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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조연도 나름 힘들다

by 뀽' 2020. 10. 3.

 

조연도 나름 힘들다  /  하일라

★★★☆

연애하고 일하고 나라도 구하느라 바쁘다 바뻐


여기까지 와서 들러리 향단이라니, 사양할게요.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최초의 여성 재무 대신이 되어 주지.

 

악녀 빙의, 엑스트라 빙의, 시한부 빙의, 동물 빙의… 빙의란 빙의는 이제 모두 섭렵했다구요? 그렇다면 친구와 동시에 빙의하는 건 어떨까!ㅋㅋ 친구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눈 떠보니 이세계의 백작 영애가 되어 있는 주인공. 로판 짬밥이 있던지라 아 그럼 이제부터 왕자라도 꼬시는 건가?! 하며 태평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친구는 공작 영애로 빙의한 상태였다. 지위로 보나 외모로 보나 누가 봐도 저쪽이 ‘진짜 주인공’인 상황. 본래 살던 세계에서도 ‘춘향이와 향단이’나 다름없던 관계 때문에 상처 받았던 그녀는 로맨스 따위 퀵포기하고, 그렇다면 난 시험에 합격해서 행정관이 되겠다 공무원 루트 선언하는데..?


그리고 진짜 공부만 한다. 필참 파티가 아닌 이상 사교계에 얼굴 내밀지도 않는다..! 대단하다 하지만 그 내용만 나왔다면 이것이 로판이 아니고 공무원 합격 수기(?)였겠지요. 주인공인 데미안은 파티에서 꽃같이 잘생긴 아드리안 공작님과 우연히 엮이고, 시험 합격 후에는 본격 사령관과 수습 행정관으로 만나 썸을 타게 된다. 물론 일도 합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주인공들이 연애한다고 일 안 하고 그런 거 없음ㅋㅋ 컴퓨터도 엑셀도 없는 이 거지 같은 세상에 버려진(광희톤) 관계로 미친 듯이 손수 계산해서 탈세범들 횡령범들을 잡아내는 우리의 신입!


주인공 데미안의 독백이 시끄럽고 발랄하기 때문에 초반부는 가벼운 로코물 느낌이 나는데, 행정관에 합격하고 나서부터는 사건 비중이 커진다. 조사 나간 곳에서 반란의 움직임을 포착한 것부터 심상치 않더니, 알아서 잘 살려니 했던 친구 에일레네가 어딘가 심하게 뒤틀린 채로 재등장. 귀여운 빙의물 로코를 기대하셨다구요? 아니요 이건 데미안의 행정관으로서의 성공과 러브라인 외에도, 그녀의 열등감을 부추겼던 친구와의 오해 및 갈등, 살벌한 왕권다툼, 거기 끼어들어 이득 보려는 외세와의 전쟁 등 다양한 인물들의 욕망과 감정이 큰 스케일로 오고 가는 작품임. 그 중간에서 신입 행정관 데미안이 친구 구하고 전쟁 막으려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연애 진도도 착착 나가는 전개가 빠른 속도로 이어진다. 


아드리안과의 러브라인은 분량이나 절절함 면에서 충분한 것과는 별개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이 작품의 메인 테마라기보단 일부분인 느낌. 두 사람은 평화롭게 썸 타다가 연애에 골인한 예쁜 커플이고, 둘 사이의 감정으로 인한 갈등 서사(오해와 극복 등)는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인지 아드리안과의 꽁냥 분량이 상당함에도 전체적으로 여주 원톱물 느낌이 강한 편. 때문에 사건이 쉼 없이 이어지기에 충분히 재밌고 로맨스 분량이 적지 않음에도, ‘두 주인공의 로맨스 서사’ 자체를 기대했다면 약간 아쉽다는 느낌이 들 수도.


다만 저는 그 아쉬움이 전혀 다른 쪽의 이야기로 충족이 되었습니다ㅋㅋ 다름 아닌 데미안과 에일레네의 사랑 우정 및 성장 서사!!! 오해와 엇갈림, 갈등과 애증,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마침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눈물 나는 서사가 여기에 있었다!!! 남주 아드리안과의 러브라인이 저를 흐뭇하게 미소 짓게 했다면, 친구 에일레네와의 서사는 저를 울게 만들었습니다……. 초반부에 욕 튀어나올 정도로 밉고 원망스럽던 우리의 춘향이 에일레네가 이렇게 애틋해질 줄 몰랐어…… 8ㅁ8


그 외에도 이 작품의 메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두 왕자와 한 명의 왕녀 사이의 왕권 다툼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내전, 그리고 이 기회를 틈 타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외세와의 전쟁까지. 총 3권이지만 권당 글자수가 일반 로판의 두배라 거의 6권에 해당하는 긴 분량임에도 조금도 늘어질 새 없이 빠르게 진행된다. 바쁘고 머리 좋은 주인공과 남주의 활약이 이어짐에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뒤통수를 맞아, 잠시 끊고 다음 날 이어서 읽으려던 본래 계획을 전면 수정하고 새벽 4시까지 분노의 독서를 했음^^


적절하면서도 강렬한 반전과 늘어짐 없이 빠른 전개, 조신 남주와의 꽁냥꽁냥 럽라와 친구와의 우정 성장 서사까지,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 가벼운 걸 기대했다면 생각보다 진중하고, 진중한 걸 기대했다면 생각보단 가벼운 묘한 소설이다. 남주와의 로맨스가 메인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라 취향 별점이 다소 깎이긴 했는데 읽을 땐 정신 없이 재밌게 읽었음ㅋㅋ 적당히 가벼우면서도 진지할 땐 진지한, 유쾌한 여주원톱물 찾는 독자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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