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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폭군에게는 악녀가 어울린다

by 뀽' 2019. 9. 21.

 

폭군에게는 악녀가 어울린다  /  유이란

★★★

유쾌한 병맛 코미디 판타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사느니

화끈하게 지르고 죽어야지

 

격렬하게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읽으면 좋을 작품이 여기 있다. 전개되는 스토리는 분명 심각한 걸 넘어서서 피폐한 게 분명한데 등장인물들이 모두 어딘가 하나씩 나사가 빠져 있음


나만 죽냐? 같이 죽자! 하는 주인공과 그 옆에서 박수치며 옳지! 옳지! 잘한다! 하는 남주. 거기다 악역인지 조력자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빙의자 성녀는 입을 열 때마다 메타 발언을 쏟아내고, 주인공의 찐 베프는 주인공과 함께 야설 덕질하느라 정신이 없다. 무시무시한 드래곤은 튀어나왔다가 몇 대 처맞더니 엄마를 부르며 울고, 정령이라는 놈은 아직 할부가 몇백년 남은 집이 망가졌다며 울고, 독자는 도대체 이게 무엇인가 하면서 웃느라 울게 되는 미친 소설.


초중반부는 이 소설 제목에서 느껴지는 클리셰의 향기가 그대로 묻어나는 내용이다. 소왕국의 사생아로 태어나 별궁 구석에 방치되어 하녀 셋의 손에 길러진 우리의 불쌍한 주인공. 그녀는 나라를 위해 팔려가듯 폭군의 비가 되는데, 괜히 현비인 척 했다가 암살자의 칼에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으면 악녀인 척 해야 한단다. 너에겐 악녀를 연기할 의무가 있다는 폭군 남편의 제안을 받아들여 제국의 국보를 집어던지고 무식을 자랑하며 패악을 떠는 등 훌륭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그와중에 이 남편놈은 단순히 연기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다정한 사람이었고, 둘은 그렇게 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 같았는데...


거기서부터 내용은 슬슬 비틀리기 시작합니다. 위기 상황마다 적절한 해결방법이 써 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책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까진 괜찮다. 폭군남주가 과거에 생체실험(?)을 당했었다는 심상치 않은 과거도 뭐, 남주라면 하나씩 붙어있는 설정이니 괜찮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을 어릴 적부터 길러주었다던 하녀 셋이 원래 없는 사람이란다. 갑자기 분위기 호러물


다행히 호러물은 아니구요, 아무튼 심상치 않은 떡밥들이 하나둘씩 더 뿌려지기 시작하더니 기어코 '대마녀의 계승자'라는 인물까지 나타나 주인공과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한다. 어딘가 나사빠져서 제정신이 아닌 주연들에 비해 그래도 좀 진지한 악역 캐릭터 같았는데, 역시 나쁜 놈은 미친 놈을 못 이기는 법ㅋㅋ 주인공 파티에게 해악을 끼치긴커녕 역관광만 당하는데, 원래 진짜 적은 내부에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드래곤과 정령, 거기다 마녀까지 등장한 이 세계관에서 숨기고 있던 비밀 설정들이 풀리면서 이들이 진짜로 맞서 싸워야 하는 게 뭐였는지 드러난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건 악녀 클리셰 개그 로판에서 시작해 먼치킨 판타지물로 끝나는 작품이다. 극초반부를 읽을 땐 상상도 못했던 내용이 중후반부 전개를 이끄는데다 세계관이 무지막지하게 커지는데, 의외로 이것들이 차근차근 복선과 힌트를 밟아가며 단계적으로 펼쳐지기 때문에 갑작스럽다는 느낌은 받지 못한다. 비중 있는 등장인물이 꽤 많아서 정신 없고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초반부였는데, 모든 캐릭터들에게 각자의 역할이 맡겨지는 후반부를 보며 작가님이 이 큰 판을 다 생각하고 쓰셨구나,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됨. 


단, 메인 커플 위주의 로맨스 서사를 보고 싶었던 독자층이라면 스토리 전개가 약간 당황스러울 순 있다. 즉, 생각보다 조연들의 비중이 (그것도 메인 서사와 큰 상관이 없는 주변부적인 이야기 비중이) 꽤 크다는 것. 주인공이 먼치킨이 되어 동료들과 함께 재앙을 해결하는 전개는 흥미진진하고 좋은데, 그 과정에서 주요 조연들이 모두 짠 듯이 사랑의 작대기를 그으며 커플매칭이 되는, 그런 부수적인 이야기는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 하나 솔로로 남는 사람 없이 제 짝을 찾는, 민주주의인지 사회주의인지 모를 그런 로맨스가 마음 편하고 좋은 독자들도 있겠지요ㅋㅋ


하지만 분명한 건, 조연들의 비중이 큰 만큼 그 조연들의 캐릭성 또한 주인공만큼이나 미쳤고 매력적이라는 것. 그리고 이들의 중심에 서 있는 주인공은 그 중에서도 제일 미쳤고 멋지고, 그녀의 반려인 폭군 황제 남주는 조신하다. 정신 나간 미친 자들이 정신 없이 떠들며 왁자지껄 이 세상을 구하는 로맨스+개그+먼치킨+판타지물이 보고 싶다면 추천할 만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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