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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악녀인데요, 죽어도 될까요?

by 뀽' 2019. 12. 10.

 

악녀인데요, 죽어도 될까요?  /  하이마이디어

★★★☆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괜찮아요


사실, 나는 조금 외로웠어.

조금 두려웠어.

버림받고 싶지 않았어.

체념하고 싶지 않았어.

 

사랑받고 싶었어.

 

※주의: ‘자살’ 키워드가 여러 번 등장하는 글입니다.


사람이 말입니다, 늘 용감하고 진취적이며 건강한 정신으로 살 수는 없어요. 타고난 소수를 제외하곤 특별히 뛰어난 머리나 재능을 갖고 있지도 않은 그저 길바닥 굴러다니는 흔한 돌멩이 같은 인생들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이 소설은 그렇게 힘 없고 자조적이며 심지어 우울하기까지 한 주인공을 내세워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작품 되시겠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빙의물임을 알 수 있지만, 주인공이 빙의자로 받은 '능력 버프'는 1도 없는(!) 실로 놀라운 설정. 외모와 가문 버프는 있습니다. 머리가 좋지도, 눈치가 빠르지도, 입담이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사회성 제로의 우울증 환자이자 자살희망자인 공녀, 세리나. 원래 여기저기 사고치고 다니던 이 악녀가 갑자기 이렇게 무감한 노잼인간이 되어버린 것은, 그 몸에 빙의한 현대 인간의 전생이 말로 할 수 없이 구질구질하고 비참했기 때문이다. 


자식 없는 집에 입양되어 갔더니 얼마 후에 동생이 태어나 버린 것부터 불길했는데, 그 동생이 너무도 병약해 평생 그 아이를 위해 사느라 자기 인생을 갈아넣어야 했던 주인공. 애증 덩어리였던 동생이 정작 죽자, 도리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주인공은 현실에서 자살을 해버립니다. 그런데 눈을 떴더니, 소설 속 여생 3년 남은 시한부 악녀에 빙의된 상태. 살기 싫어 죽었더니 딴 사람 몸에 들어가 3년 더 살아야 한다네? 나는 이제 지쳤어요 땡벌 뭘 3년을 기다려 그냥 지금 죽자… 하는데 이거 이번 생은 주위 사람들의 살벌한 감시 때문에 자살하기가 쉽지 않다.


감상은 이렇게 가볍게 쓰고 있지만, 작품 내에서 자살은 그리 가볍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물론 이게 심오하고 어두운 작품은 절대 아니고, 오히려 무심한 개그 때문에 피식 웃는 부분이 많은 가벼운 문체이지만, 더 이상 삶의 의지가 없어서 그저 죽음으로 모든 것을 끝내고자 하는 주인공의 우울한 심리는 진중하게 다루어진다. 제대로 웃은 적이 없어 웃는 법조차 모르는 주인공이 주변인들로 인해 점차 바뀌고, 주변인들도 그런 주인공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서 함께 변해가는, 이 잔잔한 힐링 과정이 이 작품의 백미임. 


많은 회귀물과 빙의물을 이미 접한 로판 독자 입장에서 정말 '특별한 능력'이라곤 1도 없는 주인공 설정이 처음엔 다소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아니 정말 얘가 외모와 가문 빼곤 너무 평범해서, 티파티에 초대한 귀족놈들 얼굴이랑 이름 외우는 것도 버거움ㅋㅋ 정치적 기싸움이나 마물이 출몰하는 불안한 환경 등에서 주인공이 일명 '활약'을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능력이 없기 때문에 전면에 나서봤자 오빠(지략캐)와 오빠 친구(기사), 호위(마법사) 등에게 정말 짐밖에 안돼요. 그걸 누구보다 주인공인 세리나 본인이 잘 알고 있고..ㅠㅠㅋㅋ 


그럼 이게 그냥 능력자 가족 및 주변인들에게 둘러싸여 우울증 치료하는 부둥부둥 힐링물이냐 하면, 아뇨 전 그게 이 작품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특별한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 필연적으로 느낄 괴로움과 갈등, 무력감을 섬세하게 서술하는 동시에, 그러한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삶을 포기했던 자살희망자'가 '삶을 갈구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과정과 중첩시켜 잘 그려내고 있음. 


아쉬운 점이 없던 건 아닙니다 저 같은 추리요소 처돌이는 소설 중반부에 독자에게 '범인은 누구랍니다' 다 알려주고 주인공 파티만 범인을 모르는 전개에 많이 당황했는뎈ㅋㅋ 애초에 작가님이 '범인 맞추기' 쪽으로 무게가 쏠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하신 것 같지만, 너무 결말 아는 상태에서 사건 전개를 보고 있자니 김 빠지긴 했어요..ㅠㅠ 그리고 시한부+자살희망자 주인공이라는 설정에 따라오는 신파적인 분위기가 강해 호불호가 많이 갈릴 수 있다.


그래도 그외에 작품의 중심 주제(평범한 사람으로서의 가치 찾기 + 힐링)와, 로판답게 설레면서도 울컥하는 로맨스 서사, 그리고 강스포일러라 감상글에선 다 빼버렸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눈물겹던 '특정 인물'과의 감정선이 다 한 소설. 비록 힐링부둥물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서 별점이 아주 높진 않지만.. 후반부 가면서는 거의 질질 짜면서 읽은 작품임 커헝ㅠ 노린 걸 알면서도 눈물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 가볍고 잔잔하게 젖어들어가다가 한참을 운 뒤 개운해지는, 따뜻한 힐링물입니당. 지친 현대인들에게 추천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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