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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황제의 애인이 살해당했다

by 뀽' 2020. 10. 10.

황제의 애인이 살해당했다  /  하일라

★★★

고래들 물밑 싸움에 새우 죽어나가네

 

미치겠네.

저들 중 하나가 범인이라고 하면

너무 큰일에 발을 담근 셈이 되는데.

 

수도 경무부 수사관으로 근무 중인 나스 모에튼. 명색이 자작가 출신이지만, 결혼하라는 집안 압박을 무시하고 황궁의가 되겠다며 상경한 그녀는 우아한 귀족보다는 어째 초췌한 21세기 샐러리맨의 모습에 가깝다. 아카데미 의학부 시절 교수의 실수를 지적했다가 찍히는 바람에 황궁의 면접에서 매번 탈락하는 더러운 현실이지만, 그에 굴복 않고 경무부 취직으로 방향 전환. 4년 간 죽어라 모은 봉급으로 마침내 수도에 자가 마련까지 하는데! 장하다! 이제 좀 숨통 트이나 싶었던 이 서민(?) 수사관 앞에 갑자기 할당된 대형 사건. 황제의 애인이 살해당했단다. 거기다 황제가 직접 담당 수사관으로 그녀를 지목했다? 아니 왜?

 

하지만 일개 수사관이 뭘 어쩌겠습니까 까라면 까야지……(씁쓸) 용의선상에 오른 게 저 높으신 분들이라 제대로 조사하기도 전에 우리 새우 등 터질까 걱정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황제는 귀족들 가택수사 프리패스용으로 두 남자를 보내주십니다. 한놈은 황제의 친위대 부대장인 스테인 경, 다른 놈은 황제의 아들인 란티드. 고래들 상대하라고 고래를 보내주셨다. 잘못했다간 저승 프리패스일 것 같다. 다행히 우리 똑똑이 나스는 속전속결로 증거가 가리키는 범인을 검거! 룰루랄라 이제 다시 평화로다, 하는데 어라. 사람이 또 죽었다.

 

그야말로 제 취향에 꼭 맞는 피비린내 나는 사건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이 끊임 없이 죽어나가요!ㅋㅋㅋㅋ 분명 나스는 증거를 따라 범인을 잡은 건데, 대체 뭘 놓치고 있던 것일까? 가까이 한 자마다 모두 죽었다는 스테인 경의 정체는? 어머니인 황제와 불화설이 도는 황자 란티드의 속내는 뭐지? 아니 애초에 왜 황제는 나스 모에튼을 그 사건의 담당 수사관으로 임명한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의문점들과 수상한 정황들이 쉴 새 없이 펼쳐져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시리어스하기만 한 작품은 아님.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스가 적당히 무심하면서도 적당히 발랄하기 때문에ㅋㅋ 제 등 터질까 몸 사리는, 분명 귀족인데도 서민의 애환이 느껴지는 나스 시점의 서술이 굉장히 매력적이고 읽는 독자도 서민이라 이입이 잘 된다. 옆에서 높으신 분들이 무서운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 돈 없고 백 없는 소시민은 동공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기, 저 없는데서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네? 하는 나스에게 공감 이백퍼ㅋㅋ

 

하지만 우리는 다 알지요, 이미 이 거대한 판에 발을 디딘 이상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는 걸. 믿었던 이의 배신과, 알지도 못하는 이들로부터 쏟아지는 적의, 시시각각 다가오는 목숨의 위협까지. 저도 모르는 새 거대한 체스판 위의 장기말로 전락한 보잘 것 없는 일개 수사관이었다 해도, 밟으면 꿈틀한다 이거예요! 가만히 있다간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저도, 제 주변인도 죽게 생긴 상황. 사건의 배후를 알아내기 위해 제 발로 뛰기 시작한 나스가 위태로워 보여 안달이 나면서도 응원할 수밖에 없었음. 

 

그리고 마침내 밝혀진 진범의 정체에 저는 정말 엄청난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는데요……. 중간에 설마 하긴 했는데, 와 정말 이런 식으로 소시민을 기만해?ㅋㅋㅋ(웃는 게 웃는 게 아님) 물론 죽은 놈들 하나 같이 죽을 만한 인간들이었고, 그들을 죽인 이유도 알겠고 그런데요……. 이렇게까지 해서 그 사람이 얻으려고 한 게 그렇게 값진 것이었나 싶은 씁쓸함이 남는다. 강스포라 자세히 못 쓰는데 그만큼 사람 마음 복잡하게 만드는, 현실적이라서 더 끔찍한 진상이었다. 다만 모든 진실이 밝혀진 클라이막스 이후 결말에 다다르는 과정이 좀 급하게 전개된 느낌이라 아쉬움. 조금 더 스케일 크고 박진감 넘쳤으면 어땠을까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ㅁ;

 

너무 사건 위주로만 감상을 썼는데, 로맨스가 부족한 작품은 아닙니다. 단지 그걸 감상에 써버리면 누가 남주인지 스포를 해버리는 게 되기 때문에ㅋㅋㅋ 남주찾기류의 작품은 아닌지라 금세 아 네가 남주로구나ㅎㅎ 하게 되지만, 일단 초반부는 어느 쪽이 남주일까 약간 긴장하며 보는 재미가 있으니까! 어른스럽고 다정한 남주캐가 정말 내 취향이었다. 제 주식은 성공했습니다. 

 

주인공이 요즘 유행하는 천재 먼치킨 혹은 정보우위를 점한 빙의/회귀자가 아니고, 남들이 꾸며놓은 판에 휘말린 평범한 수사관이라는 게 바로 이 소설의 매력 포인트. 주인공이 모든 것을 예측하고 통제하며 사이다를 선사하는 흐름이 익숙하다면 약간 갑갑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주인공에게 더 강하게 이입할 수 있었다. 일개 소시민이 고래들 싸움에 휘말려 고군분투하는 전개도, 사건 속에 로맨스가 녹아들어 서로에 대한 마음이 자연스레 커지는 감정선도 좋았음. 사건물 로판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봅시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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