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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어릿광대의 동화

by 뀽' 2020. 5. 26.

어릿광대의 동화  /  네르비

★★★☆

포장 따위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잔혹동화

 

복수는 허무하다고? 다 개소리.

이렇게나 기분이 좋은데 말도 안 되지.

 

어쩐지 처연미가 느껴지는 제목을 보고 아름다운 비극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그대로 백스텝합시다. ‘잔혹동화’가 어떤 건지 한번이라도 접해본 사람이라면 감이 올까, 이건 단순한 ‘동화 클리셰 비틀기’ 정도에서 끝나는 작품이 아니다. 구두를 신기 위해 발가락을 자르고, 출세를 위해 배 속의 아이를 바치고, 시체를 감추기 위해 인육을 먹는 이곳이 바로 잔혹동화 세상...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작품은 사전경고문구가 필요하다

 

초대장을 받은 이들을 위해서만 열리는 수상한 놀이공원. 우연히 초대장을 손에 넣은 주인공 강연두는 광대의 안내를 받아 ‘인형의 집’을 구경하러 들어갔다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갑자기 움직이는 인형들에게 사지를 붙잡혀 이세계로 떠밀린다. 네 그 이세계가 바로 온갖 잔혹동화가 모여 있는 곳 되시겠습니다 X발! 다행인지 불행인지 신데렐라의 하녀가 되어 이세계에서도 어떻게든 입에 풀칠은 하고 살던 연두. 1년 넘게 개고생하던 그녀는 우연히 마주친 낯익은 미남 집시가 그때 그 놀이공원 광대새끼란 걸 눈치채고 멱살을 잡는데..! 잔혹동화 세계 속에 갇혀있는 연두와 광대, 두 사람의 현실세계로 돌아가기 우당탕탕 어드벤처(?)가 그렇게 시작됩니다.

 

서두에서도 말했지만 잔혹동화 세계관 기반의 이 작품은 그 잔인함의 정도가 가차없다. 하지만 의미 없이 자극적인 고어물인가 하면 그건 아님. 일체의 동화적인 포장을 거부하는 그 잔혹성은 도리어 인간의 맨얼굴과 밑바닥을 그대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읽다 보면 묘한 것이, 신데렐라나 빨간모자, 황금 실을 잣는 소녀, 헨젤과 그레텔 등 익히 아는 동화들을 보고 있는데도 이게 단순 동화가 아니라 현실 르포 같이 느껴진다는 것. 그도 그럴게 아동 학대와 성폭행, 여론몰이, 뒤바뀐 가해자와 피해자 등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끔찍한 범죄들을 우리는 모두 포탈 메인과 9시 뉴스에서 매일같이 보고 있잖아요..?

 

한마디로 이건 낭만과 동화에 젖어들어 위로를 받으려던 독자 머리에 찬물을 뿌리며 정신촤려! 이! 각박한! 세상속에서! 하는 그런... 그런 잔인함이 있음.... 집착계략남을 좋아하시나요? 그거 다 스토킹임. 신데렐라 좋아하세요? 그거 딱히 순수한 사랑은 아니었을걸. 헨젤과 그레텔? 야 그런 우애 좋은 남매가 어디 있니? 아 정말 지친다...

 

하지만 이건 분명한 ‘로판’이고, 로맨스 분량이 결코 적지 않다. 온갖 험한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입 걸걸한 여주와, 신출귀몰 능글다정한 남주의 케미가 좋고 이 두 사람이 투닥대다 연인으로 발전하는 서사도 작품 전체에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 이 미치게 잔인한 현실르포 동화에다가 로맨스를 엮어내는 작가님 솜씨에 오히려 감탄하게 된달까... 뿐만 아니라 잔혹동화 특유의 공포스럽고 스산한 분위기를 살리는 필력도 굉장하고, 뒷내용이 궁금해서 계속 읽게 만드는 짜임새도 훌륭해서, 나같이 비위 약한 독자도 6권이나 되는 이 작품을 밤까지 새가며 그 자리에서 끝까지 봤음ㅋㅋㅋㅋ (비위가 상해서 저녁 굶고 레모네이드만 마시긴 했습니다... 하루 사이에 핼쑥해짐...)

 

잔혹동화 형식을 빌려 현실 인간의 잔인함을 고발하는 면모나, 거기에 주인공 두 사람의 로맨스까지 자연스럽게 곁들이는 필력이나, 여러모로 훌륭한 작품인데.. 이게 비위 상하는 거랑 별개로 내 취향에 안 맞았던 이유는 권선징악 중에서 ‘권선’은 없고 ‘징악’만 있었기 때문인 듯 싶다. 악인에 대한 무자비한 복수는 반복적으로 등장하지만, 착하게 살면 복이 와요-라든지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드문드문 보이는 인간애!라든지 이런 따뜻한 메시지는 사실상 전무하다고 느껴져서, 정신적으로 상당히 몰렸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은 ‘포장’ 따위 하지 않아요....

 

희극이든 비극이든 낭만 좋아하는 저같은 철없는(...) 독자에겐 굉장히 가혹한 작품이었지만 그럼에도 재밌고 잘 썼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고어물 잘 보시고 현실 르포적인 성격의 작품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잘 맞지 않으실까.... 왜 감상을 쓰면서도 지치는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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