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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깨진 유리 구두의 조각

by 뀽' 2018. 8. 6.

  

깨진 유리 구두의 조각  /  열매

★★★★☆

추악하게 비틀린 동화, 악으로 악을 이기다


모든 옛날 이야기가 그러하듯

마음씨 착한 의붓동생은 

황태자와 결혼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되고,

그녀를 괴롭힌 나쁜 새엄마와 새언니는 

비참한 여생을 보내며 모두의 뇌리에서 잊힌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왜 그들이 괴롭혔을까?'에 관해 물어보지 않지.

그렇지 않니, 로에나?

 

신데렐라의 언니가 비극적인 생애 끝에 회귀하여, 가식적인 신데렐라를 응징하고 복수하는 속 시원한 사이다물'만' 기대했다면 뒤로가기를 누르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이 소설은 그런 이분법적 흑백구도를 취하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단순히 악녀에게 복수하고 남주를 쟁취하는 내용도 아니고, 초반부에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비틀린 이야기니까


순진하고, 선의로 가득하며, 아름답고 우아한 백작가의 딸 로에나. 그리고 어느날 엄마를 따라 난생처음 비슈발츠 백작가에 들어오게 된 평민 출신의 배운 것 없는 천방지축 시스에. 이 대조되는 둘의 관계에서 악의는 없었던, 정말 백지와도 같이 순수한 로에나의 선의가 어떻게 작용했는지 깨닫는 순간, 선악을 나누는 기준선은 완전히 무너진다. 그럼 로에나가 나쁜 사람인가하면 그건 글쎄.. 분명한 건, 여기서 깨끗하고 고결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 


로에나와 시스에, 비슈발츠 백작과 새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 모두가 존경하는 비슈발츠 가의 기사 류스테윈 할버드, 고고한 얼음의 기사라 불리는 미카엘 아이레스, 솔직하게 욕망을 내보이는 듯한 테오도르 비트라이스, 시스에를 교육하며 그녀 나름의 방식으로 시스에를 예뻐한 마담 드 라빌리에, 그리고 전생에서 로에나와 결혼하고 시스에를 처형했던 그 '황태자'까지. 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각자의 욕망에 충실하다 못해 몰입해 있는 인물들의 모습은 추악하고, 비참하고, 때론 역겹기까지 하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추악한 인간 군상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그 모습들이 아름답게 느껴져서 아니 이 양반아 그게 무슨 이해 못할 현대미술 같은 소리요, 이상하게 들리지만 정말임ㅋㅋ 인간들의 심리를 파헤치고 묘사하는 작가님의 필력이 워낙 뛰어나고, 스토리 자체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아름다운 신데렐라 동화'를 완벽하게 비틀어버리는 소름끼치는 전개라. 새엄마와 새언니는 왜 신데렐라를 괴롭혔을까? 요정 할머니는 사실 어떤 존재였을까? 동화 속에서 신데렐라의 말을 듣던 쥐와 새는? 그리고 사랑의 증표였던 그 유리 구두는? 그것들이 동화가 아닌 '현실'에선 어떤 것들이었을지 낱낱이 나오는데 정말 몸이 부르르 떨림. 


뭐 소설 주제 의식은 그렇다 치고, 일단 이건 '로판'이니까 4명이나 나오는 잘생긴 남캐들(할버드, 미카엘, 비트라이스, 황태자) 중에 과연 진남주가 누구냐는 논쟁이 소설 중반부까지 심한데ㅋㅋㅋ 소설을 끝까지 본 분들이라면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시스에와 이루어진 '그 분'의 이름을 외치겠지만 저는 그 캐릭이 매력적임에도 그는 그저 '시스에의 연인'일 뿐이라 생각함니댜.. 사실 남캐 중에서 서사의 중심에 있는 건 대부분의 독자가 싫어하는 '황태자' 아닌가요. 황태자랑 안 이루어진다고 스포해버렸다.


러브라인에서의 남주 포지션과 메인 서사에서의 남주 포지션이 반드시 겹칠 필요는 없다. 그 좋은 예시 중 하나가 이 작품이라 생각함. 시스에의 연인이 보여주는 로맨스가 이 꿈도 희망도 없는 소설에서 한줄기 빛과 같다면, 토악질 할 정도로 집요하게 의심하고 추궁하나 그 이면에 비틀린 애정을 품고 있는 황태자는 시스에가 싸워서 이겨야 할 '최종보스'로서 이 극의 서사에서 거대한 한 축을 맡고 있는 것이다. 네, 사실 이 한결 같은 쓰레기 개태자가 이 작품에서 저의 최애입니다ㅠㅠ<<ㅋㅋㅋㅋ 


분명히 말하지만, 이 소설은 호불호가 극명히 갈린다. 도덕적인 등장인물이 없고, 모두가 추할 정도로 이기적인 가운데 결국 중요한 건 '누가 이겨서 살아남는가'일 뿐. 하지만 아무리 악행을 저지르는 이기적인 인물이라 해도 그/그녀가 갖고 있는 작은 양심이나, 결코 양보하지 못하는 각자의 선이 언뜻언뜻 보이기 때문에, 읽다보면 그 지극히 인간적인 캐릭터들에게 마음을 내주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음. 본편 연재분 기준 255화나 되는 길이의 장편이기 때문에 그리 빠른 흐름은 아니지만, 그만큼 세밀한 인간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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