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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악당의 누나는 오늘도 고통받고

by 뀽' 2020. 10. 21.

 

악당의 누나는 오늘도 고통받고  /  엘리아냥

★★★

전연령용 싸패맛이 좋네요


내가 말했었지.

누님이 무사하기만 하다면 뭘 해도 괜찮다고.

그게 뭐든지 상관없다고.

취소할게. 이건 안 돼.

 

내 옆을 떠나는 건 안 돼.

 

위드그린 공작 가문의 아름다운 첫째딸 리디아. 사실 그녀는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환생녀인데다 제가 입양아라는 어마무시한 출생의 비밀까지 알고 있었지만, 다행히도 훌륭하신 부모님 밑에서 걱정 없는 유년 시절을 보낸다. 남동생 에시도 비록 생명의 소중함은 몰라도 가족의 소중함(?)은 아는 녀석이었으니. 유독 누나를 잘 따르는 이 잘생긴 남동생과 우애 좋게 지내던 어느 날! 자신이 살고 있는 지금 세계에 관해 쓰인 소설을 발견하고야 만다. 아니, 부모님이 곧 돌아가셔? 내 동생은 싸이코패스 악당이라고? 심지어 제가 친누나가 아니란 걸 알게 된 에시가 저를 죽인단다!


도대체 이 불길한 책은 뭔가 싶어 남들에게 보여줘도 다른 사람들 눈엔 백지로밖에 안 보이는 상황. 미래를 바꾸려 온갖 난리를 쳤지만 책에 쓰인 대로 부모님마저 돌아가셨으니. 이건 진짜다! 가만히 있다간 동생 손에 죽는다! 그렇다면 뭐다? 도망가야죠ㅋㅋ 그러나 그냥 도망갔다간 잡힐 게 뻔하니 리디아는 나름대로 허술하고도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데. 에시가 원작 여주에게 온 정신이 쏠려 누나고 뭐고 상관 안하는 타이밍에 내빼려 했거늘, 그때부터 원작이 제멋대로 비틀린다. 다름이 아니라 러브라인이 시작되기도 전에, 에시가 원작 여주를 죽게 만든 것.


초반은 엘리아냥 작가님의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충격적이고 피폐하게 흘러간다. 일단 남동생이 그냥 성격 더러운 나쁜 남자 정도가 아니라 진짜 싸패예요. 그에겐 사람 목숨이나 파리 목숨이나 차이가 없음. 한마디로 일반적인 도덕관념에 대한 이해나 공감 능력이 전혀 없다. 다만 로맨스물이 늘 그렇듯 단 한 사람, 누나인 리디아에 대해서 만큼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내어보이는데. 이 녀석, 누나 한정으로는 그렇게 배려심 있는 다정남이 아닐 수 없음ㅋㅋ (하지만 부모님 장례식에서 누나 손 잡고 이제 우리 둘만 남았다고 의미심장하게 말하던 건 좀 무섭고 좋았어..


다정해서 더 무서운 동생녀석의 마수(?)에서 벗어나고자 리디아도 나름 발버둥치기는 한다. 다름이 아니라 소설을 읽어 습득한 지식으로, 시간을 하루 되돌리는 구슬을 한보따리 훔쳐온 것..! 에시가 벌인 사고에 휘말려 원작 여주 아그리타가 죽어버리자 당황한 리디아는 시간을 되돌리는데, 뭘 어떻게 해도 자꾸 개복치마냥 죽는 아그리타 때문에 미칠 지경. 작가님 특유의 코믹한 서술 덕에 우울하진 않지만, 아그리타를 살리기 위해 몇번이고 시간을 되돌리는 초반 전개는 무한회귀물을 읽을 때처럼 피폐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심지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개라 충격적이기도 했음.


다만 무한회귀 지옥을 벗어난 이후로 등장하는 각종 악역들이 하나같이 설명충(본인이 이런 짓을 왜, 어떤 방법으로 저질렀는지 묻지도 않았는데 줄줄이 말해줌)인데다, 우리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쪼렙이라(에시가 칼 한번 휘두르면 우수수 쓰러지는 악역들), 손에 땀을 쥐게 만든 초반부에 비해 김이 빠지긴 함. 에시를 포함해 우리편은 모두 먼치킨이고, 상대편은 모두 허접이라 긴장감 유발이 안 된다. 다르게 말하자면 악역으로 인한 고구마가 전혀 없어서, 오히려 이게 장점으로 다가오는 독자층도 있을 듯. 


한치 앞이 안 내다보이는 사건물과 거기서 활약하는 지략캐들을 사랑하는 독자라 중후반부 전개가 많이 아쉽긴 했는데. 그럼에도 완결까지 쉴 새 없이 달린 이유는 바로 캐릭성 때문. 분명 연하남인데도 느른한 섹텐을 풍기는 남주 에시부터, 위트 있는 말장난으로 여주와 티키타카 오지는 호위기사 다베리 경, 귀여운 길치 황태자, 그리고 스포일러라 정체를 여기서 말할 순 없지만 원작 여주인 아그리타까지. 개성 있는 캐릭터들과 착착 감기는 대사빨은 작가님의 모든 작품 중에 악누고가 가장 좋다고 느꼈다. 


개연성 측면에서 멈칫한 부분들도 있고, 모든 진상을 알고 나니 리디아가 벌인 모든 일이 사실은 삽질이었기 때문에 허무한 감도 있는데.. 엘리아냥 작가님 특유의 개그코드가 맞는 독자라면 캐릭성과 티키타카의 재미에 멱살 잡혀 눈 깜짝할 새 완독하게 되는 듯. 웅장한 서사나 진지하고 깊은 감정선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부담 없이 가볍게 즐기고 싶었다면 이만한 킬링타임 소설 찾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무엇보다 남들에겐 싸패지만 누나에겐 다정한 벤츠인 이 으른으른한 집착연하남이 맛있으니까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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