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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Romance

감상/ 여름 별장의 주인

by 뀽' 2021. 9. 11.

여름 별장의 주인  /  유폴히

★★★☆

현실적인 피폐와 동화적인 위로

 

엉망이 된 것들을 가지고 나와 함께 살아요.

 

※주의: 스포일러라고 느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눈 떠보니 남편이 사라졌다. 저택의 메인 홀에는 피가 흥건하다. 용의자로 지목된 것은 다름아닌 금슬 좋기로 유명했던 부인 샬롯.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소설을 써 공전의 히트를 친 유명 작가 샬롯더러 모두가 범인이라 손가락질 할 때, 6년 전 샬롯이 무참히 버렸던 첫사랑이 나타나 그녀를 변호하는데?!

 

살인, 치정, 불륜 등 온갖 MSG 요소로 가득할 것만 같은 작품소개이지만, 펼쳐보면 의외의 힐링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ㅋㅋ 왜냐하면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메세지는 복수나 치정싸움이 아니라 상처 받은 사람들이 그걸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 있기 때문. 비록 도입부부터 피비린내 강렬하게 풍기긴 했지만, 애증이나 원한 등 심란한 감정들보단 설렘과 걱정, 배려 등 다정하고 선한 마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 치유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독자는 주인공 샬롯이 당하는 엄청난 가스라이팅 과정을 함께 견뎌내야 합니다 ^^... 전남편개새끼

 

샬롯은 선하고 사랑스러우나 흔히 보는 로판 여주처럼 똑부러지는 영민한 스타일은 아님.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도 하고, 첫눈에 반한 상대에게 말을 걸긴커녕 삐뚤빼뚤한 자수와 직접 그린 초상화, 당신 너무 잘생겼다는 주접 가득한 편지부터 냅다 안기는 귀여운 허당인데ㅋㅋ 무도회에서 만난 프레드릭과 사랑에 빠지지만, 꿈은 많으나 철이 없진 못했던 샬롯은 가족들의 바람대로 에셀러드 벨 백작과 결혼한다. 그리고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일단 도입부부터 뒤진 전남편이 착한 놈일 리가 없다는 건 로판독자라면 다 알쥬? 그런데 이놈은 상상 이상으로 현실적인 개새끼다. 넌 살을 빼야 예뻐, 다이어트 좀 해, 그 옷 너한테 안 어울려, 내가 입으란 것만 입어, 사치 부리지 마, 어디서 남편한테 큰 소리야, 내 돈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정말 주옥같은 대사 라인업 되시겠다. 그리고 이러한 학대 속에서 샬롯의 자존감이 무너져내리는 과정이 상당히 사실적이라ㅠ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유머와 위트의 농도가 옅고, 대신 현실적인 피폐 요소들이 짙게 깔려 있는 느낌.

 

하지만 말했듯이 이것은 힐링물입니다ㅋㅋ 나까지 같이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 같던 그 미친 결혼생활 에피소드와 그녀를 용의자로 지목하며 마녀사냥 해대는 돌아버린 법정을 견디면! 1권 중후반에 금세 우리의 유니콘 남주, 첫사랑 프레드릭이 재등장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일방적 구원 관계냐 하면 아님. 너무 스포일러가 될까봐 자세한 설명은 할 수 없으나, 자낮과 자낮이 만나 사랑으로 서로를 치유하는 운명적 러브스토리라 보시면 되겠습니다ㅋㅋ

 

프레드릭이 그야말로 다정한 자낮 남주라 능글남 좋아하는 내 취향 레이더에선 살짝 빗나가긴 했지만… 무도회에서 단 열흘 만났던 것에 불과한 첫사랑이 왜 샬롯을 찾아와 변호하는지, 그 모든 서사를 알게 되면 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위대한 개츠비>가 생각나는 몇몇 장면들도 있는데, 그 정도로 부내나는 일편단심 순정 헌신남이라서. 이 동화적인 유니콘을 좀 심심하다 느낄 수는 있을지언정 싫어할 독자가 있을까ㅋㅋ

 

다만 ‘추리/미스터리/스릴러’ 키워드 측면에서는 꽤 아쉬웠다. 일단 사람 하나 죽고 시작하는 도입부는 흥미진진했지만 사건이 생각보다 단순하고, 너무 큰 힌트들이 일찍 주어지기 때문에 엔간한 독자들은 전체 분량의 3분의 1 정도 온 시점에서 진범과 사건 트릭까지 모두 알아챌 수 있다. 즉, 특별한 반전은 없다는 얘기. 글의 구성이나 문장도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덜 정제된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흘러갔던 후반부의 아쉬움을 본편 엔딩과 외전이 날려줌ㅋㅋ 엔딩의 경우 호불호가 좀 갈리는 모양인데, 나는 치유의 과정을 겪고 다시 일어선 두 주인공이 이제 그 무엇으로부터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당당히 맞서는 결말이 된 것 같아 너무너무 좋았다ㅠㅠ 비록 기대했던 스릴러적인 면모는 약했지만, 상상도 못했던 따뜻한 위로가 넘치는 이야기라서 기분 좋은 여운이 남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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