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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완벽한 그를 피하는 이유

by 뀽' 2018. 10. 11.

 

완벽한 그를 피하는 이유  /  공은화

★★★

특별할 건 없지만 무난하고 편안하다


너무 안일했다. 그리고 어리석었다.

자신은 이 세계의 신이 아니었다.

그저 한 명의 등장인물일 뿐이었다.

 

제목에서 강렬한 고구마의 기운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고구마가 심한 소설은 아니다. 크게 늘어지는 부분이 없으며, 일반적인 빙의물 로판 공식을 착실하게 잘 따라가는 작품. 약간 특이한 점이라면 독자가 아니라 작가 본인이 자신의 작품에 빙의했다는 것 정도? 그 덕분에 여주인공(a.k.a. 작가)은 제게 홀랑 반해서 구애하는 잘생긴 황자님이 결국 파멸할 악역임을 너무 잘 알고 있음ㅋㅋㅋ 내가 왜 쉬운 길 놔두고 굳이 가시밭길을 걸어야 합니까!를 외치며 이리저리 피해다니다가 결국 자기 마음을 인정하고 미래를 바꾸겠다 결심하는, 그런 이야기 되시겠다.


일단 여주인공께서 세계관 창조자이시기 때문에 소설 속 주요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말버릇, 과거사 등에 대해선 거의 꿰고 있는데.. 그래서 이분, 등장인물 차별하십니다ㅋㅋㅋㅋ 자신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여주인공 프리아를 중심으로, 일명 '선한 쪽' 인물들 앞에선 잘 보이려고 얌전한 척 똑똑한 척 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 관리, 악역 내정자따위에겐 일절 없다. 주인공이 감정을 자각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로써, 나쁜 짓하다 장렬하게 패망할 악역, 엔리케 황자 앞에선 기품 있고 가녀린 영애 따위 집어치우고 식성 좋고 돈 밝히는 본래의 자기 자신을 모두 드러내심. 


하지만 그런 게 바로 '특별한 관계'의 시작 아니겠습니까?!! 장차 악역이 되실 우리의 황자님께선 그렇게 이 먹보에 속물에 똑똑하고 심지어 절세미인이기까지 한 창조주 여주인공 마리 헬레윈 영애에게 완전히 반해버렸고, 거기서부터 모든 스토리는 원작을 벗어나 전혀 다른 궤도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남주가 여주에게 반하고, 감정 자각하고, 그래서 애걸복걸 목매기 시작하는 내용이 작품의 초반부에 몰아치듯 다 나오기 때문에 남주의 감정변화가 너무 급작스러운 거 아닌가 싶긴 하지만, 남주의 눈에 비쳤을 이 엉뚱하고 귀여운 여주는 독자의 눈으로 봐도 사랑스럽기 때문에 크게 이상하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단지 그 이후의 전개가 묘하게 단조롭다. 


분명 목숨까지 위협받을 정도로 스펙타클한 사건들이 터지고, 그 사건들이 원패턴 반복식인 것도 아니며, 나름 기승전결이 뚜렷한 구조인데도 전개가 단조롭다 느껴지는 것은, 이 소설에 딱히 복선이나 떡밥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쭉 읽어나가다가 '앗! 그래서 그때 그랬구나!'하는 벼락 같은 깨달음과 뒷통수, 그런 것들이 만들어내는 소름 돋는 전개가 없다. 나쁜놈은 누가 봐도 처음부터 나쁜놈이고, 민폐캐는 누가 봐도 처음부터 민폐캐다. 반전은 없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막힘 없이 술술 읽히지만, 초반부터 숨겨진 퍼즐을 찾아내고 이리저리 맞추어 보다가 마지막에 커다란 그림이 완성되는 그런 쾌감이 없다. 


러브라인 서사도 아쉬운게, 아니 둘이서 너무 소통을 안 햌ㅋㅋㅋ 여주인공이 자신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털어놓고 상담하는 대상이 남주인공이 아닌 다른 남조연이라는 게 너무 아쉽다. 남주가 본래는 악역 꿈나무였던 만큼 잘못하다 비뚤어질까봐 그에게 매번 사실을 숨기는 건 십분 이해를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위기를 헤쳐나가며 서로 간의 신뢰와 애정이 점점 견고해지는 그런 감정선과 서사가 전혀 없다는 건 역시 허전해.... 둘 사이는 그저 만나자마자 반한 남자가 끝없이 대시해서 여자가 넘어간, 딱 그 정도 서사밖에 없다. 더 깊고 아련하고 뭉클한 무언가가 없..어..... 빅픽처 서사충은 속상하다


이외에도, 이 세계의 '창조자'인 여주가 정작 이 세계의 중요한 설정들에 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점, 남주가 유능하다고 묘사되는데 유능하다고 느낄만한 장면이 거의 없다는 점, 그리고 소설 속에 빙의하게 된 이유는 전혀 설명되지 않는 아묻따 빙의물이라는 점 등 세세하게 아쉬운 점들이 꽤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읽기 굉장히 편한 소설입니다ㅋㅋ 누군가는 이 소설을 보고 너무 판에 박힌 안일하고 게으른 캐릭터 설정과 플롯 전개라 욕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별 생각 없이 술술 읽히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쓸데없이 꼬인 부분이 거의 없고, 로맨스와 정치가 적절히 섞인 전개를 편안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해피엔딩인, 다 읽은 후에 딱히 후회되지 않는 작품이라 로판 입문작으로 좋을 것 같은 그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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