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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후원에 핀 제비꽃

by 뀽' 2018. 8. 15.

  

후원에 핀 제비꽃  /  성혜림

★★★★☆

그들이 행복했으면 한다고, 차마 말할 수가 없다


그 봄날,

그렇게 하늘은 파랗고 꽃은 피어나고 

새들은 아름답게 지저귀는데

그 세상에는 너만 존재하지 않았다.

 

완독한 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이상하게 이 작품은 제정신으로 감상을 쓸 수가 없다. 총 5권 분량. 4권까지 내내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같이 분노하고, 같이 가슴 아파한 주인공은 마지막 5권 단 한 권만에 나에게 애증의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그녀에겐 죄가 없고, 그녀를 사랑한 그에게도 죄가 없고, 그래서 죄없는 그들이 더 미운, 저는 정말 비뚤어진 독자입니다..


천민 출신의 성녀. 이 수식어 하나만으로도 주인공 비올렛이 감내해야 했던 모든 수모와 모멸감이 선명하게 느껴지고, 그런 그녀의 가디언이 되기로 결심했던 에셀먼드의 진정성 또한 뼈 아프게 다가온다. 서사를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뿐 아니라 다른 주조연 인물들의 캐릭터성 모두 흐릿한 사람 하나 없이 그 농도가 짙다. 가족을 빼앗고 다시 가족을 선물한 이들, 그마저도 서툴렀던 에르멘가르트 후작, 상냥한 악의 투성이었던 다니엘, 소름끼칠 정도로 맹목적인 교황 린도, 그리고 체자레. 체자레. 체자레. 아아아아 체자레 아아아악ㅠㅠㅠㅠ!!!!!!


신성한 나라 아그레시아를 악당 '말룸'에게서 지켜내는 위대한 성녀와, 그 성녀를 지키는 가디언. 이들을 둘러싼 복잡하고도 모순적인 인간 감정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쉼없이 펼쳐지는 사건들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정신 없이 흥미진진한 소설이지만, 중간 중간 '외지인'인 이자카와 '공작이자 추기경'이라는 모순적인 지위를 가진 체자레의 입을 통해 던져지는 이상하지만 근본적인 질문들―왜 성녀 혼자서 말룸을 대적하는가? 성녀가 그토록 강한 존재라면 그녀를 지키는 가디언은 왜 필요한가? 더 나아가, 왜 성녀가 없던 시기엔 말룸도 없었는가?―은 독자들로 하여금 무언가 이상하다는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위화감에 대한 답은 마지막 권, 체자레를 통해 드러난다. 어쩌면 이미 4권까지 오는 동안 무의식 중에 조금쯤은 눈치챘을 진실임에도, 그 모든 것을 상세하게 되짚으며 깨우침을 주는 체자레를 보는 건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워서ㅠㅠ... 4권 내내 비올렛을 지독하게 아끼면서도 끔찍하게 괴롭힌, 도무지 이해가 안 가고, 무섭고, 소름 끼치던 체자레의 모든 행동이 갑자기 모두 이해가 되던 순간, 정말 말 그대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곧 이 세상을 지켜내야만하는 이유가 되는 그야말로 장엄한 사랑 이야기이자, 동시에 개인과 집단의 대립을 다루면서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꽤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깊이 있는 로판....인데 죄송합니다 저 같이 시야 좁고 속 좁은 독자는 이걸 다 읽고 나서 X발 다 죽어! 다 죽으라고! 한 명도 빠짐 없이 다 죽어버리란 말이야!!!<< 같은 말이나 외치고 있음ㅠㅠㅋㅋㅋㅋ 그렇습니다.. 내가 바로 이 구역의 미친 체자레 악개... 아니 어떻게 다 읽은 지 1년이나 지났는데도 이 작품 떠올릴 때마다 그때 그 미친 상태로 회귀하는 거죠..


아무튼 그만큼 몰입도가 굉장한 소설이라는 말입니다..ㅋㅋ 앞에서 말한, 모든 진상이 밝혀지는 5권만 문제가 아니라 1~4권에서 묘사되는 비올렛과 주변 인물들의 심리나 글 전개 또한 굉장하니, 꺽꺽 오열하면서 실연당한 사람 취급 당하고 싶지 않으면 반드시 자기 방에 혼자 있을 때 읽어야 함.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다. 읽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감정소모가 대단해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작품을 쓰신 작가님 정말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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