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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너의 죽음이 보여

by 뀽' 2019. 2. 19.


너의 죽음이 보여  /  단해늘

★★★★★

'마지막'을 알기에 체념한다면서도, 결국은 너무 다정했던 사람


당신이 이렇게 슬퍼하는 데도

당신의 수명이 바뀌고 있단 사실 하나에

내가 안도하고 있다면

나를 이기적이라고 할 건가요.

 

어째 제목에서부터 피냄새가 난다했더니 역시 제 취향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볼 때면 그 사람의 머리 위로 죽는 날짜와 사인(死因)이 보이는 주인공, 에샤나 아스. ‘끝’을 알기에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는, 이 무덤덤하고 시니컬한 성격의 여주인공은 촌구석 작은 마을에서 부모님과 함께 나름대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난데없이 제 집 앞에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남자를 마주치고, 생전 처음 보는 이 남자의 사인에 제 이름이 써 있는 걸 보고 경악한다. 내 이름이 왜 거기서 나와? 심지어 죽는 날짜는 5년 뒤. 여기서부터 이 추리 로맨스릴러 판타지는 시작합니다(두둥


대작 냄새 나는 강렬한 오프닝 덕분에 초반부부터 기대감이 수직 상승하는데, 기대한 것 그 이상을 해준 띵작이었습니다. 차근차근 깔리는 복선과 떡밥, 쉼없이 이어지는 사건 전개, 그 안에서 켜켜이 쌓이는 감정 서사까지. 솔직히 찬양하고 앓을 거리 밖에 없는 소설이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좋았던 건 두 주인공 에시와 펠의 캐릭터성임니다 엉엉ㅠㅠㅠ


서두에도 썼지만 에시는 본인의 능력 때문에 생긴 방어기제인 건지 감정 변화의 폭이 좁고 무심한 느낌의 캐릭터인데, 딱 거기까지였다면 내가 에시에게 이렇게 마음을 빼앗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체념의 그림자가 드리운 가운데서, 남 일에 참견하지 말자 다짐하며 사람들을 지나쳐 걷다가도, 결국 뒤돌아 숨이 차도록 뛰어가 스스로도 질린 얼굴을 한 채로 위험을 경고하는 에시가.. 아니 왜 이렇게 마음이 아리냐구요ㅠㅠㅠㅠ 체념한다면서 사실은 마음 한구석에선 체념하지 못하는 이 작은 씨앗과도 같은 마음이 얼마나 거대한 복선으로 자라나는지 나중에 깨닫고 광광 우렀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씨앗에 물을 주고 햇빛 쬐어 크게크게 자라나게 한 사람이 바로 우리의 남주인공 히로인 펠 되시겠다. 다쳐서 낑낑대는 극초반부만 해도 하찮고, 성가시고, 귀찮다, 그런데 귀엽다 정도의 감상만 들었는데 아니 나는 이 남자가 이렇게.. 이렇게 말도 안 되게 멋있는 남자일 줄 몰랐어 8ㅁ8... 흔히 ‘미련할 정도로 정의로운’ 캐릭터라고 하면 열혈바보(...)라던가 아무튼 살짝 민폐 이미지를 상상하기 마련인데 펠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펠한테 이런 말 하는게 자존심 상하긴 하는뎈ㅋㅋ 펠은 가장 친근하게 굴면서도 가장 고결한 사람이라서 아아아ㅠㅠㅠ 


펠은 에시가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서툴지만 다정한 마음을 알아보았고, 에시는 한때 내려놓고 외면하고 체념했던 것들에 대한 마음이 펠 때문에 다시 자라나는 걸 느꼈고. 그래서 이 둘이 서로에게 서서히 반하게 되는 게 너무 이해가 가서 그게 너무 눈물겹고 사랑스럽다. 끊임없이 투닥대는 게 너무 귀여운데 아련하다니 뭐지 이 형용모순은…. 작품 전개가 워낙 이 사람 죽고 저 사람 죽고 여기서 폭탄 터지고 저기서 칼부림 나는 그런 살벌한 전개라 그렇지(그래서 독자들은 참스릴러 노맨스라고 작가님을 놀렸다) 이 소설 진짜 ☆참로맨스 트루럽☆이거든요!!!! 아 물론 스릴러도 참입니다. 참.. 스릴러...ㅋㅋ..ㅋㅋㅋㅋ


에펠이들한테 좀 미쳐 있어서 너무 메인 캐릭터 위주로 감상글을 적었는데ㅋㅋ 조연들(에셀렌드, 나시르 등)도 모두 개성 있고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인데다, 제 취향 저격 소설답게 장면 연출력이 후덜덜 합니다. 꽃축제날 에시 머리에 핀을 꽂아주곤 웃던 펠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거 같고, 모닥불 앞에 앉아 사인으로 제 이름이 떠 있는 펠을 바라보던 에시의 눈빛이 눈에 보일 듯이 선명해서 아직도 울컥울컥해.. 어쩐지 기승전 또 에펠 이야기


써놓고 보니 엄청 무겁고 진중한 소설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감정의 깊이는 깊지만 그렇다고 시종일관 진지하기만 한 소설은 절대 아니다. 무심하고 시크하게 등장하는 개그 코드가 나랑 너무 잘 맞아섴ㅋㅋ 거기다 작가님이 글을 유려하게 잘 쓰시는 분이다 보니 정말로 막힘 없이 술술 잘 읽힘. 


복선과 떡밥이 많이 뿌려지고 회수되는 꼼꼼한 소설이긴 하지만 제일 중요한 떡밥들은 적절한 시기에 다시 되짚고 넘어가는 친절한 전개이기 때문에 읽기 어렵지도 않다. 절름발이가 범인이었어! 같이 뒷통수 후려갈기는 미친 반전 같은 건 없지만 미궁 속에 내던져진 것처럼 어리둥절하게 시작해서 천천히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따라가듯이 풀리는 소설이기 때문에 코너를 돌 때마다 헉 그거였어? 헐 그런 거였다니! 헐? 억? 아 설마? 안돼! 아아아악! ...와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내가 그랬어.... 내가 그랬다고요..


결말 스포는 절대 안 되는 소설이라 더 이상 말할 수가 없다. 참 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네 다들 너죽보 읽읍시다 두 번 읽읍시다 두 번 읽으면 처음에 놓쳤던 자잘한 떡밥들까지 보여서 소름 두배…. 미련할 정도로 정의로운 사람과, 그 사람을 사랑한, 미련할 정도로 다정한 사람을 보아주세요 8ㅁ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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