는 것이 아쉽긴 한데.. 그래도 이렇게 제목만 보면 가벼운 오피스 로코인 척하고 있으면서 이 정도로 먹먹하고 깊은 감정과 서사를 담은 현대물 작품은 제가 지금까지 김비서 외엔 보지를 못했습니다...ㅋㅋ 다들 속시원한 사이다 능력녀 김미소랑 킹갓배려남 이영준 꼭 보세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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