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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앵화연담

by 뀽' 2020. 8. 13.

 

앵화연담  /  어도담

★★★☆

어리석은 아버지들의 이야기


참으로 치기 어린 충절이었다.

 

※주의: 결말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글입니다.


설레면서도 애절한 동양풍 로맨스를 찾던 사람이라면 번지수 제대로 찾아오셨다. 계모에게 죽지 않기 위해 변방으로 도망친 공주님과, 얼떨결에 그 공주님 떠맡은 몰락 귀족가 장남의 러브 스토리..인데, 이건 뭐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도 아니고 가난한 남주에겐 먹여살려야 할 어린 동생이 여섯이나 있는 상황ㅋㅋ 비록 돈 맛도 권력 맛도 없는 환경이지만, 외로웠던 공주님이 남주의 따뜻한 가족 사이에 녹아들면서 두 남녀 간의 연정이 싹트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게 다가 아니고 시작인 거냐구요? 네, ‘시작’입니다ㅋㅋ


남주에게 비엔나 소시지마냥 줄줄이 딸린 동생들이 혹시 공주님을 아니꼽게 보는 건 아닐까 걱정한다면 아니요 그런 건 일체 나오지 않습니다ㅋㅋ 물론 공주님은 정말 ‘공주님’이신고로 집안 살림에는 절망적일 정도로 재능이 없지만! 공주님의 학식이 높다는 걸 알게 된, 편견 없는 열린 마음의 남주는 공주님께 아우들의 선생이 되어달라 부탁하고. 남주를 닮아 선량한 동생들은 둘을 혼인시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공주님을 잘 따른다.


하지만 이게 변방 시골에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가족 이야기로 끝날 리 없다는 건 다 알잖아요. 이화 공주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계모를 피해, 속을 알 수 없는 정략 약혼자를 피해, 그리고 자신을 믿어 주지 않는 아버지를 피해, 스승이 알려준 ‘양사언’이라는 사람을 찾아 변방까지 도망 온 상황. 그리고 남주 양사언은 장원급제를 한 문재(文才)이나 탐관오리였던 아비의 죄로 가문이 몰락한 탓에 지방에서 하급 무관 일을 하며 입에 풀칠하고 있는 신세. 두 주인공 모두 아버지에 대한 애증을 가지고 있다는 게 이 작품이 품고 있는 반전의 실마리 되시겠다. 


애초에 스승은 왜 도망칠 곳을 찾는 이화를 자기 가족 건사하느라 바빴던 가난한 양사언에게 보냈던 건지. 딸을 그리도 아끼던 왕은 왜 도망친 이화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건지. 지독한 탐관오리였다는 양사언의 아버지는 왜 그리 갑자기 죽었던 건지. 가리워졌던 진실에 하나씩 드러나면서, 못나고 어리석었던 아버지들의 이야기가 전면에 떠오른다.


그렇기에 이화와 사언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시작었을지언정, 결말에 가까워질수록 이 작품의 ‘진히어로’는 이화의 아버지인 진렴과 사언의 아버지인 양시량, 그리고 이화와 사언 두 사람의 스승인 박만경이라고 느껴졌다. 러브라인을 제외하면 서사의 큰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왕권 다툼에서 대를 물린 갈등을 해결하는 게 사실상 이 세 사람이었고, 캐릭성을 따져도 냉정함과 나약함이 뒤섞인 입체적이고도 매력적인 인물들이었어서, 책을 다 읽고 덮은 순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인공 두 사람보단 그 아버지 세대였던 듯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 두 사람의 로맨스가 약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왕권 다툼’이라는 축에서 활약하는 인물이 아버지 세대 사람들이었다면,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담당하고 있는 건 주인공인 이화와 사언, 그리고 이화의 정혼남 김이헌이다. 명석하고 장난기 있지만 몸이 약한 이화 공주님과, 단정한 선비의 얼굴 뒤로 소유욕을 감추고 있는 집착남 사언, 그리고 질척질척한 애증으로 점철된 정혼남 김이헌의 미쳐버린 삼각관계!!! 삼각형에 대한 광기는 더욱 커져만 갔다 키워드만 봐도 먹음직스럽지 않습니까 이 집 럽라 맛집이에요 허버허버쳡쳡


두 주인공(+섭납)의 캐릭성이 워낙 매력적이었던 터라, 작품을 관통하는 갈등 서사에서 주인공들이 아닌 주인공 아버지 세대 인물들이 주로 활약하는 후반부 전개가 더 아쉽게 느껴진 것도 있음. 물론 아버지 세대 캐릭들이 또 그만큼 매력적이긴 한데ㅎㅎ 메인 주인공들의 영웅 서사를 기대했다면, 갈등 해결 주체가 조연들이라는 사실이 약간 허무할 수도. 하지만 가상 고려 시대를 묘사하는 작가님의 필력이 훌륭해서 일단 한 번 잡으면 쉬이 손 뗄 수 없는, 몰입도 높은 작품이기도 하다. 애절한 동양풍 로맨스를 원하는 독자라면 추천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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