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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페퍼민트 로즈

by 뀽' 2019. 6. 25.

페퍼민트 로즈  /  밤꾀꼬리

★★★

악마가 가장 숭고하게 느껴지는 기묘한 이야기

 

지금의 그녀는, 전생과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악마는 그 사실을 몇번이고 겪으면서도

도무지 모든 걸 포기할 수 없었다.

…인간들은 이 감정을 사랑이라 불렀다.

 

※ 주의: 주인공이 누구와 이어지는지 등, 작품의 중요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악마술사인 주인공 칸나와 칸나를 따르는 악마 메피스토. 그리고 둘이 살고 있는 집에 갑자기 들이닥친, 연쇄살인 용의자이자 칸나의 동료 배우인 미하엘. 이 세 사람(사람이 아닌 게 섞여있긴 하지만)을 중심으로, 주변에서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사건들의 배후를 밝혀내고 그와중에 사랑도 하는, 오컬트 로맨스물!입니다. 신선한 소재와 작가님의 깔끔하고도 뛰어난 필력이 돋보이는 수작인데 별점이 저런 이유는.. 제가 삐져서 그래요... 제 최애가 초중반엔 애절한 서사를 미친듯이 쌓아올리더니 중반부턴 갑자기 천하의 못난 놈 취급받으며 내동댕이쳐져서...ㅋㅋ..ㅋ..

 

글 전개는 추리, 미스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빨려들어갈 정도로 흡인력이 대단하다. 과거, 칸나의 오빠가 정황상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서문을 열더니, 시점이 현재로 바뀌어 칸나와 악마의 집에 연쇄살인 용의자가 찾아와 문이 부서져라 두드리고! 실은 그가 누명을 뒤집어 쓴 것임이 밝혀짐과 동시에, 미하엘에게 누명을 씌운 자와 칸나가 찾고 있던 오빠의 원수 사이의 연결고리가 보이기 시작하고! 오랜 세월에 걸친 이 모든 음모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점차 드러나는데!!!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은 '악마술사'인 칸나 가문의 어둡고 신비한 이야기, 모든 국민이 사랑하는 미남 배우 미하엘의 뒷사정, 그리고 진실을 알면서도 침묵하며 지켜보기만 하는 악마 메피스토의 이야기와 어우러져 굉장한 시너지를 냅니다ㅋㅋ 오컬트물답게 마수와 각종 기현상이 등장하는 것도 흥미진진하고, 무엇보다 로맨스물답게 주인공을 사이에 둔 뇌쇄적인 검은 악마와 천사표 금발 미남 배우의 껄끄러운 신경전까지 있으니 보는 독자 많이 흐뭇했습니다.. 흐뭇했는데....

 

플랫폼을 막론하고 이 작품 리뷰 댓글에서 다들 내 주식 망한 건 그렇다치더라도 메피스토 어쩌냐고 울부짖고 있던 이유가 있었다.. 다 읽고 나서 상처가 큽니다....

 

애초에 메피스토는 인간이 아닌 '악마'이고, 따라서 일반적인 인간의 감정이나 도덕관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그의 생각과 행동들이 끔찍하게 느껴지긴 하는데. 문제는 증오와 경멸을 불러일으키는 그 '악마'로서의 면모를 다 집어삼킬 정도로 메피스토의 순정이 대단하다는 데에 있다. 도리어 그의 비도덕적인 행동들도 그가 인간이 아닌 악마라는 이유로, 독자 입장에선 면죄부를 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쉽게 생김. 

 

물론 진남주인 미하엘의 서사가 약한 건 아니다. 초반부터 꾸준히 주어지는 칸나와 미하엘 사이의 서사는 충분히 아련하고 애절하며 설레기까지 하는데.. 아니 그런데도 중반까지 쌓인 메피스토의 서사가 너무 거대하다고!!! 지금 이건 몇백년동안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기다린 순정과, 첫눈에 반해 몇년동안 혼자 품어왔던 사랑의 대결인 건데. 마음의 깊이를 재서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긴 하나, 시간이 주는 무게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몇백년동안 지켜온 순정 앞에서 몇년간의 짝사랑이 상대적으로 얼마나 가벼워보이는지 아십니까 흑...ㅠㅠ....

 

제가 메피스토의 사랑이 안 이뤄졌다고 징징대는 건 아니구요.. 안 이뤄졌다고 해도 칸나가 그에게 아주 자그마한 '애증'(애정 아니고 애'증')이라도 품어줬다면 이렇게 분노와 허탈감으로 미쳐날뛰진 않았어... 메피스토의 마음을 알면서도 티끌만큼의 죄책감도 없이 그를 이용하기만 하면서 끊임없이 그는 악하고 나는 정당하다고 말하는 듯한 칸나의 태도 때문에 읽는 내가 다 대리상처받음. 

 

악마가 끔찍하고 증오스럽더라도, 그가 수백년동안 자신만을 기다리고 자신을 위해 희생까지 하는 헌신적인 존재란 걸 아는 이상 아주 조금의 미안함이라도 가질 법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칸나는 티끌만한 미안함이라도 가지긴커녕 시종일관 마치 신이 악마를 벌하기라도 하는 듯이 당당해서.. 이런 칸나의 태도가 거의 학대와도 같이 느껴졌기 때문에 작가님의 필력이 뛰어남에도 중후반부서부턴 주인공에게 전혀 감정이입을 하지 못했다.. 죄송해요 작가님....

 

손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메피스토 취급에 분노했는데도 이 작품에 별점 3점 미만을 주지 못하는 건 제 최후의 양심이었습니다... 읽기 전에 진남주가 미하엘인 걸 미리 알고 그에게 마음을 주려 부단히 노력했음에도 메피스토를 더 좋아할 수밖에 없던 걸 보면 러브라인 감정 서사 쪽으론 성공이라고 하기 힘들지만ㅠㅠ 깔끔하고 정돈된 문체에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전개, 그리고 앞뒤 딱딱 맞는 전체 스토리 구조까지, 수작임을 부정할 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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