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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모시던 아가씨가 도련님이 되어버렸다

by 뀽' 2019. 8. 5.

 

모시던 아가씨가 도련님이 되어버렸다  /  태비의별

★★★☆

단 한 명분의 사랑만 있어도 악당은 태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거라고, 

기대 없이 살아가는 삶이란 

얼마나 삭막하고 외로운가.


내 인생에 별이 되어줄 사람이

누군가 한명쯤 나타나 줄 거란 생각.


나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희망이,

사람들을 살게 한다고 생각했다.

 

※주의: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일단 TS물 아닙니다. 아니.. 맞나? 프롤로그만 읽어도 표지의 저 분(들)의 정체가 아가씨인지 도련님인지 나오는데 뭐 뻔한 거 아니겠습니까 다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지요ㅋㅋ 하지만 취향 타는 소재가 안 나오는 소설이라곤 못하겠다. 사전 경고부터 하자면 TS물은 아니지만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며, 여자였다 남자였다 난리부루스를 추는 만큼 GL적인 분위기와 BL냄새까지도 풍기는, 여러모로 대단한(...) 작품인데 중요한 건 재밌다! 웃겨요! 거기다 후반부 가면 슬프기까지 해!


아가씨와 그 아가씨를 사모하는 남주들로 구성된 역하렘 소설에, 우리의 여주 블레아 소프가 빙의를 해서 그 아가씨의 시녀가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하는데.. 주로 블레아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주인공이 빙의자라는 걸 매번 상기시키듯 21세기 대한민국의 온갖 개그드립들을 쉴 새 없이 친다. 덕분에 감금+방치+여장 중인 클로이 아가씨(본명, 클로드)와, 아가씨의 시녀라는 이유로 직장 내 따돌림을 당하는 시녀(장녀에게 돈 벌어오라고 윽박지르는 노답 가족은 덤)라는, 상당히 암울한 상황임에도 분위기가 심각하다기보단 귀염뽀작함


초중반은 그렇게 정통로판의 전개방식을 잘 따라갑니다. 감금 생활을 하는 도련님 아가씨와, 그 곁을 지키는 시녀, 그리고 '원작'에서 그 아가씨를 좋아하던 남주후보 원투쓰리까지. 여기서 약간의 클리셰 비틀기가 있다면, 세 명의 남주 후보들 중 블레아를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놈이 아무도 없.. 없어! 블레아가 빙의한 원작은 역하렘이라는데 이 작품은 역하렘이 아닙니다! 근데 따지고 보면 그 빙의한 원작도 사실은 역하렘이 아니었고! 연중되었기 때문에 블레아가 뒷내용과 비밀 설정들을 모르고 있었을 뿐이었고! 그리고 거기서부터 갑자기 이 작품의 세계관은 메타적 세계관으로 확장된다.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사실 소설 속이랍니다!


현재의 세계가 '소설 속'이며 그들이 신이라 말하는 존재는 한명의 '작가'에 불과하다는 이 무서운 진실을 아는 사람이 블레아 말고도 있었다는 전개. 그리고 초중반의 귀염뽀작한 분위기와 달리 클로이의 여장이 풀린 이후 시작되는 뭔가 세계 종말에 맞서 싸워야 하는 것 같은 비장한 분위기. 물론 이때도 블레아의 개드립은 멈추지 않습니다만, 이 모든 전환이 약간 급작스럽게 느껴져서 중후반부 즈음 당황하는 독자층도 상당수 있는 듯. 떡밥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메타적인 세계관이 될 거라곤 조금도 예상할 수 없던지라.. 


하지만 약간의 이질감과 당황스러움을 잠깐만 견디면, 확장된 세계관만큼 훨씬 깊어지는 메인 커플의 서사와 눈물 나는 조연들의 이야기까지, 지른 걸 후회하지 않을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부끄럼 타면서도 할 거 다 하는 연하남 도련님 클로드와 눈치 없으면서도 중요할 땐 눈치가 빠른 블레아 커플이, 사실 어떻게 이어진 것인지,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밝혀지는 순간 읽는 독자 가슴 먹먹하...한데! 나는 여기서 조연인 데이스에게 꽂혀버렸을 뿐이고ㅠㅠㅠㅠㅠ 


본래 남주후보3이었던 데이스는 연중된 원작에서 '흑막'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늘 블레아의 의심을 사는데요.. 이 데이스와, 이름을 밝힐 수 없지만 아무튼 데우스 엑스 "마키나"와 같은 어떤 분! 그런 분이 있는데 이 두 명의 서사가 조미료 같이 잠깐 나왔음에도 너무 거대하고도 애틋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작가님이 이 두 명 서사로 그렇게 날 울리다가 마지막에 설렘 폭탄 던져놓고 끝내셨는데요 당장 외전 써주세요 빨리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ㅠㅠㅠㅠㅠ 감상문 부제에 써놓은 '단 한 명분의 사랑만 있어도 악당은 태어나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주인공 커플을 가리키는 표현인 동시에 데이스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분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아아아악!!!


여하튼, 등장 인물 간의 서사가 좋고, 떡밥 회수도 훌륭하며, 미친 드립 치는 귀염뽀작 개그물이었다가도 중요한 순간의 대사들에서는 눈물이 나는 좋은 로판이었다ㅋㅋ 결말까지 읽은 독자들의 평이 좋은 데에는 이유가 있음. 세계관 확장이 급작스럽게 느껴졌던 점과, 개인 취향 상으론 메인 커플이 설렌다기보단 귀여워서 설레는 건 데이스와 그분 쪽이 설렜다 별점이 약간 낮아졌지만 귀여운 연하남과 주책바가지 누나가 취향에 맞는 분들은 더 좋아하실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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