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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악마는 레이디를 키운다

by 뀽' 2019. 7. 2.

 

악마는 레이디를 키운다  /  이르

★★★

다정한 거짓말쟁이들의 이야기


이상해. 나는 왜 네가 거짓말을 하는 거 같지?

 

육아물 냄새나는 제목은 잊읍시다 이건 어엿한 성인 남녀간의 긴장감 넘치는 텐션으로 가득 찬 이야기니까. 가문의 복수를 위해 이를 갈며 아득바득 살아온 주인공. 그녀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던 순간, 지금까지 곁을 지켜왔던 충직한 기사가 '사실 나 악마였음'하며 뒤통수 후려치는 걸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제목부터 거짓부렁이더니 아주 죄다 거짓말 투성이다. 복수를 위해 사랑을 속삭이는 위선자와, 사랑을 위해 독설을 퍼붓는 위악자의 거짓말 콜라보레이션이 지켜보는 독자 가슴 찢어지게 만드네요 커흑ㅠㅠㅠ


통수 맞고 시작하긴 하지만 일단 그래도 이 악마놈이 전생에서 망한 복수 현생에서 잘해보라고 회귀시켜준 덕에 13년 전으로 돌아온 주인공 아이아나. 이번 생에선 가족들을 살리고 원수인 로셀 가문에게 복수하고자 고군분투하는 것이 메인스토리인데.. 이거 생각보다 상황이 단순치가 않다. 전생에선 그렇게 아이아나를 죽이려 든 로셀 가문 에레즈의 첫사랑이 사실 아이아나였다는 불편한 진실. 나비효과 때문에 점점 틀어지는 미래와 앞당겨지는 불행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를 사랑하고 또 그녀가 사랑했던 충직한 호위기사 디아벨은 모두 허상이었다는 듯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잔인한 악마 디아벨만이 남아있는 현실이 아이아나를 가장 괴롭게 만든다. 


복수하려고 하는 대상은 과거로 와서 보니 그저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어린 소년일 뿐이고, 정작 전생에 사랑했던 호위기사는 이제 제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지껄이고 있고. 그래서 에레즈의 사랑을 이용할 땐 죄책감으로 가슴이 멍들고 디아벨과 얘기 나눌 땐 분노와 애증으로 가슴이 타올라서 가슴 성할 날이 없는데.. 그런데! 그 와중에도 뭔가 속고 있는 기분이라면 제대로 보셨습니다. (???: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애증과 죄책감으로 점철된 가슴 조이는 감정 서사도 서사고, 복수를 위해 차근차근 준비를 하는 과정도 상당히 짜임새 있게 쓰여 있다. 복수를 위한 자본 마련(...)을 위해 사업가이자 전생의 아군이었던 녹스와 재회해 거래를 트는 장면은 울컥했고, 가족들이 모두 몰살당했던 참극의 날 밤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전생의 기억을 되살려 추리하고 범인을 잡아내던 에피소드는 짜릿한 쾌감까지 들었음. 혼자 알고 있는 미래 정보로 자본을 선점하고 위험을 피하는 이런 전개는 회귀물의 클리셰이긴 하지만 전개가 늘어지지 않아서 정신 없이 재밌게 읽을 수 있다ㅋㅋ 


다만 총 4권 중 마지막 권에 들어서 아이아나가 갑자기 스토리의 변방으로 밀려난 듯한 느낌이 드는 게 아쉽다. 종장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전쟁씬에서 아이아나가 주도적으로 한 일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그 이후의 전개가 크게 와닿지 않고 도리어 약간 갑작스럽게 느껴짐ㅠ 3권까지 봐온 아이아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강해지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었는데, 눈앞의 위기가 너무 커서 그런가 아이아나가 갑자기 약해져서 '지킴 받는' 포지션이 된 게... 작가님이 어느 정도 의도하신 거 같긴 하지만 읽으면서 '정신 차려 지금까지 잘해와놓고 뭐하는 짓이야 왜 갑자기 개복치짓하니' 내적 비명 질렀음ㅠㅠㅋㅋㅋㅋ


그렇다고 뒤에 가서 전개에 힘빠지는 그런 소설은 아닙니다(다급), 복수 스토리도 사랑 이야기도 모두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데다 중간 중간 계속 뒤통수 때리는 반전들이 나오기 때문에 손에 땀을 쥐고 읽게 됨ㅋㅋ 단, 외전까지 모두 읽은 시점에서 몇 개의 의문점들―회귀 전 디아벨이 왜 굳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유를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점, 회귀 전 에레즈의 감정선이나 생각을 알 수 없다는 점, 타라는 왜 하필 플레타의 가정교사로 있었던 건지 등―이 남아 완전히 개운하다곤 할 수 없다. 이것도 추가 외전으로 풀리면 좋을 텐데 그럴 일이 없어 보여 슬픔 8ㅁ8...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사람 가슴 아프게 만드는 진하고 독한 서사 찾기 쉽지 않다. 소설 읽으며 오랜만에 현실 흉통이 느껴져 베개에 얼굴 박고 울었음.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던 가여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고 싶다면 읽어봅시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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