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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제가 어딘가 빙의를 한 것 같은데요

by 뀽' 2020. 12. 19.

제가 어딘가 빙의를 한 것 같은데요  /  달비초

★★★

로판 고인물용 상큼한 개그물

 

한두 권을 읽었어야 이름을 기억하지,

백 권쯤 읽다 보면

외국 이름은 다 외국 이름이다.

 

아, 망할.

 

넘쳐나는 대(大)-빙의물 시대, 이제 이런 작품이 나올 때도 됐다! 너무 많은 로판(특히 빙의물)을 읽은 나머지, 빙의를 했는데 당췌 어느 작품에 빙의를 한 건지 알 수 없는 상황ㅋㅋ 심지어 이 작품의 주인공은 다른 빙의물 주인공들과는 달리 엄청난 기억력을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너무 현실적이야 대신 백 권도 넘게 읽었다 보니 클리셰에는 통달해 있다! 북부대공이라고? 무뚝뚝한 흑발캐겠군. 정략결혼이요? 음, 그럼 선결혼 후연애네~ 대충 때려맞추며 어찌저찌 잘 해나가…는 듯 하더니, 매번 뒤통수다! 클리셰 범벅인 주제에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미친 세계!ㅋㅋ

 

빙의물이 넘쳐나다 보니 이 작품이 저 작품 같고 저 작품이 이 작품 같은 지경에 이르러 로판 고인물들이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 시점에, 바로 그 지점을 오히려 메타적 개그 포인트로 살린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로판 독자라면 당연히 눈치챌 법한 클리셰 설정이 독자 눈에도, 주인공 눈에도 보여서 훗 이거 누가 봐도 정략결혼물이군? 하고 행동했는데 아니고(공감성 수치 1회), 그럼 악녀빙의? 했는데 또 아니고(2회), 아 그럼 가족후회물인가? 놉(3회) 으악!ㅋㅋㅋㅋ

 

위에서 말한 3회로 공감성 수치가 끝날 거 같나요? 아니요 이제 시작입니다^^ 대체 어떤 작품에 빙의했는지를 모르니 클리셰 고려해서 눈치껏 행동하는 수밖에 없는데, 심지어 주인공이 수치를 모르는 타입이랔ㅋㅋ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주인공의 행동원리 및 목표가 ‘생존’이 아닌 ‘연애’라는 것임. 아무리 봐도 나 로판에 빙의한 거 같은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존잘남이랑 연애 좀 하자!!! 하며 저돌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좀 부끄럽긴 하지만(ㅋㅋㅋ) 신선하다. 언뜻 보면 클리셰의 향연일 거 같지만 의외로 ‘클리셰 부수기’ 쪽에 더 가까운 편임. 

 

원래 저는 공감성 수치 자극하는 작품들 잘 못 읽는 사람인데요…… 이상하게 이 작품은 부끄럽긴 해도 술술 잘 읽히더라ㅋㅋ 여주가 혼자 엄청나게 김칫국 들이마시긴 하는데, 이게 진중한 분위기에서 여주 혼자 튀는 게 아니라 작품이 전체적으로 가볍고 유쾌하다 보니 그냥 웃으면서 볼 수 있음. 그리고 초반에 미친 듯이 이 남자 저 남자에게 차이던 여주도 급격한 현타가 와서 결국 연애를 포기하는데, 그걸 본 순간 고인물 독자는 깨닫는 것이다. 아 이제 진짜 사랑이 오겠구나. 그것이.. 약속이니까 (끄덕)

 

다만 중반 이후 천사와 마족, 그리고 신 등 큼직한 세계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데, 초반부의 메타적 재미를 좋아한 독자 입장에서 흥미가 다소 떨어지긴 했음. 물론 이 모든 설정의 등장은 절대 급작스럽지 않고, 오히려 작가님이 극초반부터 계속 언질을 주시며 차곡차곡 발전시켜나간 거긴 한데.. 스쳐지나가는 엑스트라로 보였던 캐릭터나 사소한 설정까지 모두 후반부를 위한 빌드업이었다는 점에서 작가님의 안배에 감탄한 거랑 별개로, 단순 재미 면에선 개인적으로 취향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후반부가 갑자기 노잼된다는 얘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를 잘 유지하고 있고, 오히려 ‘꽤 심각한 사안 같은데 이걸 이렇게 가볍게 해결해도 되나?’ 싶을 때가 종종 있음. 하지만 그 또한 이 작품의 미친 개그 플로우에 몸을 맡기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납득이 된다. 빡빡한 개연성을 따질 종류의 작품이 아님ㅋㅋ

 

남주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스포라 감상에 쓰지 않았는데, 많은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저는 정말 좋았습니다ㅎㅎ 연애하려고 난리치다가 현타 와서 포기한 여주라, 남주가 옆에서 아무리 그린라이트를 두들겨도 에이 아니겠지~하며 철벽 아닌 철벽을 치는데 그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설정 몇 개만 스루한다면, 로판 고인물들은 깔깔거리며 즐길 수 있는 유머로 가득한 작품. 최근에 다소 무거운 작품들만 읽었는데 좋은 기분전환이 되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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