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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악녀의 정의

by 뀽' 2018. 8. 8.

악녀의 정의  /  주해온

★★★☆

자고로 나라의 지배계층은 이런 '악녀'여야 한다

 

그대를 잘 모르겠어. 다정한 건지, 냉정한 건지.

 

어차피 악녀 몸에 빙의한 거, 악녀로 살아주마 하는 주인공의 ‘좋은 황후 되기’ 프로젝트를 그리고 있는 역설적(?)이면서도 귀여운 소설. 처절하고 독한 악녀를 기대한 사람이라면 이게 뭐가 악녀냐며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은 악녀를 주인공삼아 그 악녀의 일대기를 그리기보단, 두 종류의 대비되는 여자캐릭터를 두고 ‘악녀라는 건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거냐’고 질문을 던지는, 말 그대로 ‘악녀의 정의(定義)’를 묻는 작품이다. 

 

보통 악녀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오르는 클리셰적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 교양과 품위는 내던진 채 패악질을 부리며 남 괴롭히는 여자. 혹은 겉으로는 온순한 양인 척 굴며 뒤에선 다른 사람을 나락에 빠지게 하는 부류. 이런 걸 악녀라고 정의한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 샤티는 놀랍게도 이 두 가지 면모를 동시에 가진 토탈 패키지 악녀다. 시녀들에게 패악질을 부리고, 다른 이들에게 무례한 말을 일삼는 동시에, 필요할 때는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얼굴로 교묘하게 남을 함정에 빠뜨리는 그 능력에 박수를ㅋㅋㅋ 

 

하지만 이러한 엄청난 악녀 능력치에도 불구하고 ‘이게 어떻게 악녀냐’고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묻는 독자들이 많은 것은, 그녀가 괴롭히는 대상이 결코 선한 대상이 아니며, 또한 그녀의 모든 악랄해 보이는 행동의 목표가 결과적으로 선하기 때문이다.

 

거리의 소매치기 아이를 마주쳤을 때, 그 아이를 데려와 따뜻한 물로 씻기고 배불리 먹이며 물질적으로 후원해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도록 만드는 것이 선한 행위일까, 아니면 그 아이가 소매치기가 된 원인에 불법노예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곤 이를 소탕하기 위해 아이를 미끼 삼아 다시 그 소굴로 보내는 것이 선한 행위일까. 작중 샤티의 대적자로 나오는 아이린은 전자를 택할 사람이고 샤티는 이를 일컬어 ‘다정하다’고 말하지만, 황태자와 독자들이 보다 다정하다고 느끼는 건 아이를 씻기고 먹이는 아이린보다는, 죄책감 가득한 괴로운 얼굴로 아이를 그 노예상 소굴로 기어이 다시 보내는 샤티 쪽이다. 다정한 마음이 반드시 다정한 행동으로만 나타나진 않는단 걸 모두가 안다.

 

이토록 다정하고도 냉정한 샤티가, 황태자의 연인을 제치고 내가 황태자비가 되겠다!는 아주 악녀다운 목적을 향해 전진하는 것이 이 작품의 메인 플롯인데..ㅋㅋ 이 소설의 가장 독특한 설정은 바로 이 ‘차기 황후가 될 황태자비를 정하는 의식’이다. 황태자비 후보를 ‘레지나’라고 부르는데, 두 명의 레지나가 각종 경합을 통해 누가 더 차기 황후감인가를 공식적으로 평가받아, 그 경합에서의 승자가 황태자비가 된다는 설정. 

 

설정이 이렇다보니 당연히 이 소설은 샤티의 활약상이 두드러지며, 남주인 황태자는 상대적으로 별로 하는 일이 없다ㅋㅋㅋ 이 점이 이 소설의 강점이기도 하고, 약점이기도 함ㅋㅋㅋ 샤티는 멋있는데 남주가 그닥 존재감이 없어요. 심지어 남주 이름을 다들 잘 몰라서 그냥 황태자라고 쓴 댓글들이 수두룩. 남주 이름은 레오프리드입니다.

 

모든 방면에서 똑똑한 샤티가 유독 연애에만 평균 이하의 지능을 보이는 것도 이 소설의 답답한 점.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다 똑똑한 애가 연애 한정 눈치 제로라서 의도치 않은 어장관리와 되도 않는 삽질을 마구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삽질을 하면 당연히 내용이 늘어지기 마련. 샤티가 레지나로서 나라의 서부 지역 가뭄을 해결하고, 불법노예상을 소탕하고, 구휼미를 나누어주는 등 정치사회적인 내용은 (지구에서는 정말 상식 수준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라) 좀 유치하긴 해도 흥미진진한데, 러브라인은 후반부 갈수록 갑갑하다ㅠㅠㅋㅋ 

 

샤티의 적수인 아이린 캐릭터가 초중반 상당히 입체적인 캐릭터였던 것과 달리 후반부에 완전히 평면적인 악녀 캐릭터로 전락한 것도 아쉬운 점. 이 소설이 ‘악녀의 정의’에 대해 다루는 작품인만큼 그 점이 제일 아쉬웠던 것 같다. 하지만 러브라인이나 적수 캐릭터가 아쉽긴 해도, 제국을 생각하는 샤티의 눈부신 활약상과, 그런 샤티를 보며 ‘차기 황후’가 그저 자신의 꼭두각시가 아닌, 자신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게 된 황태자의 모습 등은 그 모든 약점을 상쇄시키는 큰 강점임.

 

그리고 긴 말할 것 없이, 재밌다ㅋㅋ 복잡하게 머리 쓸 필요 없이, 힘들 때 읽어도 술술 읽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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