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Novel/Romance

감상/ 조연의 아홉 번째 시간

by 뀽' 2019. 8. 15.

 

조연의 아홉 번째 시간  /  체사린

★★★

절대자 앞에선 모든 게 무력할 뿐


내 모든 시간이

결국 당신을 찾아 흘러가게 될 것임을.

 

※주의: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일단 이 소설의 무료 연재 당시 제목은 '그 고양이의 행방을 묻지 마세요'였다는 것을 밝힙니다. 그렇다, 이것은 조연 빙의물인 동시에 동물 빙의물! 이 소설 저 소설을 다니며 온갖 역할로 환생하는 삶을 살아가던 주인공은, 9번째 인생에선 고양이에 빙의하게 되는데! 인생 아니고 묘생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고양이의 주인, 르웬이 이 소설의 악녀 같다는 것이다. 어딘가 광기에 휩싸인 것처럼 보이는 르웬은 물건을 던지고 깨뜨리고 패악을 떨면서도 우리의 주인공 고양이, '피앙'만은 매우 아끼는데… 여기서부터 뭔가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납니다ㅋㅋ


초반부는 마치 디즈니 시리즈의 동물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길고양이 친구인 바페르와 책방 할아버지네 멍멍이 멜던, 츤데레 페르시안 고양이 뽀삐 등 귀여운 동물 친구들이 한가득인데다, 주인공 피앙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리고 잘생긴 남자 인간 세이비언―당연히 남자주인공 되시겠다―까지. 


하지만 마냥 귀염뽀작한 이야기는 아닌 것이, 피앙의 주인인 르웬을 중심으로 스산한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깔린다. 마치 '억지로' 나쁜 일을 행하는 듯 보이는 르웬, 그리고 미래를 알고 있는 듯한 르웬의 말들. 뭐야 설마 너도 빙의냐? 아니면 회귀? 그런데 설상가상(?) 세이비언까지도 미래를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하고. 거기다 황태자와 성녀까지, 이상하지 않은 등장인물이 없다!!! ㅇㅁㅇ(충격)(혼란) …이거 사실은 주인공 빼고 에브리바디 환생 파티인데 피앙 놀래키려고 몰카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범상치 않은 전개가 이어지는데, 초중반부에 회수되는 이 기묘한 환생 및 과거 떡밥은 설레고, 애틋하면서도, 비극적이다. 


대형 스포라 자세히는 말할 수 없지만 이 작품만의 독창적인 환생 설정을 바탕으로 깔고, 거기에 머리 쓰게 만드는 황가 내의 권력 다툼, 갑자기 출몰한 좀비 떼와 관련한 교황청의 음모, 거기다 귀여운 고양이까지 끼얹은 전개는 정말로 매력적인데! 매력적이었는데..! 이 스케일 큰 이야기의 모든 것을 종결 짓는 결말부가 개인적인 취향으론 많이 허망했기에 아쉬웠다. 복잡하면서도 섬세하게 짜이고 있던 갈등의 매듭이, 하나하나 조심스레 풀리는 게 아니라 갑자기 나타난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인해 숭덩 잘려나간 기분.


노파심에 덧붙이는데, 떡밥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생뚱맞은 전개는 전혀 없음. 그러나 정말 말 그대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 설정이 후반부의 모든 복잡했던 갈등을 단 한 번에, 너무나도 쉽고 간단하게 해결해버린다. 지금까지의 치열한 고민과 번뇌와, 그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벌였던 모든 사투가 무슨 의미였나 싶을 정도로, 절대적인 힘이 등장해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해주는 결말은 힘이 좀 빠지긴 하네요ㅠㅠ... '악인'과 '갈등', '비극'이라는 것 자체가 삭제된 듯 보이는 세상이, 개인적으론 '완벽한 해피엔딩'이라기보단 '신에 의해 인간 냄새가 사라진 채 박제된 모범 세계의 표본' 같은 느낌이라 기분이 이상했던 것도 있다. 


부족하고, 불완전하고, 그로 인해 수많은 갈등과 비극이 빚어진다 해도 그 안에서 치고 박고 스스로의 힘으로 승리를 쟁취해내는 인간 찬가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라. 내 취향과는 상반된 이 소설의 '결말'을 그래서 더 못 받아들이겠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유능한 악인인 황태자를 좋아했다가 그 캐릭성이 삭제되어서 광광 울고 있음. 하지만 결말이 내 개인 취향에 안 맞아서 그렇지 '기승전'까지 쉴 새없이 떡밥 던지고 회수하며 진행되는 흥미진진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중반에 살짝 잊혀진 것 같던 동물 친구들이 후반부에 재등장할 때 기뻐서 비명 지름ㅠㅠㅠ


너무 강스포라 관련 이야기는 모두 생략했지만 이 비뚤어진 취향의 독자는 주인공 커플보단 유능한 쓰레기 황태자 에스밀리온, 모럴 부족한 미친 과학자 멕그레거, 그리고 이미 이 세상에 없는 메이릭(ㅠㅠㅠㅠ)을 사랑했습니다... 진짜 사랑했다..!ㅠㅠㅋㅋㅋㅋㅋ 그리고 뭐라 해도 고양이는 늘 옳은데다, 떡밥 추리해나가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인 만큼 취향에 맞다면 인생작일 수 있는 소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