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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새 남편을 구합니다

by 뀽' 2020. 5. 3.

 

새 남편을 구합니다  /  단해늘

★★★

기만이 진심으로 변하는 순간


나는 옆에 있을게.

언제나 옆에 있는 건 자신 없지만,

끝까지 옆에 있겠단 말은 자신 있어.

 

상큼한 제목(!)과 밝은 기운을 뿜어내는 표지에 홀렸던 독자들은 소설 첫머리에서부터 충격을 받을지니. 네 이 작품은 여주가 빌어먹을 남편의 목을 뎅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새 남편을 구하려면 자고로 전 남편은 죽여야 하지 않겠어요?ㅋㅋㅋ


결혼한 지 한달만에 남편놈의 반역죄에 휘말려 죽게 생긴 리아트 프시키아. 억울함과 분노로 가득 차 살려달라 빌었던 기도라도 통한 것인지 누군지 모를 신이 나타나 ‘살려주는 대가로, 남은 수명의 반을 가져가겠다’는 불공정 계약을 맺게 되는데. 그렇게 끔찍하게 반복되는 회귀가 시작됐다. 도망칠 때마다 되풀이되는 죽음과 그때마다 줄어드는 수명. 무심한 시간의 반복 속에서 서서히 미쳐간 리아트는 마침내 직접 칼을 들어 남편의 목을 치고. 반역자를 선빵고발한 공로로 백작위까지 하사받았지만 이제 그녀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1년 3개월뿐. 눈에 뵈는 게 없어진 이 미친 여자는 욜로족이 되어, 10억 골드 줄게 누구 내 새 남편 할 사람?! 하며 전국에 남편 모집 공고를 때리는데..!


피폐물로 시작했지만, 멘탈 갈린 광인(狂人)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 미친 남편 선발 스토리는 시원시원하고 유쾌하다. 아니 절세미인 백작의 남편이 되는데다 상금도 10억 골드라니요. 소문이 퍼지자 전국에서 구혼자가 몰려오고, 상업과 숙박업이 발달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이것이 창조경제 덕분에 엄청난 남편후보생들(...)이 몰려들어 대회 규모가 커지는데, 그에 걸맞게 체계적으로 진행이 되어서 정말 K-서바이벌 예능 보는 기분임ㅋㅋ 전문가 심사위원까지 초빙해 진행되는 이 남편듀스101 대회에서 1차 검술 시합을 시작으로 외모, 문학, 역사, 인성 등 다양한 시험을 통과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최종 우승자만이 데뷔 리아트의 남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쯤에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이 대회로 얻은 남편에게서 리아트는 ‘진짜 사랑’이란 걸 느낄 수 있을까요? (대충 그알톤) 


서바이벌 예능 좋아하는 K국인답게 내 픽 이겨라 하며 웃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늘 싸하다. 부와 지위를 보고 대회에 참가한 남편후보생들에게 진심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니 남편후보생까지 갈 것도 없이, 그녀의 호위기사와 보좌관마저도 모두 황실에서 보낸 감시자들 뿐이다. 진정한 사랑 이전에 우정이든 충성이든 진정한 ‘인간 관계’라는 것이 리아트에게 허락될까. 어쩌면 이건 K-서바이벌답게 거대한 기만의 장일 뿐이다. 


믿은 순간 뒤통수를 맞고, 의지한 순간 떠나는 사람들. 사실은 리아트도 이 모든 것에 진심 따윈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다. 날이 갈수록 황실이 리아트에게 기이한 집착을 보이는 것도 신경 쓰이고, '순리를 거스른 존재'를 없애기 위해 나타난다는 초자연적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하기 시작. 겨우 얻어낸 짧은 생조차 제대로 살 수 있을지 의문인데 그래서일까, 공허한 호의나 고백이 아닌 ‘언제나 옆에 있는 건 자신 없지만 끝까지 옆에 있겠다’는 이상하고 솔직한 말을 하는 정체불명의 사내에게 도리어 마음이 향한다.


그녀를 미친 사람 취급하던 호위기사도, 그녀를 감시하던 보좌관도, 호의 가득한 얼굴로 다가온 남편후보생도, 그리고 결혼할 마음도 없다면서 대회에 참가해 그녀 곁을 맴도는 이상한 사내도, 모두가 시작은 기만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 잃을 것도 없다며 그녀가 내키는 대로 쏟아붓는 막가파식 말과 행동 속엔 사람을 향한 그리움과 외로움, 그리고 따뜻함마저 묻어나 있었기에 주변인들의 기만이 진심으로 변하게 되는 과정이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상당히 섬세하게 그려짐.


짧은 생의 끝자락에서 삶의 열의를 불태우는 이 사랑스럽게 미친 여자에 비해, 남주의 비설은 상당히 후반부 가서야 풀리기 때문에, 남주가 매력있는 것과는 별개로 이놈의 의중을 중반부까지 알기 힘들다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러브라인 진도가 상당히 느린 작품이기도 하고.. 대신 남주의 과거사가 작품 전체의 반전을 담당하는 만큼 후반부 포텐이 엄청난 소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후반 약 30~40화 동안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공포+스릴러+멜로 전개에 저는 밤새.. 꼼짝도 못하고 6시간 내리 읽었어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순리를 거스른 존재'는 누구일까. 황실은 왜 리아트에게 집착하는가. 결혼도 할 마음 없는 남주놈은 왜 이 남편 선발 대회에 참여한 것일까. 그리고 애초에, 리아트의 수명을 가져가며 회귀를 시킨 신은 대체 누구인가. 이 모든 떡밥이 빠짐 없이 촘촘히 완성되는 거대한 서사를, ‘기만’을 ‘진심’으로 바꾸어버리는 주인공의 저력을 따라가며 스릴 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 다들 이 미친 여자가 선사하는 쾌감(!)을 즐겨보세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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